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Tim Alper)
[Korea.net]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곳곳에서 ‘7080풍’ 술집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숫자만 보면 헷갈릴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7080’이란 1970년대와 1980년대 전성기를 보낸 세대를 일컫는다. ‘7080’식 바에는 중년층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곳에는 아바(ABBA)의 서구식 고전 디스코 곡들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의 히트곡들이 흘러나왔다.
이런 바의 특징은 한 때 가장 고급스럽고 비싼 곳이었다는 점이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주로 고소득 직장인이며 자신들과 비슷한 취향을 나누며 기분 좋은 향수를 즐기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7080식 바도 아직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전처럼 많은 곳에 퍼져 있진 않다. 더 큰 특징은 업주들과 미디어 전문가들이 ‘8090’이라는 또 다른 계층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얼핏 보면 ‘7080’과 ‘8090’ 계층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
사실 한국에서는 두 계층 사이의 차이점이 매우 두드러진다. 1970년대 한국은 대규모 사회적 경제적 격변기를 겪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한국은 아시아의 신흥국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는 벤처기업들이 번창했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성장한 많은 한국인들은 당시에 보낸 유년 시절을 ‘풍요의 시기’로 추억하며 애정을 갖고 있다.
결정적인 차이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유년기를 보낸 세대가 현재 가장 중요한 30대~50대 그룹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반면 1970년대~1980년대 세대는 점점 은퇴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들은 자기가 받는 연금의 많은 부분을 소비하길 꺼린다.
아울러, 시장의 주요 고객인 30대~40대 한국인들의 출산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들은 가족보다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 더 많고 소득이 높아 행복한 추억여행을 하기 좋은 최고 고객이 될 수 있다.
논란거리는 있지만 이 같은 황금 고객을 겨냥한 미디어 분야의 첫 시도는 2011년에 출시된 영화 ‘써니’였다. 이 작품은 학창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뤘으며 흥행도 성공했고 수익도 많이 거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감성적인 줄거리로 30대-50대 관객층의 호응을 얻은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작품은 1980년대 옷차림, 가구, 머리모양 등 당시 학창시절의 향수를 잘 이용해서 관객을 사로잡았다.
영화 ‘써니’의 성공으로 이와 유사한 세대를 겨냥한 영화와 TV쇼가 잇따라 만들어졌다. 2012년 ‘응답하라 1997’로 시작된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도 여기에 포함된다. 당시의 향수를 단순하게 그려낸 작품과 비교할 때 ‘응답하라’ 시리즈는 제목과 동일한 연도가 배경으로 설정됐고 1990년대 후반 상황을 아주 충실하게 재현했다.
‘응답하라 1994’도 이 포맷을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과거의 향수를 다룬 드라마 시리즈 가운데 최근에 가장 성공한 작품은 ‘응답하라 1988’이다. 이 작품은 지난 해 방영 이후 매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버라이어티 TV쇼도 ‘8090 문화현상(8090 cultural phenomenon)’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예로 MBC 장수 예능 프로그램 ‘무한 도전’에서 방송된 소위 ‘K팝의 첫 세대’들인 1990년대 인기 가수 공연을 들 수 있다.
터보, 지누션, 엄정화, SES 등 1990년대 인기스타들이 함께 했던 백댄서들과의 무대를 다시 선보이며 과거에 이들과 함께 성장한 팬들에게 기쁨을 안겨줬다. 무한도전의 ‘토토가’는 크게 히트했고 1990년대 스타들의 귀환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스타들이 투어길에 올랐고 콘서트는 매진됐다. 일부는 새 앨범을 내자마자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무한도전 ‘토토가’의 영향은 아직도 느껴진다. SBS의 ‘판타스틱 듀오’에서 건재함을 과시한 김건모와 SES의 바다처럼 1990년대 스타들이 다양한 노래경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중을 사로잡았다.
미국의 소설가 피터 드 브리스(Peter de Vries)는 “향수는 결코 과거의 실제 모습과 같지 않다”고 꼬집어 말했다. 이 말은 특히 한국에서 들어맞는 말인 것 같다. 실제로 요즘처럼 한국에서 복고가 높은 인기를 누린 적이 없다. 특히 1980년대~1990년대 유년기를 보낸 세대는 지금처럼 향수를 크게 즐긴 적 없다.
영국 출신 팀 알퍼씨는 한국에 살며 작가 겸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 윤소정 코리아넷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