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과 글에는 한어단어로 된 명사, 술어들이 많다. 고 김학철작가는 생전에 한어에서 따온 우리 말과 글이 70%가 넘는다고 통계를 한적 있다. 다행으로 600여년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어냄으로써 순수한 우리 민족 문자가 생겨난것이다. 그러니 한어로 글을 짓던 민족이 자기 민족언어를 갖게 된것만으로도 세종대왕께 감사를 드려야 할 도리다.
그리고 보다 자기 민족 언어문자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것이다. 지금 우리는 순수한 우리 민족 언어문자를 살리기 위해 고유어사용을 제창하고있는것이다. 여기에는 언어문자사업일군들과 학자들의 노력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일부 매체나 단위들에서 한어직역에 큰 중시를 돌리지 않고 그런대로 쉽게 넘아가는 현상으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전 한 신문에서는 《한 상회가 사무실을 새로 이전하고 개소식(開所式)을 가졌다》고 적고있었다. 한문을 직역한것으로 틀린것은 아니지만 참 어딘가 듣기가 거북하다. 우리말에는 또 불안한 소식이나 불미스런 소식, 엉터리 없는 소식 같은 뜻을 나타내는 《개소식》이라는 단어가 있는데서 혼돈을 가져올수도 있다.이 글에서는 한자를 밝혀놓았으니 쉽게 알아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웃음거리를 만들기 쉽상이다.
문제는 《사무소개업식》이라고 풀어쓰면 순통하고 듣기에도 자연스러운데 어쩌면 이런 표현으로 그대로 넘어갈수 있을가싶다. 이런 현상은 거리 간판들에서도 쉽게 볼수 있는데 한자를 직역으로 번역해놓으면뜻이 전혀 통하지 않거가 참 듣기 거북하기 짝이 없는 단어들이 적지 않다.
옛날 한 고을에 사또량반이 살았다. 하루는 방에 앉아있노라니 파리가 자꾸 달려들길래 머슴을 불렀다. 《얘 돌쇠 너 거기에 있느냐? 당장 사랑채에 나가서 〈호미〉(虎尾)를 가져오너라》 《예, 알겠사옵니다.》 돌쇠는 한달음에 사랑채에 나가 쇠호미를 가져다 량반앞에 올렸다. 헌데 량반은 대노하여 꾸짖었다. 《이런 무식한놈이라구야. 쇠호미를 가져다 어떻게 파리를 쫓는단 말이냐!》 량반이 말하는 《호미》는 옛날 부자집들에서 말린 범의 꼬리로 파리며 모기를 쫓게 만들어쓰는 생활용기구였다. 《낫 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돌쇠가 그 말뜻을 알아차릴리 마무하였다.
옛이야기라고 웃고넘어갈 일이 아니다. 대중을 위한 신문이나 잡지를 꾸리면서 대중에게 쉽게 소통되면서도 감칠맛이 나고 해득하기 쉬운 단어를 골라가며 정성을 넣어 글의 수준을 높여간다면 환영받지 못할 리유가 없을것이다.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