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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념비(37)—길림주변 철가자산전투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11.18일 16:21
동기공세에서의 공주툰전역은 동북에서 동북민주련군이 국민당 한개 군단을 포위섬멸한 승전기록을 창조했다. 공주툰의 승리는 전술보다도 전략적인 의의가 더 컸다. 이때로부터 동북의 국민당군은 사단규모는 물론 군단규모의 병력으로도 감히 출전하지 못했다. 동북민주련군에게 포위되여 소멸될 위기에 처한 기타 부대를 그냥 지켜만 보면서 누구도 감히 구원하려하지 않았다. 때문에 중심도시 수비와 자아보호가 동북 국민당군의 주요 전략사상으로 바뀌게 되였다.

신 5군이 공주툰에서 전멸되자 급해난 국민당군 동북총사령인 진성은 할수 없이 장개석에게 지원을 청했다. 1948년 1월 8일, 심양에 도착한 장개석은 장교들을 불러놓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고 호통쳤다. 그는 진성의 말을 듣고 패전의 책임을 9병퇀 사령 료요상과 신 6군 군장 리도(李涛)에게 돌렸다. 하지만 료요상과 리도는 종래로 신 5군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은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면서 진성의 작전지휘의 무능함을 꼬집었다. 작전총화회의는 저자거리의 말다툼으로 진행되다가 아무런 결과 없이 끝나버렸다. 화가 동한 장개석은 그 이튿날로 남경에 돌아가버렸다.

거듭되는 군사적실패와 부하 장교들의 불복에 견뎌낼수 없게 된 진성은 동북을 떠날 방법을 찾았다. 그는 병을 핑게로 안해를 시켜 자기의 사정을 장개석 부인인 송미령에게 전하여 장개석의 허락을 받아내게 하였다. 주변의 성화에 배겨내지 못한 장개석은 진성의 《병》 치료를 승낙하고 위립황(卫立煌)을 설득해 동북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진성의 비겁한 행위는 국민당 국회내의 큰 소란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진성을 죽여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겁에 질린 진성은 미국에 가 병치료할 계획을 포기하고 상해의 군병원에 숨어버렸다.

동북의 난국을 수습할 임무를 맡은 위립황은 주견이 있고 작전에 능한 항일명장이였다. 그는 병력을 집중하여 조금만 견지하면 새로운 정세를 맞이할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줄곧 미국에 환상을 품어왔던 국민당 고위관원들은 늘 미국과 쏘련을 량쪽 중심으로 한 제3차 세계대전이 곧 일어날것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되면 미국이 중국내전에 참여해 저들을 직접 도울것이라고 환상했다. 이와 같은 막연한 환상을 가진 위립황은 동북에 도착하자 55만 대군을 장춘, 심양, 사평, 금주에 집결시키고 정세변화를 지켜보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서뿔리 출병하지 않기로 작심했다.

72퇀 부퇀장 송무선.

동북민주련군 주력이 심양주변으로 대거 출병하자 장춘과 길림 주변에는 민주련군 여러 독립사단만 남게 되였다. 이들은 야전군처럼 막강한 병력과 무기장비를 갖추지 못했지만 완강한 투지력으로 국민당군의 크고작은 거점을 파괴하고 철도와 도로를 파괴함으로써 도시의 국민당군을 견제하였다.

국민당군은 아군에게 포위, 섬멸될가 두려워 감히 출병하지 못했지만 늘 소규모의 부대를 파견해 주변의 마을을 략탈하고 량식을 탈취하군 했다. 그리하여 동북군구 여러 군분구의 부대와 국민당군간의 크고작은 싸움은 계속 되였다.

동북민주련군의 동기공세가 시작될때 길림성남부에서 활동하던 조선족부대인 72퇀은 송무선 부퇀장의 인솔하에 구전부근의 춘등하(春登河)에서 싸웠다.구전(口前)의 국민당군이 가끔 춘등하에 와서 략탈한다는 소식을 접한 72퇀 전사들은 마파리를 타고 신속히 달려갔다.

박덕선련장이 9련 1패를 거느리고 남먼저 마을에 도착했다가 적과 치렬한 접전을 치렀다. 뒤따라 도착한 9련 2패는 정치지도원 리영선의 명령에 따라 전투에 투입되여 싸웠다. 마을부근에서 일대 혼전이 벌어졌지만 적진은 아군전사들의 기세에 눌리워 신속히 무너지고말았다. 그리하여 72퇀 조선족장병들은 한시간만에 적 40여명을 격살하고 80명을 생포함으로써 춘등하습격전의 승리를 이룩했다.

춘등하 습격전에서 갑급전투영웅인 부패장 박재규, 나팔수 김동묵, 전사 김동운이 희생되였다. 72퇀 장병들은 동향수하(东响水河) 동산에 렬사들을 매장하고 성대한 추도식을 가졌다.

《가슴 쥐고 나무밑에

쓰러진다 혁명군.

