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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도 적고 근무·시험이 더 급해…어쩔 수 없죠"
(서울=뉴스1) 류보람 기자,양새롬 기자 = 자녀 수가 줄고 당장 생계가 급한 젊은 세대가 늘면서 명절이면 조부모 가정이 귀성한 자녀 가족들로 북적이던 풍경도 점차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 거주하는 김모(71) 할머니는 지난 23일 "할아버지는 병으로 죽고, 나라가 어려워 아들 내외는 먹고 살기 바쁘다"며 "추석을 혼자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바로 앞방과 옆방에도 비슷한 처지의 노인네들이 있다"며 "사연 있는 사람들끼리 가족처럼 모여서 추석을 보내면 된다"고 말했다.
인근 문래동에서 13년째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토마스의 집'을 운영하는 박경옥(55·여)씨는 "명절이면 가족과 있지 못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이 평소보다도 많다"고 귀띔했다.
박씨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쪽방촌에 사는 어르신들이 배식 봉사에 참여해 더 어려운 사람들과 명절을 보낼 예정"며 "추석에 급식소에 많은 분들이 찾아와도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업에, 생업에 바쁜 자식들을 배려하느라 어쩔 수 없이 '조용한 명절'을 선택했다는 이들도 많았다.
영등포구의 한 시장에서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A(62·여)씨는 '기러기 엄마'다.
남편과 아들은 유학 때문에 중국에 있어 A씨는 혼자 추석을 보낼 예정이다.
혼자 한국에 남아 가게를 운영한 지 십여 년 됐다는 그는 "중국을 오가는 데 돈이 많이 들어 이번에도 전화로 안부를 전할 것"이라며 "외로운 것보다 아들에게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 해줘 미안하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최모(62)씨는 다가온 딸의 수험 준비를 위해 친척들과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지 않기로 했다.
최씨는 추석날도 스스로 집을 나와 택시 영업을 할 예정이다.
최씨는 "딸이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집에서 친척들이 모여 공부는 잘 하는지, 붙을 수 있는지 물으면 딸에게 스트레스일 것"이라며 "이번 시험에는 꼭 붙어 다음 명절은 여럿이 명절답게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목동에 사는 심모(67)씨는 일본에서 유학 중인 아들 부부와 영상통화로 추석 인사를 대신하기로 했다.
아직 아기인 손자를 데리고 아들 부부가 건너오는 것도 걱정스럽고, 부인과 일본으로 건너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유학생 신분에 부모님 대접이 부담이 될까 접었다.
심씨는 "지난 설에 봤으니 이번엔 스마트폰으로 손자 얼굴 보고, 집사람이 아들 좋아하는 반찬거리를 부쳐 주는 걸로 지나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며 웃었다.
25일 보라매공원에서 만난 장모(77) 할아버지는 "자식과 손주들이 있어도 차례를 지내거나 하지 않고 올해도 아침만 먹고 다들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 할아버지는 "요즘은 자식 수 자체도 적고 며느리들은 친정에도 가야 하니 서로 도리만 하는 게 편리하긴 할 것"이라면서도 "가끔 북적이던 명절 분위기가 그립기도 하다"고 속내를 밝혔다.
안모(70) 할머니도 "간호사 딸은 교대근무 당직인 데다 시댁에 먼저 가느라 추석 당일에는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서운해했다.
안 할머니는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 하느라 고생하는 건 대견하지만 친정엄마 입장에선 허전한 기분이 들기는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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