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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인천에 온 리설주, '북 응원단' 아니었다

[기타] | 발행시간: 2012.08.31일 00:00
지난 10여 년간, 대북지원사업과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하면서 수없이 방문해서 만났던 북한과 북한 사람들.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고, 다르면서도 같은 것 같은 남과 북의 만남에서 발생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해 볼 지점들을 하나씩 기사로 전합니다. - 기자말

2004년 인천에서 개최된 6.15공동선언 4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계기로 당시 안상수 인천시장은 인천시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꿈꾸게 되었다. 인천시는 북한 개풍군과 인천을 잇는 평화의 연육교를 건설하여 인천경제 활성화를 모색하려는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한 이벤트로 다음해인 2005년 '인천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초청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 게임과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의 미녀응원단이 인기가 좋았었고, 그들이 오면 대회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인천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북한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인천시가 주도하는 인도적 대북지원부터 고민해야 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인도지원 과정에서 인천시와 북한과의 독자적 파트너십을 만들자는 의중이 깔려 있었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이하 겨레하나)는 이 사업의 중재역을 맡았다. 거의 10개월 가까이 걸린 협의 끝에 인천시는 당시 평양 거리 정비를 위한 도로 포장 원료인 피치를 지원해주기로 하고, 인천시장을 비롯한 대규모 대표단의 평양 방문을 추진하여 북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인천에 오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하였다.

갑작스러운 북쪽의 '응원단' 불허 통보

▲ 응원단이 오겠다는 합의가 마지막에 번복되자 참으로 난감했다.

ⓒ 서영준 화백

그런데 마지막 실무 절차를 마무리 점검하기 위한 개성 회의에서 북한은 갑자기 돌발치 않은 내용을 통보해왔다. 선수단은 보내주겠는데 응원단을 보내는 것은 취소하기로 결정되었느니 양해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 열린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지도부의 최종 결정 회의에서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인천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가 축구처럼 구기종목도 아니고, 길어봤자 10여 초면 끝나는 육상경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응원하느냐'는 문제제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생각지 못한 의견이 제기되자 그 누구도 답을 내리지 못했으며, 응원도 못하는 곳에 응원단을 파견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응원단 파견이 취소된 것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애초에 응원단을 보내달라고 했던 요구가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육상대회에서 화려한 집단 응원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왜 처음부터 하지 못했을까? 북한의 대대적인 인천 방문 효과를 올리자는 생각으로 응원단을 제기한 것이었으며, 그 과정까지 워낙 큰 쟁점들을 처리하느라 응원단 활동이라는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으로 허를 찔린 셈이다.

그러나 그 때는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한 문제제기가 적절한가 아닌가를 떠나, 어렵게 이루어진 합의가 깨질 경우 벌어질 엄청난 사태를 어떻게 감당할지 여부였다. 막막했다. 응원단이 오지 않으면 북한 선수들은 '인천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별로 주목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믿을 수 없는 북한'에게 대북지원까지 하며 일을 추진한 인천시장에게 비난 여론이 쏟아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앞으로 다른 지자체들의 대북사업에도 좋지 않을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그 뿐인가. 그 파장은 겨레하나에게 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 북과 합의를 한 당사자는 인천시지만, 인천시는 겨레하나의 대북협상력에 의지해 일을 추진했고 협상의 고비마다 겨레하나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며 여기까지 왔는데, 대북교류협력중재자로서의 겨레하나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평양으로 직접 달려간 이유

나는 당장 평양으로 달려가 직접 이 사태의 심각성을 민화협 지도부에 직접 호소했다. 결정을 바꿀 수 있도록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이 있던 인천시 공무원도 새파랗게 질려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한번 내린 결정을 바꿀 수 있을까? 그 결정의 이유가 틀린 것도 아닌데. 응원할 것이 없다는 문제제기를 어떻게 설득하지?'

서울로 돌아와 겨레하나 회의를 열어 장고의 논의 끝에 별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겨레하나의 처지를 봐서 재고해 달라는 것'으로 호소하자고 입장을 정리했다.

