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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만에 만난 은사의 건강을 빌며/주청룡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5.10일 12:31

누구에게나 평생 잊지 못할 은사들이 있을것이다. 나는 나의 소학시절 담임교원이신 김순애선생님을 영원히 잊을수 없다.


1963년 내가 소학교 4학년에 올라오면서 덕신공사(지금의 향)에 중심소학교가 섰는데 나는 김순애선생님의 학급에 편입되였다. 그때 나는 학급에서 중하급에 속하였는데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나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한학기가 지나자 나는 도덕품성에서도 많은 전변을 가져왔고 학습성적도 많이 제고되였다. 4학년 2학기가 되자 선생님께서는 나를 중대장에 학습위원까지 시키는것이였다. 그때 나의 어린 심령에는 중대장표식을 달고 학습위원까지 하니 뿌듯하기만 하였다.


5학년에 올라와서 전교 문예경연대회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콰이반(快板儿)을 단독출연시키는것이였다. 난생처음 무대에 올라 출연하는데다 한어로 하니 너무 긴장하여 표현효과가 선생님의 기대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무대에서 내려오니 선생님께서는 나를 쓰다듬어주면서 잘하였다고 칭찬하여주시는것이였다.


우리가 5학년 학기말때에 6학년에서는 졸업식을 앞두고 졸업행사의 일환으로 룡정에 가서 영화구경을 하게 되였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에서 나를 대표로 뽑아 상급학년의 졸업행사에 참가시키셨다. 대표로 뽑히여 상급학년의 졸업행사에 참가한다는것은 아주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였다. 그때 덕신에서 룡정으로 가자면 새벽 2시에 지나가는 기차외에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다. 하여 학교에서는 도보로 50리 길을 걸어 룡정에 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기억에 룡정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가 좀 지난것 같다. 우리는 싸온 도시락들을 풀어놓고 나무그늘밑에 모여앉아 먹었는데 사는 곳이 한전고장이라 도시락이라야 모두 조밥에 야채볶음, 닭알 두개씩이였다…


선생님의 이런 관심과 사랑속에서 나는 무럭무럭 커갔다. 6학년에 올라와 나의 학습성적이나 도덕품성은 더욱 진보를 가져왔는데 학기말 우수졸업생 선거에서 동학들은 일제히 나를 선거하였다.

1965년 나는 우수졸업생으로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였다. 그 시기 덕신에는 공영중학교와 농업중학교가 있었는데 공영중학교는 국가에서 꾸리는 전일제 중학교였고 농업중학교는 농민들이 자체로 꾸리는 반농반독의 학교였다. 공영중학교에서는 중학교입학시험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만 골라 한개 반을 모집하였고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농업중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때 우리 학교에서 공영중학교에 모두 14명이 진학했는데 1반에서 4명이 붙고 내가 다니던 2반에서 10명이 붙었다. 원래 학교에서 인기가 대단했던 선생님은 그번 입학성적으로 하여 학교와 사회상에서 더욱 위망이 높아졌다. 나는 지금도 내가 그때 김순애선생님의 반을 다녔기에 공영중학교에 입학할수 있었다고 굳게 믿는다. 당시 1반에는 3학년까지만도 나보다 공부를 더 잘했던 우수한 학생간부들이 여럿이 있었으니 말이다.


중학교를 졸업한후 선생님을 만나보려고 모교를 찾아갔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남편을 따라 료녕성 무순시로 전근하셨다는것이였다. 그다음으로는 더는 찾을 길이 없었다.


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원사업을 하면서 김선생님이 더욱 그리웠다. 하여 선생님의 소식을 알만한 사람을 만나면 꼭 선생님의 안부를 물었는데 아쉽게도 모두 모른다는것이였다. 몇십년이 지난후 누군가로부터 선생님께서 도문에 오셨다는 소문을 어렴풋이 들었다. 그러나 어느 단위에서 무슨 사업을 하는지 몰라 찾을수 없었다. 이렇게 또 여러해가 지났다. 어느날 선생님의 소식을 알만한 사람을 길에서 만나 물어보았더니 그도 그저 지금은 연길에 와계신다는 소문을 들었다는것이였다. 여전히 묘연하였다.

