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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기 좋아하세요? '책맥' 한잔 어떠세요?

[기타] | 발행시간: 2017.03.22일 09:57
[스토리] 술 한잔하며 책 읽는 카페 문화 확산

수년 전부터 신촌, 홍대 일대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술파는 서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상암동 ‘북바이북’, 망원동 ‘카페 창비’, 서교동 ‘북티크’, 신촌 ‘꿈꾸는 옥탑’, 이대 앞 ‘퇴근길 책한잔’, 신촌 ‘카페 파스텔’.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찰스 디킨스 페일에일, 프로스트 IPA, 카프카 필스너... 고개를 갸웃할 이런 이름들의 맥주를 곧 만날 수 있다. 문학출판사 창비가 운영하는 ‘카페 창비’는 이르면 이달 말 해외 작가 이름을 넣은 크래프트 맥주를 출시한다. 정지연 카페 창비 매니저는 “새 맥주를 출시하며 작가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며 “술을 매개로 문학 관련 대화를 유도하고 싶어 ‘소맥(소설가+맥주) 파티’ 등을 열어왔는데 그 일환”이라고 말했다. ‘작가 맥주’는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같은, 술이 등장하는 소설을 테마로 만든 전용 맥주잔에 담아 팔 예정이다. 출시 이벤트로 창비세계문학 전집 중 한 권을 구입하면 맥주 1잔을 50% 할인해준다.


#오은 시인은 1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서울 신촌 카페 파스텔에서 ‘혼술쓰기’(혼자 술마시며 글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맥주 좋아하는 사람, 혼자 술 마시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들여다 볼 마음을 가진 사람’ 등이 모여 각자 술 마시며 자기소개서(1월), 일기(2월), 편지(3월) 등을 쓰는 것에 대한 강연은 모집정원 30명이 6시간 만에 다 찼다. 지난 6월 문을 연 카페는 독립서점 ‘프렌테’, 시 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과 공간을 함께 쓰면서 ‘술파는 책방’으로 알려졌다. 위트 앤 시니컬이 개최하는 시 낭송회 행사도 이곳에서 열린다. 시집 한권, 맥주 한잔을 받고 시 낭송 공연을 보는 티켓은 2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종종 매진된다.

몇 년 전부터 문을 연 ‘술 마시는 책방’이 입소문을 타며 ‘책맥’(책보며 맥주 마시기)이 우아한 혼자 놀기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이 책방들에서는 술과 책을 매개로 한 각종 강연이 열리고, 맥주 제조업체들은 소비자 취향 변화 조사를 위해 이 책방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책맥의 확산은 여러 부수적 활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은 시인에게 ‘혼술쓰기’ 강연을 제안한 맥주 제조업체 더부스는 샬롯 브론테의 동명소설을 테마로 만든 ‘제인에어’ 생맥주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 업체는 지난달 ‘제인에어’ 병맥주를 별도 제작해 강연 참석자들에게 제공했다. ‘책맥하다’ 만난 사람들끼리 돈 내고 독후감 쓰는 유료 독서모임도 성행하고 있다. 바야흐로 책맥이 새로운 독서 문화와 카페 문화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16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앞 독립서점 '퇴근길 책한잔'에 온 손님들이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술파는 책방, 동네서점 대세가 되다

술 마시는 책방은 2011년 생기기 시작했다. 입소문을 탄 건 재작년 무렵부터다. 공급이 수요를 불렀다. 도서정가제가 촉매제로 작용했다. 도서정가제로 늘어난 동네책방이 인터넷 서점보다 떨어지는 가격경쟁력을 보완하기 위해 개성을 살리면서 책맥 문화가 발아했다. 홍대 일대 문화를 소개하는 동네잡지 ‘스트리트 H’의 정지연 편집장은 “손님을 1시간에 단 한명만 받는 책방부터 점원 없는 무인서점까지 나왔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생긴 게 술파는 책방”이라고 말했다.

