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한 유지인사들이 서일총재항일투쟁유적비를 참배하고 기념촬영을 했다.좌로부터 세번째가 서일총재의 증손자 서우희임.
(흑룡강신문=하얼빈) 피금련, 최성림 기자=지난 7월 30일, 세계반파시스전쟁 승리 71주년과 서일총재항일투쟁유적비 제막 1주년을 맞이하면서 서일총재의 증손자 서우희를 비롯한 중한유지 인사들이 밀산시 당벽진에 위치한 서일총재항일투쟁유적비를 참배하였다.
행사에는 한국정부 보건복지부에서 파견한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원 김주용, 오대록 등과 서일총재의 증손자 서우희 부부, 연변대학 력사계 교수 및 밀산시민족종교사무국과 ‘밀산시조선족종업원의 집’ 인사 등 도합 130여명이 참석했다.
일행은 서일총재의 발자취를 찾아 현지답사를 했으며 총재가 생을 마감했던 당벽진 마을뒤 현장과 유적비앞에서 추모식을 열었다. 헌화, 묵념에 이어 밀산지정부 맹고군 전임 부시장이 서일총재의 생애, 력사공적 및 기념비 수건의 력사적의의에 대해 설명했고 서일총재의 증손자 서우희가 서일총재의 삶을 재조명하며 일제에 맞서 힘들게 투쟁한 애국지사의 충의와 독립정신을 기렸다.
서일(1831-1921)총재는 100여년전 민족의 독립운동을 온몸으로 실천한 독립운동가였고 단군신앙의 대종교 핵심인물이였으며 단군정신으로 무장한 독립군의 리더였다. 31세에 중국으로 망명해 10년을 장백산과 만주벌판을 전전했으며 ‘자유시참변’에 의해 큰 타격을 받은 나머지 41세의 나이에 자결을 택했다. 서일총재의 나라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 싸운 업적과 정신을 천추만대에 전해가기 위해 밀산시정부와 민족사회 지성인 및 중한량국 유지인사들의 관심과 노력하에 2015년 8월 2일에 마침내 서일총재항일투쟁유적비가 밀산시 당벽진에 건립되였다.
하지만 기념비는 세워졌지만 근근히 1기공사가 마무리 된 상황이였고 예산부족 등 원인으로 기념비 환경조성 작업은 추진이 부진한 상황이였다. 이날 중한유지인사들은 여기저기 널려있는 다양한 유적지와 기록을 돌아보고, 증인을 찾아보면서 실태조사를 하는 한편 나아가 밀산독립운동유적지에 대한 발굴과 보존 및 연구 등에 대해 소감을 발표했다.
“지금은 과거가 된 력사의 아픔을 돌아보며 그날의 아픔이 오늘에 남긴것들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애국애족의 독립정신을 대대손손 소중한 교육자료로 남기며 일회성 행사가 아닌 일관된 행사로 만들고, 또한 기념비 환경조성 작업에 다같이 노력해 봅시다”이는 행사에 참가한 전체 유지들의 공동의 바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