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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2]충동은 마귀이고 랭정은 천사이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7.01.19일 10:13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

◇김충국(영길)

이순(耳顺)의 고개마루를 톺게 되니 나는 종종 옛 추억을 하면서 명상에 잠기군 한다. 나는 내가 청춘시절에 알심들여 가꾸어 내 기억의 보물고에 저장해둔 한떨기 싱그럽고 아름다운 꽃을 여러분들과 나누어 누리고저 한다.

내가 21살 나던 1978년 8월의 어느날이다. 그때 나는 한 향진조선족중심학교에서 민영교원노릇을 하고있었다. 하루는 느닷없이 남동생이 헐떡거리며 찾아왔다. 복도에 나가니 동생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셋째형, 당장 나하고 쌈하러 가기요. 저치들이 지금 우편국에서 날 기다리고있소!”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동생은 다짜고짜 학교 현관의 대문에 지르는 쇠막대기를 쑥 뽑아서 나한테 넘겨주면서 “형도 허리춤에 하나 차오. 나한테는 손도끼 한자루 있소!”라고 말하며 허리춤에 찬 시퍼런 손도끼를 내보이는것이였다.

어두운 밤에 홍두깨 내미는듯하는 동생의 거동에 나는 무슨 감투끈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서 동생이 시키는대로 쇠막대기를 허리춤에 꾹 지르고 동생을 따라 걸었다. 알고 보니 ㅅ군이 선전하니 동생이 응전한것이다. 좌우간 가봐야지.

남동생은 나보다 두살 아래인데 몸이 날쌘것을 턱대고 코큰소리를 잘하여 때론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생긴다. 보아하니 이번에는 큰 싸움이 벌어질것 같았다. 나의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앞에서 터벅터벅 걸어가는 동생의 뒤모습을 보며 따라가노라니 불안감은 점차 사라지고 책임감이 내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정이다. 반년전에 아버지가 갑자기 간암으로 별세하셨다. 온 집안에 비통이 감돌고있는 와중에 동생과 내가 또 큰 사고를 치면 웃어른들에게는 설상가상으로 고통을 더해드리게 된다. 이는 큰 불효이다. 나는 백방으로 최선을 다해 이 일을 잘 풀어서 손상을 최소한 줄이리라고 작심했다.

나와 동생이 약 십분가량 걸어 향우편국앞에 도착하였을 때 ㅅ군이 네 사람을 데리고 우편국과 골목길 하나 사이둔 생산물자상점에서 나오고있었다. 다섯 사람은 모두 나또래 청년들인데 일매지게 량손에 서슬이 시퍼런 중도끼 한자루씩 들고있었다. 금방 생산물자상점에서 도끼들을 사서 들고 나오는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옛날 스릴러 영화에 나오는, 상해탄에서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횡포하게 살인을 일삼는 도끼무리(斧头帮)를 방불케 하였다. 도끼에서 번쩍이는 차거운 빛은 사활이 걸린 혈전이 곧 벌어지려 함을 의미한다.

순간 나는 가슴이 섬찍하고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나와 동생은 과불적중(寡不敌众)이다. 나는 동생과 같이 생산물자상점에 들어가 중도끼를 두자루씩 사서 대처하고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인차 단념했다. 이런 위급한 시각일수록 후끈 달아오른 머리를 랭각시켜야 한다. 이때 만일 천방지축 경거망동하여 그들의 적의를 더 불러일으키면 상상치 못할 피비린 싸움이 일촉즉발할것이다. 속담에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은 똑바로 차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우리 둘을 협박하여 우편국의 한 빈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마침 낡은 테블 하나가 놓여있었고 그 주위에 걸상 몇개가 놓여있었다. 집안에 들어가자마자 두패가 책상을 사이두고 죽 갈라섰다. 동생과 ㅅ군이 맞서서 먼저 설전을 벌리려고 할 때 내가 동생앞을 막아나섰다. 당시 나는 우선 그들의 화를 가라앉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걸상에 앉으라고 권하면서 내가 먼저 앉았다. 그들은 달갑게 납득이 되지 않으나 하나하나 잇달아 걸상에 앉았다. 사람이 화가 났을 때 앉으면 화를 가라앉힐수 있다고 한다. 나의 뇌리에는 오직 내가 완여반석으로 버티여 동생을 살려야지 하는 생각뿐이였다. 당시 나는 죽음을 각오했다. 한창 열혈청년으로서 앞으로 할일이 많고도 많겠지만 동생을 위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결사전을 해야 했다.

그들은 기각지세(掎角之势)를 취하고있었고 나와 동생은 도수장에 든 소의 처경과 같은데 필부지용(匹夫之勇)으로 맞서 싸우다간 큰 손해를 볼것이 불보듯 뻔하다. 나는 이 몸이 릉지처참을 당할지라도 배수일전(背水一战)을 하여 고립무원한 사면초가의 처경을 뚫고나가서 동생을 살리리라는 비장한 결심을 내렸다. 나는 “담판”을 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는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였다. “담판”을 하는데는 불집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일단 그들이 노기충천하면 나와 동생은 삽시에 도끼벼락을 맞는다.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으니 나의 가슴엔 오히려 평온이 깃들었다.

