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전 국민이 다 아는 시, 윤동주의 ‘서시’를 낭송해야 하는데 도저히 첫 구절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본 연습 때부터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울컥 눈물도 났다.
한국 영화상 최초로 윤동주 시인의 시와 인생을 다룬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에서 윤동주를 연기한 배우 강하늘은 끝도 없는 부담감에 시달렸다. ‘제1호 윤동주’가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윤동주라는 이 커다란 인물을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오는 18일 개봉을 앞둔 ‘동주’의 윤동주를 만나기 위해 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강하늘을 만났다. 그는 “처음엔 기쁘고 흥분되는 마음으로 윤동주 역할을 선택했는데 촬영 날이 가까워져 오면서 ‘잠수 타 버릴까’, ‘도망가 버릴까’ 생각마저 했다”라고 회상했다.
장면 하나하나 촬영이 끝나버리면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장 겁났던 게 그거예요. 내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 장면이, ‘오케이’가 돼 버리면, 오천만 명 누구나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세상에 나가는 거 아니에요. 내 인생에서 바꿀 수 없는. 그런데 그 작품에서 내가 연기한 인물이 윤동주 시인이래. 부담감이 말도 못했죠. 촬영한 것도 걱정이 되고, 할 것도 걱정이 되고.”
영화 ‘동주’는 일제 강점기 한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인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인이 되고 싶은 윤동주와 총을 들고 저항하겠다며 거침없이 행동하는 송몽규는 신념의 차이로 서로 갈등하지만,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영원한 라이벌 관계로 그려진다.
윤동주는 국어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국민 시인’인 반면 독립운동가 송몽규에 대해서는 최근까지 크게 알려진 바 없었다. ‘윤동주의 삶을 통해 송명규를 조명했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강하늘은 “관객들이 그렇게 봐 주신다면 제가 의도한 게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동주라는 시인에 대한 평가가 ‘저항시인이다’, 혹은 ‘나약한 패배주의에 젖었다’라며 완전히 갈리지만 저는 윤동주를 어떠한 색이 뚜렷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라며 “이 영화는 송몽규 열사에 대한 영화고 저는 영화 속에서 최대한 튀지 않게 윤동주를 표현하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준익 감독의 시나리오에 지문(인물의 동작, 표정, 말투 등을 지시하는 글)이 많지 않은 영화라 연기하기 좋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강하늘은 “지문이 없는 시나리오는 개인적으로 저에게 고민할 거리를 주고, 그래서 한 대사도 허투루 내뱉지 않게 된다”라며 “지문이 있으면 머리속에서 한 번 프로세스가 돌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따라가게 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강하늘은 ‘동주’ 개봉일과 같은 날 ‘좋아해줘’의 개봉도 함께 앞두고 있다. 모두 세 커플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청각장애인 이수호 역을 맡아 이솜과 함께 20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꾸몄다.
순탄한 ‘사랑 키우기’의 장애물이었던 청각장애인 캐릭터를 표현하면서는 어릴적 경험을 되살렸다. 그는 “중학교 때 뚱뚱했기 때문에 연애를 할 생각조차 못했다”라며 “사람들이 나를 보는데 내 턱살을 보는 것 같고, 몸을 보는 것 같은 약간의 대인기피증도 있었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바쁘게 달려 온 강하늘은 지난해 촬영한 두 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공개하고, 하반기 방송 예정인 드라마 ‘보보경심:려’ 촬영에 나선다. 그는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개인적으로는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을 하고 싶다”라고 활동 계획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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