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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우리들의 장마철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4.06.19일 09:14
영등포역에서 하루의 일상이 시작된다. 이날도 로숙자들을 일별하면서 급급히 계단을 내렸다. 영등포역 정문앞에서 좌측으로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직진, 그러면서 멀리 아카데미건물을 확인했다. 회사의 봉고차에 오르자 습관적으로 눈을 감았다. 차의 시속 그리고 차창밖의 소음으로 행선지와의 거리를 비슷하게 짐작할수 있었다.

양화대교, 서울 외곽순환도로 해안선의 철조망 망루에 석고상처럼 굳어진 젊은 군인들, 통일전망대… 군사분계선과 전쟁을 상상할수 있는 그런 정경들이였다.

현장식당에서 아침을 치르고 담배 한대 태우는데 스피카에서 재촉이 쏟아진다.

《아직까지 식당 근처와 근로자 쉼터에서 서성이고계시는 근로자 여러분, 지금 인차 현장으로 움직여주십시오. 잠시후 아침체조가 시작되겠습니다. 오늘도 고온속에서 땀 흘리며 로고하시는 근로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근로자 여러분, 오늘도 안전 제일 항상 명기하시고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현장의 직원인지 어느 국민학교의 체육교원인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의 구령에 따라 우리들은 체조인지 춤인지 모를 그런 몸움직임을 하면서 그녀의 허연 허벅지가 볼거리라고 여겼다. 수천명의 사나이속의 로출이 심한 그녀의 허연 다리가 상상의 나래를 돋치게 한다.

《안전고리 점검. 안전벨트 착용.》

《안전 제일, 고고고!》

우리들은 기계적으로 외우고 웨치고 또 웨쳤다.

에스플레이 현장의 옥상.

지글지글한 볕에 나무잎마저 시들어지고 비틀어지는 찜통더위가 계속되고있다. 금방 마신 물이 땀으로 되여 줄줄 흘러내린다. 지상 100메터 우의 옥상은 태양과의 거리가 더 가까와진듯 고열에 지져진 옥상의 세멘트바닥에서 불을 뿜고있었다. 비닐을 펴고 기름을 붓고 스치르프 깔고 테이프를 부착, 철사망을 펴고 세원씰, 세루마를 칠하고…

우리들의 팬티, 런닝셔츠는 하루에 수십번 땀에 절고 고열에 말라버렸다.

오후 다섯시 우리들의 하루 고역이 끝났다. 옥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또 현장건물에서 근로자 쉼터까지 내려오면 30분이 걸린다. 세수를 대충 하고 안전화를 벗고 깨끗한 외출용의 의상을 배낭에서 꺼내 급급히 갈아입는다. 지치고 무거운 몸을 봉고차의 좌석에 던졌다. 지리지리한 하루였고 힘겹고 고달픈 하루였다. 이런 고됨과 아픔은 빠듯빠듯한 만원 지페장을 받을 때만 잊어진다.

《다들 내려오셨죠?》

우리의 기사가 팀원을 확인한다.

나도 봉고차속의 익숙한 얼굴들을 쭉 살폈다. 옥상에서 바람과 볕에 거칠어진 얼굴들이였다.

《어?! 저게 누구야!》

순간 심장이 후두둑 무섭게 뛴다. 차창을 확 열면서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었다. 다시다시 눈을 비비면서 크게 떴다.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생소해진 안전모밑의 얼굴이였다. 그 덩치― 꿈속에서만 보았던 그였다.

《경찬아!》

고함을 지르면서 차에서 뛰여내렸다. 붉은색의 차속으로 덩치가 들어갔다. 10여메터 밖의 차가 움직이였다.

《경찬아!》

나는 웨치면서 달렸고 달리면서 소리소리 질렀다. 봉고차는 축구경기장 둬개 규모의 주차장에서 요리조리 몸을 숨기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졌다. 분명 경찬이였는데 잘못본것일가? 아닌데…

저녁, 중국 베이징얼궈터우 한컵에 막걸리 한병이면 잠에 곯아떨어지기에 충분했다. 충실한 핸드폰의 기상이란 알림의 벨소리가 없으면 새벽 세시에 일어나는것은 불가능이였다.