주인들은 “취미로 열었더니 대세가 됐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2015년부터 이화여대 앞 독립서점 ‘퇴근 길 책한잔’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현 대표는 “애초에 서점으로 돈 벌 생각이 없었다”며 “용돈으로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한 게 지금의 책방”이라고 말했다. “제 취향에 맞는 책을 들여놓고, 가볍게 술 마시며 책 보던 습관 때문에 병맥주도 들여놓았는데 첫 달부터 반응이 좋아 저도 놀랐다”고 김 대표는 덧붙였다. 전지현 카페 파스텔 매니저 역시 “구성원들이 전부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신다”며 “‘우리 매출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연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정지연 카페 창비 매니저 역시 “출판사가 북카페를 연다고 했을 때 (창비)편집자들의 가장 많은 요구사항이 ‘메뉴판에 맥주를 넣어 달라’는 거였다”며 “‘술파는 서점’은 구성원 요구를 반영한 결과”라고 밝혔다.

북카페 특성상 손님 회전율이 떨어지며 마진을 높이기 위해 술을 들여놓은 경우도 있다. 출판사 다산북스가 운영하는 다산카페의 김선진 점장은 “매출을 높이기 위해 2015년 가을부터 맥주를 들여놨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마포구 서교동에 2호점을 내며 병맥주를 들인 북카페 북티크는 4월 칵테일, 위스키, 와인 등 주류 종류를 대폭 늘리고 저녁 시간은 ‘책 바(bar)’ 콘셉트로 운영할 계획이다. 박종원 북티크 대표는 “새 독자 유입을 목표로 만든 서점인데, 커피 고객은 한정적이고 작업실 같은 경직된 분위기를 만들더라”며 “책에 대한 대화가 가능한 공간을 만들려면 ‘술먹는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매출에 대한 기대도 있다”고도 했다.

책맥(책+맥주)이 유행하면서 술 마시는 책방이나 모임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2월 카페 파스텔이 개최한 '혼술쓰기' 강좌는 3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카페 파스텔 제공.

혼술 혼놀 문화가 만든 유행

공급이 많다고 수요가 무조건 창출 됐을까. 김대준 북바이북 매니저는 “재작년 가을 입사 때보다 손님이 2배 이상 늘었다”며 ‘매일 저녁 열리는 테마 강연 참석자만 한 달에 800~900명에 달하는데 이만큼의 인원이 새로 유입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책맥이 유행하는 배경에 대해 운영자들은 “술의 기능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혼술쓰기’를 강연하는 오은 시인은 “예전에 술을 ‘맘먹고 달리자’하면서 먹었다면, 이제는 커피나 차처럼 기호식품으로 적당히 즐긴다”며 “책방에서 독주보다 맥주나 와인 같은 도수 낮은 술이 인기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지연 스트리트 H 편집장은 “술 파는 서점이 유행하기 이전 홍대 일대에 맥주 마시며 만화책 볼 수 있는 만화방이 문을 열었다”며 “(맥주 마시는 만화방에서) 유년을 보낸 세대가 자연스럽게 ‘책맥’ 문화에 유입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종현 대표는 서점에서 파는 술을 “새벽에 축구 중계 보며 마시는 맥주 한잔”에 비유했다.

혼밥 혼술 등 혼자하기 문화가 유행하면서 혼자 노는데 거리낌이 없어진 문화가 책맥 유행을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김대준 북바이북 매니저는 “서점 단골 중 집에서 술 마시며 책 보는 걸 취미로 했던 분들이 꽤 있더라”며 “문화가 바뀌고 공간이 생기면서 집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은 시인은 “혼자 노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집 밖에서도 혼자 술 먹고, 놀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동명 소설을 테마로 만든 맥주 '제인에어'. 애초에 생맥주로 개발했지만 혼술쓰기 강좌에 맞춰 병맥주를 별도 제작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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