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룡은 우리나라 레이저자이로기술 분야 창시자이자 중국공정원 원사이다. 생전에 국방과학기술대학 광전과학 공정과학학원 교수로 있었던 고백룡 선생은 팀을 이끌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40년간 탐색해 완전한 자주적 지적재산권을 가진 레이저자이로 연구제작의 길을 개척해 나라의 여러 중기에 자주항법이 가능한 “중국칩”을 장착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미국과 프랑스, 로씨야에 이어 세계에서 레이저자이로를 독립적으로 연구제작한 네번째 국가로 되였다.
레이저자이로는 미사일, 비행기, 선박 등 무기장비들이 정밀 타격, 쾌속 반응을 실현할수 있는 핵심 부품으로 외부 정보에 의거하지 않고도 자주 항법, 유도, 위치 측정이 가능하다. 지난 세기 60년대 서방의 부분적 나라들은 이미 레이저자이로 기술을 폭넓게 응용했고 자체 기술에 대해 철통 봉쇄를 실시했다. 국방과학기술대학 모 학부 라휘 주임에 따르면 중국이 처음 레이저자이로를 접한 시기는 1971년 전학삼 동지가 국방과학기술대학에 두 페이지의 문서를 넘겨주면서부터이다. 두 페이지 문서의 과학적 난이도는 세계급 “암호”에 가까웠다. 고백룡 선생은 대량의 계산을 통해 1년반 시간을 들여 암호의 원리를 해독했고 우리나라 특유의,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네가지 주파수 구간 차동의 자이로 연구제작 방안을 내놓았다.
그 뒤로 리론체계 건설에 1년반이 걸렸고 첫 견본기계제조까지는 장장 2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모든 부품 제조는 0에서 시작됐다. 1994년 첫 레이저자이로 견본 기계가 탄생했고 이와 함께 고백룡 선생이 이끈 연구팀이 연구개발한 중국 첫 고정밀도 반사률, 투과률 측정계 등 세계적 주목을 받은 일련의 과학연구 성과들이 세상에 나왔다. 1994년 퇴직 년령에 이른 고백룡 선생은 힘을 놓지 않고 레이저자이로 기술이 전장에서 진정한 “무기의 눈”으로 작용하도록 지도했다.
고백룡 선생이 78세 되던 해 신형의 레이저자이로 기술을 탑재한 우리나라 첫 항법시스템이 세상에 나왔다. 장비는 모 해역에서 시험을 진행했고 백발백중으로 그 실력이 검증됐다. 이로써 우리군은 자주항법의 “중국칩”을 갖게 됐다. 2017년 12월 고백룡 선생이 눈을 감기전 학부 정치공작원 류화욱이 고백룡 선생에게 어떤 요구가 남아있는지 물었다.
고백룡 선생은 첫째는 앞으로 반드시 더 큰 용도가 있을 것이니 네가지 주파수 구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둘째는 한 학생의 론문이 가치가 있다며 심사후 출판해 줄 것을 요구했다.
고백룡 선생의 세계는 단순하고 순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