허나 이날만은 도저히 잠을 청할수가 없었다. 경찬이가 맞는데 10여년 동안 잊은적이 없었고 잊을수가 없었다. 그와의 인연, 그와의 친분, 그에 대한 믿음, 또다시 실망과 환멸, 배반을 실감하면서 증오와 분노따위…

소년시절부터 쭉 청년까지의 제일 가까운 친구, 내 마음속의 사내 장부였고 사나이였던 박경찬…

한겨울의 어느날 경찬이의 부름이 있었다.

《오늘저낙 다 우리 집에 와!》

《왜 그러는데…》

《오래믄 오디, 오믄 알디.》

그날 저녁 어른들은 생산대에서 회의를 한다고 희미한 등불아래 담배연기 자욱한 사양실에 빼곡이 앉아있었다.

경찬이는 우리들과 함께 집의 쌀독에서 쌀을 퍼냈다. 그것도 두자루였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60근이 넘을 무게였다. 우리들은 가슴이 두근거리는데도 그의 지휘에 복종해야 했다.

《누구든지 입만 벙긋허믄 알디!》

경찬은 우리들의 두배나 되는 무쇠같은 주먹을 흔들었다.

그때 그는 우리들의 왕이였다. 한또래였고 10촌이 넘는 집안의 동생이였지만 그 덩치는 어른이였다. 동네에서 탕가네 패거리와 그 형제들이 우리들의 김치움에서 김치를 훔쳐가고 벼짚을 훔쳐가고 가을이면 처마밑의 빨간 고추를 타래채로 훔쳐갔지만 움쩍하지 못했다. 《꼬리빵즈 따쿠땅 라쬬몐즈 거우유탕》하고 히히닥거리고 빈정거리고 야유하고 구박했지만 우리들은 찍소리도 못했다.

《마라바디 칭거우빵즈 치모첸 싼뚱빵즈 싼모첸 퉁퉁디 이콰이첸!》

한족동네에서 한어에 능통한 경찬이는 목숨을 내걸고 부딪쳤다. 머리가 터져 피가 줄줄 흘러내리면서 탕가네 《로따》를 밟고 때렸다. 그때부터 탕가네 패거리는 우리들을 멀리했고 김치와 고추도 잃어지지 않았다. 《꼬리빵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부터 경찬이를 우러러보았고 그의 평안도 사투리를 좋아했고 그 주먹에 겁을 먹었다.

쌀 두자루를 동네의 입구 물도랑의 눈속에 묻었다가 일요일에 거리바닥의 월급쟁이집의 로친에게 팔았다. 한근에 30전이였던지 40전이였던지…

난생처음 먹어보는 조미료를 넣고 삶은 돼지고기! 밀가루빵! 그 맛과 향은 우리들의 영원한 맛의 극치였다. 평생 잊을수가 없는 향이였다.

물고기 잡고 능금, 오얏, 참외 훔쳐먹고 트럼프 노는 속에서 우리들의 소년시절이 흘러갔다. 청년시절 경찬이는 군에서 몇년, 군복무가 끝나자 우리들의 유일한 공산당원으로 헌걸찬 사나이의 모습으로 향정부에 출근했다. 무장조직의 정식편제는 아니였지만 우리의 흠모와 부러움을 한몸에 차지했었다. 우리의 만남도 계속되였고 술상도 많았다. 5원이면 개 한마리를 사는 세월에 그는 우리들의 허기진 몸에 보신탕을 선물했고 활력과 힘과 희망을 주었다. 그와의 우정은 점점 더 깊어졌다.

