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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영웅 허학진과 그의 어머니가 엮은 미담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5.06.24일 15:42
—소화영웅 허학진렬사 순국 20주년을 기념하여



허학진렬사와 그의 어머니 량순자(고)

6월 27일은 소화영웅 허학진렬사 순국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2009년 10월 나는 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남관분회와 경제개발구분회의 위탁을 받고 영웅의 고향인 룡정시 삼합진에 가 허학진렬사의 어머니 량순자로인님을 찾아뵌적이 있다.

그때 량순자로인님과 나눈 이야기와 그후 렬사생전 소속부대 장병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하도 감동적이여서 오늘 이글을 쓴다.

중조 변경인 두만강변에 위치한 룡정시 삼합진에 아담하게 새로 지은 기와집, 큰아들네와 같이 단란하게 살고있는 량순자로인은 호리호리한 키에 갸름한 얼굴, 인자한 웃음을 하고있는 그를 보고 소박하고 시원시원한 70대를 넘긴 농촌로인이라는것이 인차 알았다.

그는 반갑게 맞으면서 가슴아픈 추억을 더듬어 영웅의 동년시절부터 부대에서의 생활, 희생될때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학진이는 1972년 룡정시 삼합진(부유향) 조동촌에서 막둥이로 태여났다. 걸음발을 타기 시작해 얼마 지나지 않아 뇌염에 걸려 어머니는 다른 두자식을 키울때보다 더 정성을 몰부었다. 그래서인지 자기도 모르게 학진이에게 정이 더 쏠렸다 한다. 학진이도 어릴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매우 극진하였다. 찬바람이 울부짓는 겨울이면 청년활동실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선 가마목을 짚어보며 언제나 어머니 이부자리를 따스한 가마목에 펴드리고 자기가 그 옆에 누워잤다.

커서는 어머니가 힘든 일을 할세라 돼지죽도 도맡아 주군 11하였으며 입대한후에도 편지마다 어머니께서 힘든 일을 하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본래 성근하고 활달한 성격이여서 집에서 뿐만아니라 밖에 나가서도 그렇게 한 허학진이다.

1989년, 룡정시 조양천고중을 졸업하고 귀농한 학진이는 어느 하루 소수레를 몰고 밭으로 가다가 술에 취한 로인을 만났는데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수레에 싣고 집까지 모셔다들여 동네방네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는 다 커서도 노상 어머니를 《엄마, 엄마》 하며 친절히 부르면서 어머니께는 좋은 일 궂은 일 숨기지 않고 다 말하는 성미이다. 평시에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도 자주 《엄마, 나는 살아도 밫나게 살고 죽어도 빛나게 죽겠소! 》라고 하였단다.

이는 학진이가 성인으로 성숙되면서 형성된 솔직하고 소박한 인생관의 고백이 였지만 당시 어머니는 그 말의 함의를 미처 리해 못하고 무심히 흘러보냈다. 아들이 희생된 후에야 비로서 그의 가슴속에 숨은 그 참뜻을 알게 되였다. 1993년, 군대모집이 있자 학진이는 선참으로 신청했다. 그의 소망은 탱크를 몰고 적의 보루를 향해 비호같이 돌진하는 야전부대였는데 생각밖으로 장춘시소방지대 소방전사가 되였다.

그렇지만 그는 마음이 들뜨지 않고 무엇을 하면 그것에 애착하는 뢰봉정신으로 소방사업을 열애하였으며 높은 책임감으로 소방훈련에 열중했다. 입대한후에도 여전히 남을 돕기를 즐겼으며 특히 반장으로 된 후에는 반내 전사들을 더욱더 관심하였다. 그는 입대한지 불과 1년밖에 안되는 짧은 사이에 3차례 표창받았고 영예롭게 3등공 1차 세우고 우수전사로 평선되였다.

1995년 봄, 허학진은 어엿한 소방대원으로 휴가로 집에 가게 되였다. 부대로 떠나기 며칠전의 밤, 학진이는 어머니곁에 다가앉아 소방부대 생활을 차근차근 이야기하였다. 불끄기는 전선에서 적과 싸우는 전투와 마찬가지로 필요시에는 생명도 서슴없이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며 농사일에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등을 정겨웁게 어루만지면서 재삼 당부하였다. 《엄마, 전투에서 어찌 상하지 않고 죽지 않는다고 단언할수 있겠소. 일부 유가족들은 부대에 와서 무리한 태도로 과분한 요구까지 제출해 부대 지도자들을 난감하게 하는데 나는 이런게 질색이오. 엄마, 만약 내가 죽더라도 엄마는 절대 그러지 마오. 이러면 내 얼굴에 똥칠하는거요.》

평소 소화전투의 간고함과 위험성을 직접 체험한 허학진은 인민의 생명재산을 구해내기 위해서는 시시각각 자기 목숨마저 서슴없이 다 바칠 만단의 사상준비를 했다.

1995년 6월 27일 새벽, 장춘뻐스공사 남부역 대합실에 큰 화재가 일어났다. 소방지대에서는 전투의 태세로 소방차 33대, 장병 180명을 출동시켰다. 그날 당직이고 1호차, 1호 전투원이며 2반 반장인 허학진은 추호의 주저도 없이 오로지 인민의 생명재산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뛰여들었다.

