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장편|자음과모음| 432쪽|1만3500원
오전 7시의 시침과 분침이 만들어내는 각도는 150도다. 작가 백영옥(38)은 이를 '외로움의 각도'라고 특정한다. 일상의 사람들에게는 알람 소리에 깨어 비몽사몽하거나 아침을 먹을지 조금 더 잔 뒤에 택시를 타고 회사에 갈지를 가늠하는 시간. 하지만 이 작가의 두 번째 장편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서 사랑을 잃은 주인공들은 익명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자신의 슬픔을 나누기 위해 도심으로 진출한다. 그것도 이 믿을 수 없는 시간에. 가히 '7시의 유령들'이다.
1년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사랑의 시차'에 관한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나의 밤이 너에게는 낮인 연인을 통해 사랑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무한대로 확장해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자신의 몸에 여러 도시의 시간을 담은 직업이 있다. 한곳에 정주(定住)할 수 없는 항공사 스튜어디스 역시 그럴 것이다. 열 살 때 '날짜변경선'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순간 자신의 미래 직업을 결정해버린 L항공 스튜어디스 윤사강이 일곱시 조찬 모임에 참석한다. 역시 여러 시간을 몸에 지니고 있는 같은 항공사 소속 기장 정수로부터 실연당한 상태다. 그리고 그 모임에는 십 년 된 여자 친구로부터 네 가지 방식의 통신기계로 이별을 통보받은 지훈이 있다. 이메일과 페이스북, 트위터와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똑같은 내용을 듣게 된 불운한 사내. 이제 사랑의 시차는 슬픔의 시차로 확장되고, 실연의 주인공들을 아침 7시에 모이게 만든 미도의 서사가 가세하면서 이 조찬 모임은 뜻밖의 활기를 띠고 질주한다.
국어사전에 실연(失戀)은 '연애에 실패하다'라고 나와 있지만 사랑을 성공과 실패로 구분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실용주의적 접근일 것이다. 이 단어의 정의를 '사랑을 잃다'로 바꾸면 어떨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쓸모만큼만 인정받다가, 쓸모가 사라지면 즉각 폐기되는 삶이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경쟁이라면 그것의 반대편에 사랑과 실연의 세계가 있다. 조찬 모임의 회원들은 각자의 추억을 새긴 옛 연인의 선물이나 기념품을 한자리에 모은 뒤 상대방의 그것과 나눠 가진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로모 카메라 속 빛바랜 필름이나 세 장의 버스카드. 자신에게 남겨진 실연의 기념품은 사실 타인에게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하지만 그 무용지물, 이 쓸모없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감성이야말로 사랑이고 문학일 것이다.
-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