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국에 가 세미나에 참가하면 발표자가 청중보다 훨씬 많다. 여러 언론사에서 온 기자들만이 부지런히 적고 인터뷰를 한다.
명색이 국제학술회의인데 중국 하고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주석단에 령도동지들을 청하여 줄느런히 모셔놓고 청중석 맨 앞줄에 는 발표자들을 모셔놓고 그 뒤로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청중이 꽉 찬다. 조직에서 행정명령식으로 참가를 '권고'하는데 청중들은 자기의 뜻하고는 관계가 없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 대가로 만찬에 참가하여 입의 즐거움을 누릴수가 있다.
물론 발표자의 립장에서 많은 청중을 상대로 주장을 펼쳐가는것은 신나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미나의 목적에 도달하는것은 아니다.
올 여름 내내 조선족사회에서는 여러가지 명목의 세미나가 련속 부절히 열렸다. 어느것 하나 절실하지 않은 명제가 아닌듯싶다. 요즘에 와서 새롭게 제기된것이라고는 별로 없다. 대개 벌써 오래 전부터 조선족사회의 고민거리로 고착이 된 문제들도 푸술하다.
한번도 아니고 한해도 아니고 십여년을 아픔을 호소하였지만 해결은커녕 곪아서 터질 직전에 이르렀다. 아주 쉽게 풀릴수 있는 문제인데도 해결되지 않는것은 무엇때문인가?
어쩌다 세미나에 참가해보면 참가자들은 청일색으로 조선족들이다. 주석단에 모신 령도들도 청일색으로 조선족간부들이다. 조선족끼리 모여서 떠들고 술 먹고 헤여지면 행사 끝, 회의 조직자는 다음 날 신문과 방송에 나간 회의관련보도기사와 화면을 챙겨서 보관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운다.
다민족국가라면 다가 그러하듯 주류 민족과의 소통이 문제해결의 첩경이다. 중국에서는 한족과의 교류가 우선이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한족과 소수민족이 상부상조하는 중국사회에서 주류를 몰리고 해결할수 있는 문제는 없다. 조선족사회에 대한 문제해결이 지지부진한 원인중 하나는 한족이 없는 조선족끼리 진행하는 행사에 있다. 특별 초청을 받아온 조선족 령도간부들이 회의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회의는 참가자 모두가 조선말에 능한데도 굳이 한어로 발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도 주류 민족인 한족이나 기타 여러 민족들하고 자리를 같이 하고 함께 고민하는 장소로 만들지 못하는것이 자못 아쉽다.
한국의 세미나는 청중은 비록 없을지라도 언론을 통해 사회적 여론이 되여 정부의 정책에 반영된다. 하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세미나가 보도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조선말 방송을 무난히 들을수 있는 한족이 얼마나 될가? 조선문으로 된 신문기사를 무난히 볼수 있는 한족이 얼마나 될가?
재일 조선족 이강철교수는 '연변의 발전에는 인재유치전략과 정책대안이 시급한 과제'라는 논문에서 '주류민족이 한족인 중국에서 조선족의 발전은 반드시 중국의 주류사회와 어울려야 한다'.라고 썼다.
2009년 9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