90년대 한국바람이 뒤늦게 고향동네에 불어왔다.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하자 남은 무리들은 안절부절이였다. 경찬이는 다시 활약하기 시작했다. 인당 3만원, 한국땅에 떨어지면 추가 3만원, 한국행이 무산되면 전액 반환! 경찬이의 장담이였기에 그만큼 유혹이였고 못사는 우리들이 들뜨기는 충분했다. 소박한 고향사람들은 향정부란 간판을 믿었고 경찬이의 신분과 됨됨이를 믿었다. 늙은이도 녀인들도 젊은 또래들도, 그중에 짝바지친구이고 10촌이란 혈연의 관계이며 둘도 없는 친구라고 안해의 성화에 못이겨 3만원의 거금을 주저하면서 내놓았다…

방수작업이 자재가 딸려 우리들은 바레시(해체작업)팀으로 넘어갔다. 6메터의 파이프는 경기도의 고열에 불덩이였다. 장갑을 끼고 들고 다닐 때는 괜찮았지만 먼거리에서 어깨에 올려놓으면 금방 어깨가 얼얼해진다. 벌겋게 익었다가는 껍질이 벗겨졌다. 그 혹서에 사나이들이 더위를 먹고 푹푹 쓰러졌다. 얼음처럼 차가운 랭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도 땀으로 흐르고 오줌은 한방울도 없었다. 《해우소(解忧所)》 드나든지가 며칠전이였다. 나는 본격적으로 경찬이를 찾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현장식당으로 뛰였다. 식당출입문에서 거밋거밋한 무표정한 얼굴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폈다. 에스플레이현장 9천명의 일군, 주차장에는 헤아릴수 없는 차량들… 련 며칠 식당에서는 경찬이의 얼굴을 찾을수가 없었다.

《장기사, 우리 현장의 일군들 모두 이 현장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거죠?》

사람 좋아보이는 장기사는 믿음이 가는 한국인이였다.

《아니죠. 현장일군이 9천이 넘는데 이 식당 하나로 용납이 불가능한거예요. 아래동네 식당이 몇집 있거든요. 어떤 팀들은 그쪽에도 가고 또 식당에서 배달하는 팀들도 있다니까요.》

(이렇게 찾는것이 아닌데. 이 현장에 건설팀이 얼마인데…)

나는 다시 퇴근시간을 맞춰 주차장을 돌기 시작했다. 덩치가 큰 놈이면 뛰여가보았다. 그러다보면 서울로 돌아갈수가 없었고 식사시간이 지나면 빵과 음료수로 에때웠다. 밤이면 근로자 쉼터에서 쪼크리고 자고… 낮이면 고온이여도 산골의 새벽은 한기가 스며든다. 비바람을 막을 합판으로 된 림시용 건축이였으니까. 거의 보름동안 현장의 식당, 주차장, 동네의 식당을 전전했지만 경찬이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부름소리를 듣지 못했을가? 듣고도 뺑소니 친것인지 나를 알아보고 행적을 감춘것인지 아니면 그 팀의 일이 끝나고 타지로 옮긴것인지 나는 알수가 없었다. 거의 일주일만에 다시 영등포역의 로숙자들을 볼수가 있었다. 하루 일당 그다음에는 야근, 짬시간을 타서 경찬이를 찾는다고 뛰여다니고… 심신 량면으로 시달리고 피곤했다. 내가 알고있는 서울의 고향친구, 고향동창, 친척 그리고 직장의 동료들의 핸드폰번호를 밤새 두드렸다. 실망뿐이였다. 포기하자! 이제는 기진했다. 내가 3만원을 받으려고 경찬이를 찾는것일가? 지금은 3만원이 그 시대의 거금이 아니였다. 그 3만원은 날렸다고 생각한지가 10년이 넘었었다.

쉬자! 이제는 좀 쉬자! 텔레비죤화면에 익숙한 아나운서들의 얼굴이 바뀐다. YTN인지 SBS인지 KBS인지 관심이 가지 않았고 입놀림만 보일뿐이였다.

박경찬! 어느날인가 동네가 쉬쉬하기 시작한다. 고향사람들의 한국행은 기다림속에서 달이 가고 해가 바뀐다. 농사마저 팽개쳤던 그네들에게는 실망과 후회와 비애와 반항과 아우성으로, 그다음은 악에 받쳐진 신고였다. 반년후 경찬이의 판결서가 내려왔을 때 녀인들의 욕지거리와 저주, 울음소리와 사나이들의 술병을 메치는 소리와 주정에 동네의 크고 작은 개들이 밤새 짖어댔다.