ㅅ군옆에 ㄱ군이 앉았다. ㄱ군은 이치들의 우두머리로서 이 일대에서 이름이 뜨르르하다. 체대는 작지만 지독하고 담대하여 싸울라치면 목숨을 내걸기에 누구나 다 그를 두려워한다. “도적을 잡으려면 먼저 두목부터 잡아야 한다”고 나는 ㄱ군의 눈치를 살피면서 침착하게 말하였다.

“ㅅ군이 먼저 말해보오. 왜서 둘의 사이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ㅅ군이 자초지종을 다 말한 뒤에 동생도 사연을 말하였다. 결국 두 사람은 한 처녀를 서로 쟁취하는 과정에 갈등이 생겨 라이벌이 된것이다. 나는 이때라고 생각하고 전신의 신경말초를 다 동원하여 한수를 더 두어 이렇게 말하였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우리 동생이 이곳에 갓 와서 덤벼치다나니 여러 친구들한테 많은 실례를 저지른것 같소. 내가 형으로서 동생을 잘 교육 못했으니 우선 사과하는 바요. 둘의 말을 듣고보니 처녀 하나를 쟁탈하다가 원쑤가 되여 결사전을 벌리려고 하는것 같은데 사나이대장부로서 취할바가 못되는것 같소. 이 세상에 어디 그 처녀를 내놓고 처녀가 없겠소? 내 생각에는 큰일은 작은 일로 만들고 작은 일은 아예 없는 일로 만들어 싸우지 말고 화해하는게 좋을것 같소. 난 싸울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소. 우리가 엉망으로 의미가 없는 란전을 벌려봤자 쌍방이 다 손실을 보지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소? 대방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오?”

기실 나의 면리장침(绵里藏针)한 말속에는 격장법이 숨겨져있었다. 대방에서 잠자코 있다가 이윽고 우두머리인 ㄱ군이 입을 열었다.

“싸움을 그만두기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어딘가 위엄이 있었다. 그의 말이 “왕명”이였다. 말이 떨어지자 그들은 일제히 오른손에 들었던 도끼를 왼손에 든 도끼에 포개 들며 일어섰다. 과연 그가 명불허전의 강호호한이였다. 동생과 ㅅ군이 서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속심을 간단히 나눈후 나는 동생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누가 당시 그 장면을 록화했더라면 한부의 아주 훌륭한 다큐멘터리였다.

화복무문(祸福无门)이라는 말이 있다. 뜻인즉 화와 복은 운명적인것이 아니라 선행, 악행에 따라 각기 받는다는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공자선생님은 “심사숙고한후 행동하라”고 하였을것이고 또 “군자삼계”를 내놓았을것이다. 즉 소년시기는 녀색을 경계하고 장년시기는 싸움을 경계하고 로년시기는 탐욕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때로는 선악이 일념지간에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러기에 사람은 순식간에 마귀가 될수도 있고 순식간에 천사가 될수도 있는것이다.

의외로 위기일발의 일에 봉착하였을 때 우선 두려워하지 말고 위험을 제거할 용기를 가져야 랭정해지고 따라서 후끈 달아오른 머리를 식히거나 나간 혼을 바로잡아 기지가 생김으로써 종당엔 위험을 제거할수 있게 되는것이다.

그날 나는 고도로 랭정을 유지하면서 천만의외로 림기응변술로 병불혈인(兵不血刃)하며 동생이 빚어낸 아슬아슬한 위험을 제거하였으니 이는 기적이 아닐수 없다. 나는 마치 몽유증을 한것 같았다. 나는 희출망외(喜出望外)하였지만 돌아오는 길에서 짐짓 굳어진 표정으로 동생을 준절히 타일렀다.

“오늘은 천만다행으로 잠시 한고비를 넘겼지만 앞으로 또 덤벼치다간 큰코를 다칠줄 알어. 이젠 정신을 바싹 차려. 제 단속을 잘해.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그 일이 있은후 남동생은 전보다 많이 듬직해지고 의젓해졌다. 청년들이 착오를 범하는 과정이 바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 이듬해에 동생은 참군하였고 3년만에 당에 가입하였고 5년후에는 지원병으로 발전하여 제대하고 직장에 정식 배치를 받아 지금까지 맡은바 사업을 잘하고있다. 나는 지금까지 줄곧 혼신을 교육사업에 잠그고 보람차게 40성상을 걸어왔다. 그때 그 바쁜 고비를 잘못 넘겼더라면 나와 동생의 오늘날이 있을가? 그 후과는 상상치도 못할것이다. “충동은 마귀이고 랭정은 천사이다”라는 말은 천만지당하다.

나는 피 끓어넘치던 청년시절에 겪은 이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회상할적마다 매양 긍지를 갖고 자부심에 젖군 한다. 참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추억이다.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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