가슴에서 솟은 피는

푸른 풀에 즐벅해.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보고 울지 말아

몸은 비록 죽었으나

혁명정신 살아있다.》

전사들의 우렁찬 추도가 노래소리는 동향수하기슭에 오래도록 울려퍼졌다.

한편 길림시동부에서 기동령활하게 싸우던 독립 3퇀과 독립 6퇀도 전반 전세가 좋아짐에 따라 계속 길림시쪽을 향해 진격했다. 이들은 강밀봉, 천강, 룡담산쪽에서 국민당 60군과 크고작은 수많은 전투를 진행하였다.

독립 3퇀 1영 2련 2패 패장이였던 허청근로인이 당시 우리 부대의 작전상황을 소개해주었다.

《그때 어디까지 갔는가 하니까하면 강밀봉. 강밀봉에 조선사람이 많았어요. 그 부락에 들어가서 임무를 맡고 강밀봉에서 이쪽 남쪽인가 올라가면 룡담산이 있습니다. 룡담산 어디 국민당이 들어가고 룡담산앞에 달라즈산이 있습니다. 밑은 절벽이니 못 올라가고 다만 강밀봉으로만 올라올수 있습니다. 달라즈산을 점령하니 국민당 시체가 있었는데 전투가 있은것 같았습니다.

한개반씩 올라가 보초를 섰습니다. 올라가면 룡담산에서 국민당 보초들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놈들 올라 못오고 그냥 지켜보지요. 우리가 있으니 밤에 그냥 보초를 서니까 한개반씩 올라가서 보초를 섰습니다. 곤하면 땅땅 언 국민당시체를 눈에다 보초병처럼 세워놓고 자구 그렇게 며칠씩 보초를 섰습니다. 그러다가 부대가 다시 떠나서 길림 그게 남쪽으로 해서 이때로부터는 계속 우린 행군하는데. 밤에두 행군하는데 중간에서 잔다면 자구 계속 행군했습니다.

그때 길림을 포위하고 길림 장춘사이에서 활약하는데 그때 정황을 보면 적은 갇기워서 독안에 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들이치자면 우리 력량으로는 소모가 클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가두어놓고 갔다왔다 하면서 유격전을 했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포위했다 철수하면 이놈들도 지켜보다가 나옵니다. 그러니깐 더러 나와서 장춘하구 합치려 할 때 적의 뒤를 잘라 포위소멸하였습니다.》

독립3퇀 1영 2련 2패 패장이였던 허청근로인.

한편, 추기공세때 402고지전투를 치르고 룡담산부근에서 싸우던 길동군분구 독립 6퇀은 동기공세가 시작될 무렵 철가자산(铁架子山) 전투를 진행했다. 국민당 60군은 길림시내로 공격해오는 아군을 막기 위해 룡담산동쪽 십여리 떨어진 철가자산에 한개 보강련을 배치하여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해놓았다.

퇀지휘부회의에서 주공임무를 맡은 2영 박종수영장은 철가자산의 지형지물과 적의 화력배치 상황을 소개하고나서 5련을 선봉으로 하고 4련과 6련으로 배합공격하기로 했다. 독립 6퇀은 새벽에 공격을 개시했다. 2영 박종수영장은 주공임무를 맡은 5련 김인한련장과 함께 전사들을 거느리고 돌격했다.

앞장서 돌격하던 5련 전사들이 적의 첫번째 방어선에 막혔다. 김인한련장은 련속 폭파조를 보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하고 희생되였다. 적의 화력에 눌리워 전사들은 오래도록 머리를 들수 없었다. 이때 김천덕(金天德)이 폭파조를 이끌고 적진에 다가갔다. 50메터 가까이에 접근하자 김천덕은 정확하게 수류탄을 뿌려 적의 중기관총진지를 련속 폭파했다.

그는 적의 교통호에 뛰여들어 달려가면서 총창으로 적 네놈을 찔러넘기고 적화구에 접근했다. 교통호에 숨어있던 그는 적 기관총수가 사격을 멈추고 탄창을 바꾸려는 순간 수류탄을 들고들어가 네놈을 생포했다. 이어 김천덕은 수류탄으로 적의 세번째 화점을 제거하고 전사들과 함께 돌진하면서 련속 많은 적을 찔러눕혔다.

전투후 통계를 보면 김천덕은 총창으로 8명을 찔러죽이고 총으로 18명을 격살했으며 15명을 포로하고 또 수류탄으로 14명을 쓰러뜨렸다. 그리하여 상급에서는 김천덕에게 대공 3차를 기록해주고 특등전투영웅으로 표창했으며 길동군구에서는 그에게 《독담영웅(孤胆英雄)》칭호를 수여했다.

한편 3패 패장 신수산도 전사들을 거느리고 적 26명을 격살하고 15명을 포로함으로써 두번째 방어선을 넘어섰다. 독립 6퇀 2영 전사들은 김천덕과 신수산이 개척한 길을 따라 드디어 붉은기를 철가자산 산정에 꽂았다. 하지만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박종수영장은 다리를 부상하고서도 계속 전투를 지휘하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으로 장렬히 희생되였다.