그러다가 지난해 친구들의 모임에서 선생님의 시집편으로 친척이 되는 친구를 만나 어렵사리 선생님과 따님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였다. 너무나도 기쁜 마음에 즉시로 먼저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가석하게도 빈 전화번호였다. 따님의 전화번호를 누르니 자기는 그런 선생님을 모른다는것이였다. 혹시나 하여 이튿날 다시 그 번호를 누르니 여전히 모른다는것이였다. 또 절망으로 돌아갔다. 후에 알아보니 그 친구가 마지막 수자를 잘못 알려 주었던것이다.

이렇게 알만한 사람과 다 물어보아도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지난 4월 14일, 또 한차례의 친구모임에서 소학교때의 두 동창생을 만났다. 내가 선생님에 대해서 물어보았더니 자기네는 선생님께서 도문에 계실때 놀러 갔었는데 그때 이미 선생님의 남편은 세상을 떴고 그것도 인제는 10년이 넘어서 그후의 소식은 전혀 모른다는것이였다.

내가 꼭 선생님을 찾아뵙고싶다고 말하자 한 친구가 딱 찾으려면 한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자기가 그 선생님의 시조카며느리를 자주 만나는데 그를 통하면 가능하게 알수 있을것이라고 하는것이였다. 3일후 친구가 그분의 전화번호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그분과 전화로 사정을 이야기하였더니 선생님 따님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는것이였다.

나는 그 즉시로 그 번호에 따라 전화를 걸었다. 김순애선생님의 딸이 옳다는것이였다. 나는 너무도 기뻐 《아! 끝내 찾았구나!》하며 선생님에 대해 물었더니 지금 병으로 도문병원에서 입원치료중이라고 하는것이였다. 오매에도 그리던 선생님을 찾게 되여 기쁘면서도 입원치료중이라니 마음이 쓰리여났다.

나는 한시급히 선생님을 만나뵈려는 생각에 도문으로 향하였다. 도문병원의 침대에서 선생님을 만나는 순간 나는 기쁨의 눈물, 슬픔의 눈물이 한데 섞여 왈콱 쏟아져나왔다. 47년만의 상봉이였다. 내가 《선생님의 제자 주청룡입니다.》라고 하니 선생님께서는 나를 알아보시고 몸을 움직이려 하셨지만 움직일수 없었다. 하지만 아주 똑똑한 의식과 정기 도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눈물이 글썽해 하시였다.

선생님은 말씀도 아주 힘들게 하셨다. 나는 그렇게도 애타게 찾던 선생님을 47년만에 만났는데 어쩌면 이렇게 병실에서 만나는가? 어찌하여 선생님을 일찌기 찾아뵙지 못하였는가? 76세에 아직도 건강한 몸으로 계셔야 할 선생님께서 너무나도 일찌기 병상에 누워계신다는 등 서러운 생각에 또다시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선생님도 눈물을 흘리셨다.

옆에는 아들과 딸이 다 있었다. 내가 선생님께서 무슨 병으로 입원하셨는가고 물으니 뇌위축으로 몇년 앓았는데 설상가상으로 허리를 상하여 이렇게 입원치료를 받는다는것이였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북경석유학원을 졸업하고 무순시에 배치받은 남편을 따라 무순조선족소학교에 전근하였고 그후에 남편이 길림화학공장에 전근하자 또 길림화학공업공사자제학교에 전근하셨다가 후에 도문에 석유제련공장을 창설하는 임무를 맡은 남편을 따라 도문에 오셨다는것이였다.


나는 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의 사업을 이어받아 직업중등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후에는 학교에서 령도사업을 하다가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과외로 글을 쓴다는 사연을 이야기하였더니 선생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매우 기뻐하셨다. 비록 47년만에 선생님을 만나 오랜 소원은 풀었지만 선생님의 건강상황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것이 유감으로 남았다.

나는 선생님의 건강을 두손 모아 빌고 또 빈다. 선생님을 모시고 동창모임도 하면서 단 하루라도 소학시절의 추억으로 돌아갈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그러면 선생님도 환하게 웃으시며 즐거워하지 않을가라는 천진한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선생님의 건강을 빈다.


/글 주청룡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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