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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할빈행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0.11.11일 11:05
● 글 흑룡강성연수현조선족중학교 김춘식

1967년, 열세살나던 해였다. 여름방학을 한 그날 오후, 상지현 모아산진에 살면서도 할빈에 가보지 못했던 나는 할빈에 가볼 생각이 무척 났다. 마침 그때 큰형님이 동북농학원에서 공부하고있어 나는 이 기회에 할빈에 가기로 맘먹었다.

동북농업대학(원 동북농학원)

부모님이 알면 못가게 막아나설것을 빤히 아는지라 두 분이 일터에서 오기전에 미리 떠나기로 작심, 내가 할빈에 간다고 이웃에 말을 남기고 오후 5시렬차를 잡아탔다.

그때 나의 호주머니에는 단돈 1원밖에 없어 차표를 살 엄두는 전혀 내지 못했다. 전에 가끔 차표없이 도적차를 탄적이 있는지라 할빈역을 빠져나갈수 있으리라 생각했던것이다. 그때까지만도 《우물안의 개구리》나 다름없었던 나는 할빈역이 얼마나 크고 검표구의 검사가 얼마나 심한지를 전혀 몰랐는데 내가 살고있는 모아산역처럼 차표가 없이도 쉽사리 빠져나갈수 있을줄로 알았다.

그런데 이런 변이라구야, 아성역을 지난지 얼마 안 돼 갑자기 차표검사가 시작됐다. 렬차원들이 차바곤량켠 출입구를 딱 막아서고 한사람 한사람씩 검사하는데 이건 어디로 뺄래야 뺄곳이 없었다.

전 같으면 화장실에 들어가 피하련만 갑자기 들이닥친 일이라 미처 그럴새도 없어 렬차원에게 차표를 보여줘야만 했다. 《독안에 든 쥐》마냥 꼼짝 못하고 붙들린 나는 다른 몇사람과 함께 렬차장실에 들어갔다.

렬차장실에 붙들려 들어갔던 사람들은 모두 벌금을 물고 나갔지만 나는 돈이 없어 잠자코 있었다. 렬차장은 젊은 아줌마였는데 그는 나에게 눈을 부릅뜨며 왜 차표를 사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하면 안될것같아 거짓말을 꾸며댔다. 얼마전에 아버지가 병으로 할빈병원에 입원해 있는데(시간이 맞지 않을뿐이지 아버지가 입원한것은 사실이였다) 나는 공부하느라 아직 병원에 가보지 못하고 이제 방학을 해서야 찾아가보게 됐는데 집에 돈이 없어 하는수없이 차표를 못 사고 차에 올랐다는것, 호주머니에는 단돈 1원밖에 없다며 호주머니를 홀딱 뒤집어보였다.

아마 내가 나이 어린데다 꺽꺽거리며 서툰 한어를 번지는것을 보고 동정심이 생겼는지 렬차장은 표정을 바꿔 부드러운 어조로 아버지가 할빈의 어느병원에 입원했는가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는 위병으로 몹시 앓아 할빈에서 대학에 다니는 큰형님이 와서 모셔갔다며 먼저 큰형님한테 가봐야 하는데 내가 할빈행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하고 나서 방금 호주머니를 뒤적일때 꺼낸 편지봉투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형님이 집에 보낸 편지의 봉투였는데 그 주소를 보며 형님을 찾아가야했기에 그때 갖고 떠난것이다.

그러자 렬차장은 나에게 어느 역에서 내리려는가고 물었다. 그 말에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의아해하며 할빈에 가는데 할빈역에서 내려야하지 않는가고 되물었다.

사실 나는 그때 할빈에는 역이 하나인줄만 알았지 삼과수역이요 빈강역이요 향방역이요 하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렬차장은 웃으며 동북농학원에 가려면 그래도 향방역에서 내려야 가장 가깝다면서 나더러 걱정말고 여기에 앉아있다가 향방역에 도착하면 자기와 함께 내리자고 했다.

향방역

렬차가 향방역에 도착하자 렬차장은 나와 같이 내리더니 역의 사업일군을 불러 귀띔하고 나서 나보고 그를 따라 나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렬차장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그 분을 따라 검표구로 갔다. 그 분은 검표원에게 렬차장의 부탁이라면서 나를 내보낸후 동북농학원에 가려면 몇호 전철을 타고 어느역에 내리라고 상세히 알려주었다.

내가 이리묻고 저리묻고 해서 겨우 큰형님의 숙소에 들어섰을 때는 밤이 꽤나 어두워진후였다. 그때까지 형님은 회의에 참가하느라 아직 숙소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고맙게도 형님과 한 침실에 있는 형님동창생이 나에게 과자봉지와 물을 건네주고는 형님을 데리러 갔다. 얼마 안지나 숙소에 돌아온 형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왜 이렇게 왔는가고 물었다.

내가 그냥 부모 몰래 놀러왔다고 하면 형님으로부터 꾸지람당할가봐 아버지가 병보러 가라해서 왔다고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기실 그때 우리 집은 무척 가난했기에 집에서는 형님의 식비와 교과서 비용도 제대로 못대주는 형편이였다. 형님은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것을 빤히 알았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형님은 이튿날 옹근하루 시간을 내서 나를 데리고 시내구경을 시켰는데 나는 공원이란것도 그때 처음 들어가보았다. 형님은 또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병도 보이고 약도 지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때문에 형님은 한동안 더 돈에 딸렸을것이다.

그 다음날 나는 혼자서 거리구경을 했는데 현소재지에도 못가봤던 나에게 있어서 대도시인 할빈의 모든것은 신기하기만 하였다. 마침 문화대혁명시절이라 온 거리에 누구누구를 타도하자는 구호가 씌여져 있고 건물벽에는 대자보들이 가득 붙어있었다.

할빈역

할빈에서 이틀을 보낸후 형님은 말미를 얻고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집에 들어선 나는 부모한테 욕을 먹을가봐 속이 두근닥거렸다. 그런데 생각밖으로 아버지는 꾸지람대신 《허, 참 용케 찾아갔구나》하고 웃으며 말했다.

후에 어머니한테서 들은 말이지만 내가 할빈으로 간다고 떠난후 집에서는 몹시 걱정했는데 아버지는 《걔가 제대로 찾아가기나 했는지?》, 《돈 한푼없이 어디서 배를 곯지는 않나?》하면서 가끔 근심에 쌓였다고 한다.

그후 며칠간 나는 또래친구들앞에서 숱한 자랑거리를 내놓았다. 필경 그들가운데서 할빈에 가본 애는 없었으니깐. 특히 도적차를 타고 갔던 경과를 거짓말절반 섞어가며 엮어갈 때 애들의 부러운 눈길을 바라보며 나는 여간 시뚝해하지 않았다.

가난에 쪼들렸던 그제날, 도적차를 타다 개찰구의 일군한테 한번씩 붙들리면 숱한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럼에도 차표없이 차에 오른 나를 그렇게 살틀히 보살펴 준 인자한 그 렬차장아줌마가 오늘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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