사기죄, 외국인 상해죄로 7년 8개월의 복역이였다. 경찬이의 징역이 시작된 일년후 동네 녀인들의 시달림과 실망과 자책과 후회로 불안속에서 실실 앓던 경찬이의 엄마가 세상뜨자 며느리마저 가출해버렸다. 경찬이의 부친도 오늘 래일할 때 나는 그의 곁에 있어주었다. 혈연관계로 보나 경찬이와의 친분으로 나는 할 일을 해야 했다. 눈을 감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경찬이 부친의 운명직전, 나는 누구나 꺼리는 초상집의 상가에 친구와 동창, 고향의 후배들을 하나하나 사정하여 찾았다. 인기가 일락천장이고 인간성과 됨됨이를 부정 당한 경찬이네 초상집에 누구도 오려고 하지 않았다. 운명전 경찬이 아버지는 내 손을 잡았다.

《님제 우리 아들 친구디. 내가 죽은댐에 말티 않아두 알아서 헐줄 알디만… 우리 경찬이래 사기군이래누나. 아니디. 절대 아니구말구. 그 돈 난 한푼두 못 봤다. 우리 메느리두 땡푼 하나 구경 못허구. 님제두 경찬이래 사기군이랭걸 믿어디나?》

나는 그 애절한 눈길을 피했다. 로인을 안위할수도 답을 줄수도 없었다. 내가 알고있는 경찬이는 그렇게까지 고약하고 야비하고 지독하고 탐욕스럽고 가증스러운 악인이 아니였다. 나의 가슴속 깊이에는 아직도 경찬이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고 경찬이의 사기죄와 상해죄의 진실을 알고싶었다. 많은것이 궁금했고 수수께끼였다. 타향에서 체포되여 그곳에서의 판결…

아무리 자고 또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다. 요즘은 비구름이 모여들면서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 텔레비죤을 켜고 거칠어진 수염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기상청의 예측, 대기의 불안정, 장마전선의 북상, 태풍메아리, 림진강황강댐방류, 집중호우… 이러루한 단어들이 쏟아져나오면서 장마철이 멀지 않음을 다시다시 확인해준다. 장마철이 진정 오는것인가. 이곳의 장마철은 지지리도 길고 길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사흘 나흘이 아니고 반달 한달로 이어진다. 긴긴 장마철에 무엇을 할가?

《귀향! 귀국!》

수십번 갑자르고 망설이고 주저하던 귀국행을 순간적으로 결정했다. 살기 아짜아짜한 세상,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모르는 현장의 사고… 순간 고향의 정든 가두와 거리와 골목, 그 여유작작한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삶의 현장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한강변을 한가히 돌면서 낚시군들을 볼 때 고향의 저수지와 낚시터가 얼른거렸다. 귀국전의 할 일을 하나하나 해나갔다. 먼저 에베란드관광, 후언스카이, 롤러코스트, 남이와 아프리카의 희귀동물과의 만남, 물개의 멋진 공연… 이날은 먼 후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될것이였다. 항공편은 단시일내의 예약이 불가능이였다. 학생들의 중국관광이 줄지었고 교포들의 장마철과 삼복철(피서?) 회피로 귀향길의 값이 껑충 올랐다. 인천 단동행을 택했다. 영원초등학교, 성락교회, 희망교회, 도림사거리, 우성아빠트, 어린이 놀이터는 다시다시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영등포역에서 로숙자들이 비여진 자리를 일별하고 인천행 지하철에 올랐다. 부두에서의 기다림은 너무 따분하고 지루했다. 후회하지 않으려는 귀향길이였지만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석연치 않았다. 상념을 팽개치고 흡연실을 찾았다. 《스모킹룸》이 한눈에 안겨온다. 그만큼 반가왔다. 둬시간 참고 견디였던 흡연의 기회에 한모금 깊숙이 빨아들였다. 이 땅에서의 아픔과 유감과 한을 연기와 함께 훅― 불어버렸다. 기분전환이 좀 되는듯했다.

