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세계자연유산총회 숙소 필요…‘더 갤러리’ 철거하라”
작가의 건축미학 집대성한 유작
건설사, 콘도·호텔 지으려 헐기로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가 아시아에 남긴 두 개의 유작 중 하나인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더 갤러리·사진)가 헐릴 위기에 놓였다.
이 건물은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단지 안에 레고레타가 설계한 호텔과 콘도인 ‘카사 델 아구아’(=제주컨벤션센터 앵커호텔)의 부지 안에 홍보관 겸 모델하우스로 2009년 개관했다. 극도로 조형을 단순화하는 미니멀적 디자인과 중남미풍의 강렬한 색감,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분위기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하우스’라는 애칭을 얻었다. ‘더 갤러리’는 김중만 사진전 등 의미 있는 전시공간으로 활용되었고, 건축물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패션화보와 텔레비전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았다. 건축학도의 견학코스로도 활용되었다. 2011년 레고레타가 타계하면서 이 건물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내부를 공개하는 그의 유작이 됐다. 그의 또다른 유작은 일본에 있으며, 개인 주택이라 내부가 공개되지 않는다.
레고레타는 사람이 편해야 좋은 건물이라는 지론으로 카미노 레알 호텔(멕시코시티, 1968), 로스앤젤레스 퍼싱 스퀘어(미국 엘에이, 1993), 영국 패션섬유박물관(런던, 2001), 셰러턴 아반도이바라 호텔(스페인 빌바오, 2003) 등 세계 여러 곳에 60여개의 예술적인 건축물을 설계했다. 그 공로로 전미건축가협회 금메달, 국제건축가연맹(UIA)상을 받았으며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건축상 심사위원을 지냈다.
‘더 갤러리’는 본건물인 콘도와 호텔 ‘카사 델 아구아’ 건설공사가 시행사인 제이아이디(JID)의 자금난으로 중단되고 부지의 소유가 ㈜부영주택으로 바뀌면서 ‘비운’을 맞게 됐다. 애초 제이아이디는 ‘더 갤러리’를 콘도 완공 뒤 브이아이피(VIP)룸으로 활용한다는 복안으로 임시건물 상태로 2년마다 사용승인을 연장해왔다. 하지만 부영 쪽이 콘도와 호텔을 인수하면서 ‘더 갤러리’ 건물을 인수대상에서 제외했다. 업계에서는 수십억원의 인수금액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부영 쪽은 “설계가 변경돼 철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귀포시에서는 최근 올 9월에 제주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세계자연유산총회에 맞춰 참가자들의 주 숙소인 콘도·호텔(카사 델 아구아)을 준공해야 한다며 ‘더 갤러리’ 건물 소유주인 제이아이디 쪽에 지난달 25일까지 철거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제이아이디에서는 철거집행 중지 가처분 신청을 해 일단 철거가 중단된 상태다.
제주대 건축학부 김태일 교수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건물은 말년에 이른 레고레타의 완숙한 건축 미학이 집약되어 있으며 그가 제주의 지역성을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수류산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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