세 전우와 함께 재빨리 사다리를 잡아타고 세차게 타오르는 지붕우에 올라가 지붕에 구멍을 뚫고 불타는 천장에 잽싸게 물총을 휘둘렀다. 기세등등하게 충천하던 화세는 차츰 기염이 꺾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타는 지붕에서 뿌지직, 뿌지직 하는 소리가 련달아 났다. 수시로 지붕이 무너져내려앉을 태세이다. 긴급신호임을 알고 허학진은 화재 중점부위의 기염을 빨리 꺾으려고 추호의 동요도 없이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물총을 휘둘렀다.

이때 돌연 《쿵》하는 소리와 함께 1120평방메터 되는 지붕 전체가 무너져 내려앉았다. 허학진은 다른 전사와 함께 불바다속에 떨어졌다. 전사들이 그를 구하려고 물총을 쏘았으나 거리가 멀어 효과가 없었고 허학진은 천장에 깔려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그해 허학진은 23세 꽃나이였다.

비보를 받고 가족의 부축임을 받으며 량순자어머니는 부대에 도착하였다. 그렇게도 애지중지 키운 1메터 80쎈치나 되는 훤칠한 키골의 아들이 소방대옷을 정연하게 입고 조용히 눈을 감은채 누워있었다. 어머니는 목이 터지게 부르고 또 불렀다. 그렇게 효성스러운 아들은 어머니의 애타는 부름에 아무 대답이 없었다.《엄마,엄마》하며 다정다감하던 아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는 현실앞에서 어머니는 그만 정신을 잃고말았다.

부대병원의 지성어린 치료에 의식이 회복되자 어머니의 머리에 선참으로 떠오르는것이 몇달전 아들이 집으로 휴가왔을 때 하던 그 의미 심장한 간곡한 부탁이 기억났다. 그렇다, 아들은 생전의 위대한 리상을 목슴으로 실현하지 않았는가! 빛나게 살고 영광스럽게 죽자 하더니 그 진지한 부탁을 생각해서라도, 견강한 조선족 녀성으로서 또 학진의 어머니답게 살아야 한다.

어머니는 힘내여 침대에서 일아났다. 부대 지도자가 친히 찾아와 사후처리에 무슨 요구가 있는가고 친절하게 물었을 때 어머니는 《나는 아직 내힘으로 살아갈수 있으니 아무런 요구도 없습니다》. 사후처리문제로 너무 난감해 하지 말라며 되려 부대 지도자들을 위안하였다.

부대 책임자는 어머니의 상상외의 대답에 그만 목이 꺽 메여 어머니 두 손을 부여잡고 한참 고개를 숙이더니 이윽고 다른 문제를 꺼냈다. 《골회암은 어떻게 처리하는것이 좋겠습니까?》 이 물음에도 어머니는 먼저 부대와 전우들을 생각했다. 《고향인 내 곁으로 가져갔으면 좋겠지만 이곳에 남겨두는것이 더 좋을것 같습니다. 생전에 그렇게도 소방부대에 충성했으니 죽은 령혼이라도 부대와 전우들과 함께 있는것이 좋울것 같아서 입니다》.

어머니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지도자를 수행하던 아들의 생전 두 전우가 눈물을 머금고 《어머니!》하며 학진의 어머니를 포옹했다. 장병들은 연변에서 온 이 조선족어머니를 경모의 눈길로 오래오래 쳐다보았다.

그날 아들의 희생에 대해 학진의 어머니는 이런 대견스러운 말을 남겼다.

항미원조 전선에서 희생된 렬사들의 가족들은 친인의 시체조차 찾지 못했는데 그들에 비하면 자기는 괜찮은 편이며 아들이 나라를 위해 영광스럽게 희생되였으니 보지 못해 그리울뿐 살아있는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또 지방정부의 배려와 장춘시 소방지대의 따뜻한 관심으로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몸에 병은 있어도 아들 며느리의 극진한 효성에 떠받들려 만년을 행복하게 보낸다고 했다.

옆에 앉아있던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옳바른 처사로 지난해 우리 가정은 삼합진 5호가정으로 평선되였습니다.》고 덧붙인다.

나는 여러가지 질병으로 고생하는 량순자어머니가 하루 속히 완쾌하여 건강장수하시기를 은근히 바랬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2011년 학진의 어머니는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한채 가석하게도 별세했다는 비보를 받았다.

비록 영웅과 그의 어머니는 우리곁을 떠나갔지만 그들의 고상한 애국주의정신과 시대적정신은 아름다운 중화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고있는 우리들에게 힘을 보태주고있다.

특히 룡정시정부, 장춘시소방지대의 중시와 사회 각계의 공동노력으로 금년 8월 영웅의 고향인 룡정시혁명렬사릉원에서 소화영웅 허학진렬사기념비 제막식을 가지게 된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되였다.

오늘 영웅과 그의 어머니는 구천에서 정든 고향과 분투했던 장춘의 천지개벽의 변화를 굽어보며 어제날에 이어 계속 미담을 엮어가리라 믿는다.

/ 윤영학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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