《형.》

큰 덩치가 벽처럼 앞을 막았다. 심장이 세차게 고동친다. 나는 보고 또 보았다. 자그마한 《스모킹룸》속의 연기속에 분명 그 얼굴이 떠있었다. 나는 굳어졌다.

《형! 정말 형이 맞아!》

현실을 믿을수가 없었다.

《네가… 네가… 경찬이야!》

《형! 형아! 내가 경찬이야, 경찬이라구!》

경찬이는 와락 나를 안았다. 순간 나의 머리와 셔츠가 그의 눈물에 흠뻑 젖었다. 그 눈물은 그칠줄 모르고 흐르고 흐르고 계속 흘러버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주위의 호기심과 의아한 눈길을 의식하면서 우리는 룸밖으로 나왔다.

《형, 어떻게…》

《너 얼마전 에스플레이현장에 있었어?》

《형, 귀국이야?》

《너 옥에서 언제…》

두서 없는 대화가 랭정으로 바뀔 때 승선의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이날 저녁 배우에서 조용한 구석을 찾아 신문지를 펼치고 소주잔을 마주쳤다.

《형, 미안해. 죄송해! 그리구 감사하구. 형의 은혜는 평생…》

경찬이는 무릎을 덜컥 꿇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러지 마. 사나이가 눈물이 그렇게 헤퍼. 덩치값 해라!》

《형, 나 억울한 판결 받았는데 옥중에서도 한국땅에서두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어. 오늘 형을 만나니 설음밖에… 부모 생각이 나구… 형이 아버지 마지막길 보내신걸 알아. 으흑흑… 흑흑…》

빈 소주병이 열개로 늘었을 때 밤도 깊어졌다. 언젠가 선상도 고요해졌다.

《형, 이야기가 길어지네. 나두 동네사람들 잘되라고 한 일이였어. 물론 나두 좀 버는거여.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였어. 결국 나두 협작군인 한국인한테 당했어. 그 자식은 처음부터 사기였어. 그 자식이 돈을 챙기고는 도망쳤어. 반년 동안 찾아서야 심양에서 첩살림을 한다는것을 알아내였어. 아무리 사정하고 얼리고 닥치고 애걸해도 안돼더라구. 술기운에 맥주병으로 내리쳤는데 푹 꼬꾸라지더라…》

후에 그 한국인은 돈으로 관리를 찾았고 경찬이는 사기죄, 외국인 상해죄로 판결되였다. 그 자식이 병원에 석달 동안 입원했을 때 녀자가 남은 돈을 가지고 잠적해버렸다.

《그랬구나. 근데 너 평안도 사투리가…》

《형, 불법으로 숨어다녔어. 감옥에서 감형되여 5년만에 나온거야. 한국에서 중국사람이란것이 알려질가봐 숨어다니고 큰소리로 말 한마디 못하고 몇년 동안 시골만 찾아다녔어. 돼지똥, 소똥속에서 살았어. 피눈물 흘리며 개고생했어. 이를 악물고 돈 벌고… 감옥에서두 많이 생각했어. 나에게도 책임이 있거든. 고향사람들이 나를 믿었거든. 그 사람들이 어떻게 마련한 돈인데…》

우락부락하고 고지식하고 대바르던 경찬이였었다.

《형, 지금 환률로 이 돈이면 인민페 3만이야. 이것은 10여년 동안의 리자구.》

나는 이 정경을 상상해본적이 없었다. 꿈만 같았다. 하지만 분명 만원짜리 무지가 앞에 놓여있다. 선뜻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형, 걱정하지 마. 동네사람들의 돈을 리자까지 준비했어. 이번 장마철에 깨끗이 처리할거야! 고향사람들의 원망과 저주가 싫어. 몇십년을 쥐처럼 숨어살수는 없어. 이제부터는 당당하게 가슴을 쭉 펴고 서울거리에 다닐거야.》

《경찬아!》

나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형, 고향으로 같이 가줘. 아버지 골회랑 뿌린 곳이랑…》

《그럴게.》

새날이 밝아오면서 무서운 소나기가 쏟아졌다. 진정 우리들의 장마철이 시작된다.

/김남현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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