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희-이건희 소송 30일 첫 기일
이건희 회장, 대국민 사과뒤
재판 관여 않겠다며 입닫아
이맹희씨도 귀국 일정 연기
“청와대서 조용히 해결 요구”
재계 관계자들 기류 전해
삼성·CJ, 여론 악화 부담도
석달 넘게 장외 공방을 벌여온 삼성가 유산소송이 오는 30일 법정에서 본격화한다. 이번 소송은 천문학적 액수가 걸려 있는데다 이병철 전 삼성 회장(창업자)의 3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등이 막말 논란까지 벌이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동생이 형에게 “수준 이하”라고 표현하자, 형이 동생에게 “어린애 같다”고 되받고, 동생은 또다시 형에게 “감히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다”라고 치받았던 삼성가 공방은 첫 변론기일을 4주 앞둔 시점부터 갑자기 잠잠해졌다. 이건희 회장은 이달 초 ‘대국민 사과’를 하고 3주간의 장기간 유럽·일본 출장을 다녀왔고, 최근 들어서는 소송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중국에서 돌아와 입장 표명에 나설 것으로 점쳐지던 이맹희씨의 귀국은 무기한 연기됐다. 거친 입씨름의 선공은 이건희 회장이 했지만, 여기에 불을 붙인 건 이맹희씨였다. 이맹희씨 쪽은 여론이 유리하게 흐르고 있다고 보고, 중국에 체류중인 이맹희씨의 입국을 추진해왔다. 해마다 받아온 건강검진을 위해 들어온다는 계획은 그러나 이맹희씨의 아들 이재현씨가 회장인 씨제이(CJ)그룹이 만류하면서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의 부정적 분위기가 전달되면서 양쪽의 태도가 변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재계 인사는 “정부 고위 관계자가 ‘경제가 안 그래도 나쁜데 재벌들의 집안싸움은 보기에 안 좋고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을 양쪽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삼성가의 상속재산 소송 문제와 막말 공방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효과 등 주요 이슈들이 묻혀버린다는 힐난이 청와대에서 나왔다”며 “신속히, 조용히 (소송을) 해결하라는 요구가 양쪽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론 악화도 양쪽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특히 삼성그룹은 미국 <뉴욕 타임스> 등 외국 언론들까지 ‘막장 드라마’(soap drama)라고 비판하고 나서면서 이미지 실추를 겪었다. 삼성그룹 쪽은 입싸움에 휘말려 봐야 이익이 될 게 전혀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의 개인 소송이지만 여론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내부 보고가 있었다”며 “이 회장 스스로도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부정적인 여론을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30일 첫 변론기일을 시작으로 양쪽의 소송전은 본격화한다. 지금까지의 여론전에 더해, 이제부터는 법률 공방이 치열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가장 주요한 쟁점은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이 완료됐는지 여부다. 민법 999조 2항은 “상속회복청구권은 그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하면 소멸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쪽은 1987년 이병철 회장 사망 때 상속이 모두 마무리됐다는 입장이다. 또한 상속권 침해가 있었다 해도, 2008년 4월 삼성 비자금 특검이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이미 차명주식의 존재를 이맹희씨 등도 인지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침해 인지 시점이든 침해 행위 시점이든 모두 지났다는 것이다.
반면 이맹희씨 등은, 상속권의 침해행위는 2008년 말 차명주식을 이건희 회장이 실명 전환할 때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맹희씨 쪽은 상속권 침해를 안 날도, 지난해 6월 이건희 회장이 씨제이 등에 ‘선대 회장의 재산은 상속 당시 분할이 결정됐고, 모든 상속인은 다른 상속재산에 대해 어떤 이의도 없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국세청에 제출해 달라는 요청을 보내왔을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전자 차명주식을 둘러싼 논쟁도 가열될 전망이다. 이건희 회장 쪽은 “선대 회장이 물려준 삼성전자 주식은 이미 처분했고, 차명주식은 이건희 회장이 별도로 사둔 주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맹희씨 쪽은 “선대 회장에게 물려받은 주식을 팔고 새로 주식을 구입했다 해도, 주식 구입 자금의 뿌리는 선대 회장의 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진철 박태우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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