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의 한 일간지는 빈곤층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를 여론조사와 취재를 통해 분석해 주목받았다. 일반의 예상이나 상식과 달리 못사는 사람들이 자신을 스스로 '보수'라고 자처하며 기꺼이 보수정당의 손을 들어주더라는 것이다.
이는 역대 선거에서 번번이 결과로 나타나곤 했다. 이에 대해 "자신의 처지에서 자긍심을 느끼지 못하는 소외계층은 국가·민족으로부터 자아 정체성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강력한 국가를 표방하는 보수정당이 자아 정체성을 찾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풀이도 나왔다. 빈곤층이 계급배반투표를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역사학자이자 정치·경제비평가인 토머스 프랭크는 미국의 사례로 빈곤층의 계급배반 이유를 파고들었다. 최근 국내 출간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는 제목처럼 치열하게 그 까닭을 심층분석한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 증세를 반대하고 기업인들의 이익을 늘리는 정책에 몰두하는 보수정당, 즉 공화당을 왜 지지하냐고 질문을 던진다. 보통의 생각으론 미국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다는 정당은 민주당이 아닌가.
이런 의문와 문제의식을 증폭시킨 건 자기 고향인 캔자스의 투표결과였다. 낙후지역으로 꼽히는 캔자스 사람들은 선거 때만 되면 거의 어김없이 자신의 이익과 무관한 부자들의 정당에 표를 던졌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느냐는 거다. 저자는 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정치가와 풀뿌리 운동가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 이유를 하나하나 캐나간다.
저자는 그중 하나로 '민중의 착란 현상'을 조장하는 보수 우파의 교묘하고 은밀한 집권전략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한때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지역으로 꼽혔던 캔자스가 보수의 텃밭으로 돌변한 데는 우파가 장기간에 걸쳐 진행해온 정치조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보수우파들은 뉴딜 정책 이후 잃어버린 대중의 지지를 되찾으려고 1960년대 말부터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 그리고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를 장악하고 보수 기독교와 '가치의 연합' 전선을 구축해나갔다.
공화당은 보수 교회의 가치에 편승해 기독교 신자를 공화당 유권자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 결과 현안이 돼야 할 실질적 경제 문제가 뒤로 처지게 된 반면, 정치 일선에선 보수적 구호만 요란하게 난무하며 빈곤층을 효과적으로 포획한다.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는 보수언론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보수 우파의 집요한 노력에 비해 민주당은 여러 면에서 안이했고 실책도 잦았다고 비판한다. 예컨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자, 농민, 서민층을 버리고 일부 중도 성향의 보수파와 지식인을 포섭하려는 이른바 '삼각화 전략'을 펴면서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읽어버리고 자신들의 든든한 지지층으로 하여금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게 하였다.
이 같은 저자의 분석과 비판은 한국의 정치상황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보수정당의 효과적인 정치조작술과 자기계급적 이익과 배치되는 투표행위를 보여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다. 미국 정치에서 종교라는 변수가 힘을 발휘하듯이 한국 정치에서는 지역이라는 변수가 민심을 좌지우지해온 측면이 강하다. 그렇다고 보면 미국은 한국의 반면교사인 셈이다.
- 한국일보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