독담영웅 김천덕.

독립 6퇀 2영 박종수렬사와 부인 김영자(간호원).

박종수 렬사 추도회 장면.

박종수 렬사가 받은 상장.

다른 방향으로 철가자산고지를 공격하던 3영도 치렬한 전투를 치렀다. 주공임무를 맡은 2영의 행동에 배합하기 위해 3영은 익측으로 공격을 발동했다. 3영은 먼저 8련을 투입했지만 사상자가 너무 많았기에 다시 7련을 투입하였다.

독립 6퇀 3영 7련의 반장이였던 김병욱로인은 3영 장병들의 전투사적을 이야기했다.

《독립 6퇀 3영 7련 7반 아니 그때 5반 반장이였습니다. 반장질 하니 조금 쉬웠죠. 그때 한개반은 열둘이고, 거기서 402고지 전투를 치르고 402고지라고 강밀봉하고 저쪽의 천강 그 어간의 주요한 교통로인데 우리 부대에 변절자 하나 있어가지고 쑥 내주고말았습니다.

우리 부대에서 다른 련에서 그걸 치라고 명령받고 하니 끝내 못했습니다. 적이 200여명 잘 되는데 적진은 원고지가 있고 원봉이 있고 차봉이 있지요. 그래 우리는 원주봉으로 향해 진공했는데 여기서 어떻게 시설이 그런지 나무가지를 다 깎아 빤빤하고 지뢰까지 매설해놓았습니다.

우리군은 먼저 포격으로 지뢰를 다 터쳤습니다. 조성학이라구 있는데 영웅인데 셋이서 36명 적을 포로해 영웅칭호를 받았습니다. 조성학이라구. 그래 나는 그냥 따라 올라가기만 하고 곁에서 방조나 했지요. 적을 내손으로 잡은건 모르지무. 적은 도망가구 저쪽의 룡담산쪽으로 철가산쪽으로 도망하고. 그게 어느땐가면 10월 30일날 47년,

그다음에 11월 30일쯤해서 철가산전투가 붙었습니다. 완고하기 짝이 없습니다. 적은 얼마 안되는데 백성을 시켜 산꼭대기에 물을 부어 얼구어서 못 올라가게 했습니다. 한번 디디면 미끄러지고. 그때 난 울로신발을 신었습니다. 조선사람은 울로신발을 신으면 안됩니다. 한족은 되는데 초댄즈를 말려 도로쑤셔 넣고 각반으로 동여도 쩍 벌어집니다. 그래 이런걸 신고 고지에 올라가고 구루터기라도 쥐면 쭉 밀려 저 아래까지 굴러 내려갑니다.

잘못 되면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미끄러져 내려갈 위험이 있었습니다. 7련이 주공임무를 맡았고 우리 5반은 협공했습니다. 거기서 3패 8반의 저 김윤식, 한철혁이 있었는데 한철혁이가 거기서 공을 세웠습니다. 김윤식이랑. 적을 많이 죽였습니다. 적의 도치까를 마스고 적 참호에 들어가 적의 대가리를 중기에 대고, 그래 적을 잡고 도망가는걸 기관총으로 돌려 숱한 사람 잡았습니다. 거기서 공을 세웠습니다.》

철가자산 전투을 회억하고있는 독립 6퇀 3영 7련 반장 김병욱로인 .

철가자산전투에서 특등공을 세운 김윤식.

산비탈은 말그대로 얼음판이였다. 나무들은 모두 베여버렸다. 전사들은 마른 나무그루터기를 잡으며 간신히 고지로 향해 올라갔다. 3영 7련의 김윤식(金允植) 반장은 뾰족한 철을 박은 신을 신고 두명 돌격조원과 함께 앞으로 나갔다. 적의 미친듯한 기관총사격에 두명 전사가 쓰러지고 김윤식도 어깨에 적탄을 맞았다. 김윤식은 아픔을 참으며 적의 화력을 피해 철조망을 넘은후 련속 수류탄을 던졌다.


하지만 견고한 적보루는 무너지지 않았고 멈추었던 적의 사격은 다시 시작되였다. 수류탄을 다 써버린 뒤였고 다른 무기는 없었다. 김윤식은 적보루뒤쪽으로 기여가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그는 기관총사격에 여념이 없는 적 사수에게 덮쳐들어 맨손으로 목을 조였다.

엎치락 뒤치락 싸우던끝에 김윤식은 민첩하게 적의 머리를 중기관총에 박아 쓰러뜨렸다. 혼신의 힘을 다해 적을 쓰러눕힌 그는 다시 기관총을 주어들고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면서 계속 싸웠다. 철가자산전투에서 김윤식은 특등공 한차를 세웠다.

치렬한 철가자산 전투는 드디여 아군의 승리로 끝났다.

/ 김성룡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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