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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그리고 또 미안해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04.05일 11:09
지난세기 70년대 중반에 나는 한 국유기업단위에서 전직 단지부서기로 사업하였다.

그때 내 나이가 이미 26살을 넘어 련애할 때도 되였다. 몇곳에서 중매군이 나서서 처녀들을 소개했고 또 단위의 몇몇 처녀직원들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나는 곁눈 한번 판적이 없었고 대상자를 만나본적은 더욱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분이란 따로 있는가 본다. 1978년 5월 농촌에 있는 나의 6촌형님이 한 처녀를 소개했다. 그 처녀는 그때 집체호에 있는 지식청년인데 빨리 자기 집에 와서 만나 보라는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난생처음으로 대상자를 만나보게 되였는데 첫눈에 그 처녀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 처녀도 나를 좋아 한다는 감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 처녀가 바로 지금의 나의 안해이다. 아마도 천상배필인가 본다.


좀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부모몰래 그녀와 근 일년간 비밀련애를 했다. 그사이 감정도 깊어지고 신심도 생기자 장인과 장모님의 허락을 받으려고 그녀의 집으로 갔는데 첫 걸음에 《퇴짱》을 맞고 려관에서 자는 신세로 된일이 있다.

지금 내가 며느리를 맞고보니 그때 장인과 장모님이 나한테 《퇴짱》 놓은 일이 리해가 간다. 어느 부모인들 20여년이나 곱게 자래운 딸을 두고 쉽게 대답하겠는가.


1980년 8월 31일, 우리는 2년 3개월이란 련애장정을 마치고 끝내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전날 대줄기같은 큰 비가 억수로 쏟아져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근심에 잠겼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에서 그녀의 집까지 100여리나 되였는데 만약 계속 비가 내리면 그 흙길을 어떻게 가는가? 그러나 밤중에 비가 멎었고 결혼식날 아침에는 붉은 해까지 솟아 올랐다.

지금은 결혼식에 십여대의 승용차를 쓰는데 그때 나는 해방패 화물자동차 한대만 썼다. 그만해도 그땐 다 괜찮은 셈이였다. 단위동료들이 돈을 모아 나의 결혼식을 축하하여 가져온것은 커다란 거울(大镜子) 하나뿐이다. 결혼사진은 물론 흑백사진이였다. 그래도 그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결혼할 때 나는 28살이고 안해는 24살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좋은 시절이였다. 결혼해서 우리는 남의 창고를 얻어 한달에 5원씩 집세를 주기로 하고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어느덧 30여년이란 세월이 흘러 나는 명년이면 60이 된다. 하나밖없는 아들도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까지 하여 며느리와 함께 북경에서 사업한다. 그들은 북경에서 좋은 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아빠트를 마련했고 자가용도 장만했다. 우리가정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훌륭한 가정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을것 같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항상 한 사람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하다. 그사람이 바로 나의 안해이다.


그는 처녀시절 《백에 하나를 뽑을》만한 미인이였다. 물론 지금도 미인이다. 나는 항상 하느님이 도와 나에게 이런 《떡》이 차려졌다고 롱을 한다.

18년전 내가 새 단위에 조동되여 갔을적의 일이다. 새 단위의 인사과장이 내가 집에 없을때 우리 집에 일보러 왔다가 나의 안해를 보고 《아버지가 어디로 가셨는가》고 물었다. 아마 나의 안해를 딸로 오해한것이리라. 내가 무대랑(武大郎)정도는 아니지만 얼굴이 겉늙어 보이고 또 번대머리이기에 우리 부부는 확실히 나이 차이가 많아 보인다.


안해는 나에게 시집와서 별로 편안한 생활을 누리지 못하였다. 그는 선후로 농기계공장과 건축공사에서 체력강도가 비교적 높은 일을 했다. 하지만 나는 몇십년 동안 책상머리에서 사무를 보았다.

그때 일부 사람들은 자기 권력과 개인관계를 리용하여 배우자를 좋은 일자리에 안배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만약 그 당시 나도 그렇게 하였다면 안해는 후에 수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을것이다. 지금 안해는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대답은 명백할것이다. 이점에 대하여 나는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1997년 겨울 안해는 로씨야로 가서 일년 남짓하게 장사하다가 1999년에는 또 조선 라진에 가서 일을 하였다. 2000년 겨울 안해는 한국로무의 길에 올랐다.

나는 지금도 기차가 역을 서서히 떠날 때 안해가 눈물 흘리고 어린 아들이 역에서 눈물범벅이 되여 외국으로 떠나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던 기억을 잊을수가 없다.


그때로부터 안해는 장장 11년이란 세월을 한국음식점에서 일하였다. 어떤 때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신경이 곤두설 때도 있었단다.

한번은 그릇 20여개를 안고 층계를 내려오다가 고의적으로 땅에 콱 떨어뜨렸는데 사장님은 말도 못하더란다. 오히려 고객들이 다가와서 어디 상한데 없는가 하면서 위로하여 주더란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런짓까지 했겠는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아프다.

그동안 나의 장인과 장모님은 선후로 세상을 떠났다. 나의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어떻게 보면 세상은 정말 무정하다. 돈이 무엇이길래 부모님의 림종에도 효도하지 못하고 갚을래야 갚을수 없는 유감으로 남겼겠는가?


나도 이 10여년간 집에서 부지런히 사업하느라 했고 두집 부모의 큰일이면 앞뒤로 달려다니며 하였다. 아들을 열심히 받들어 대학에도 보내고 성공시켰다. 그러나 안해에게 비하면 나는 한것이 너무나도 적다. 안해는 우리가 정의 첫째가는 공훈이며 《황소》이다.


나는 50살전에 안해를 보고 《사랑한다》고 말한 기억이 없다. 그 년대에는 모두 그러했다. 그러나 50살 이후 제입으로 안해를 《사랑한다》는 말을 할줄은 생각도 못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안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되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좀 쑥쓰스럽던것이 지금은 습관이 되였다. 번마다 안해와 통화할때면 자연스럽게 《사랑해》라고 한다. 그러면 안해가 흡족해하는것을 직감으로 느낀다. 실험에 의하면 부부가 날마다 서로 《사랑해》하고 말하면 건강에도 좋은 점이 많다고 한다.


몆년전 안해가 한번 귀국한적 있다. 그때 나는 큰마음을 먹고 연길공항에서 생화 한묶음을 사서 비행기에서 내리는 안해에게 듬뿍 안겨주었다. 내 일생에서 처음으로 안해에게 안겨준 생화다. 돈을 많이 벌어 감사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단 한번은 그렇게 하고 싶어서였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았다. 남도 아니고 제 안해인데.

우리 부부는 60이 가깝도록 지금까지 서로 《여보, 당신》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안해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데 습관되였다. 그러면 더 친절한 감이 든다.

나는 《황소》안해가 그만 고생하고 하루빨리 귀국하기를 바란다. 나와 안해는 손자(손녀)가 하루빨리 이 세상에 왔으면 한다.

아무래도 우리가 정말 늙어가는가 본다. 그렇지 않으면 왜서 손자(손녀)생각하겠는가. 그런데 아들며느리는 급해하지 않는다. 먼저 사업에 몰두하고 3년후에야 아이를 본단다. 세상이 바뀌니 방법이 없다. 아무래도 그들이 하자는대로 해야 할가부다. 나와 안해는 아들며느리가 잘되는것을 제일 큰 쾌락으로 삼는다.


옛날 사람들이 안해 자랑하는 사람을 큰 천치라고 하였는데 나는 한번 이런 《큰 천치》가 되고싶어서 이 글을 쓴다.


리영춘 글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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