'당시 인천시장은 한나라당 소속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북의 경제적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의미있는 대북지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겨레하나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 때문이고, 무려 14번씩이나 인천시와 북의 협의가 결렬될 때마다 겨레하나의 중재로 다시 대화가 이루어졌었다. 그러므로 북이 인천시장과의 약속을 깰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곳은 겨레하나이며, 북과의 교류협력을 통해 평화통일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겨레하나에 이렇듯 엄청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응원할 것이 없다는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여파를 고려해 결정을 번복해 달라'고 설득하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가장 절박하게 북에 호소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개성에서 결과를 통보 받고 닷새 만에 평양에 도착했다. 일주일 내에 다시 민화협 지도부의 회의가 예정되어 있어 그전까지는 도착해서 겨레하나의 의견을 이야기해야 결정을 번복할 마지막 기회를 갖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민화협 안내원의 귀띔 때문이었다. 평양에 간 나는 거의 죽을 듯한 심정으로 민화협 지도부에 겨레하나의 사정과 관련된 호소를 전하였다. 결과를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 나는 태어나서 가장 긴 시간을 경험한 것 같았다. 회의 결과를 가지고 민화협의 김 선생이 나를 만나러 왔다. 어떻게 되었을까.

▲ '응원단'이 아닌 '청년학생협력단'을 파견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되었다.

ⓒ 서영준 화백

"총장 선생, 대단합니다. 총장 선생의 호소가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응원을 할 것이 없다는 민화협의 결정을 살려 응원단이 아닌 '청년학생협력단'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북의 결정을 바꾸다니 겨레하나 대단한 실력인데요?"

이게 무슨 뜻일까? 그러니까 응원을 한다는 뜻인가 아닌가? '청년학생협력단'이라니 그것은 또 무엇인가? 그런게 있었나? 무슨 뜻인지 감을 잡지 못하여 어리벙벙한 내게 김 선생은 말을 이었다.

"'청년학생협력단'은 응원단이 아닙니다. 한 번 응원단 파견을 취소한 이상 이것이 번복될 수는 없습니다. '청년학생협력단'이 응원을 하기는 합니다만, 주요 임무는 응원이라기보다는 겨레하나와 협력하여 남북화해협력 분위기를 앞당기는 여러 가지 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초청한 것이 인천시와 겨레하나이니 인천시의 육상선수권대회에 북의 참가를 축하하는 축하공연도 하고 남북공동응원도 합니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라 겨레하나 청년학생 회원들과 협력하여 연환모임과 만찬을 열고 공연도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청년학생협력단'은 겨레하나의 호소를 듣고 겨레하나와 협력하기 위해 인천에 가는 것입니다."

와~! 그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됐구나, 이제 살았구나!'라는 심정이었다. 사실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겠다는 결심이었지, 결과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우리의 호소를 받아들여 주다니. 마치 기적이 일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응원단'이 '청년학생협력단'으로 전화위복

그 당시 민화협에서 인천 동아시아육성선수권대회에 파견한 조직이 바로 금성학원 학생들로 구성된 '청년학생협력단'이었다. '청년학생협력단'은 기존부터 있던 조직이 아니라 그때에 긴급 구성한 모임이라고 했다. 참 절묘한 결정이었다. 응원단을 보낼 수 없다는 결정의 취지는 그대로 살리면서도, 인천시의 입장과 겨레하나의 입장을 전반적으로 충분히 고려하여 훨씬 더 의미가 있는 '청년학생협력단'을 파견하기로 한 결정이었다. 정치는 명분이라고 했던가? 결정을 번복하면서도 모두를 감복시키는 방안을 만들다니.

또 북의 민화협은 나에게 생색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총장 선생을 믿고, 금성학원 학생들을 보냅니다. 그 애들은 워낙 순수하고 또 민감한 어린 학생들이기 때문에, 혹시 인천에서 공화국과 장군님을 힐난하는 사람들이라도 접하면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겨레하나가 책임지고 이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때 온 '청년학생협력단'에 리설주양이 있었다. 청년학생협력단이 인천에 머무른 내내 나는 그 호텔에서 숙식을 같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남한의 관계기관원들의 별의별 눈총을 다 받고 간신히 호텔에 눌러 있었지만, 그 학생들을 지켜달라는 북측 민화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음이라도 보이며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인천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는 무사히 잘 진행되었다. 청년학생협력단의 응원은 생동감이 있었고, 청년학생협력단의 2차례 축하 공연도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겨레하나'와 '청년학생협력단'의 연환무대였다. 남북의 청년학생들이 인천전문대의 캠퍼스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도시락 먹으며 어울려 놀았다.

말그대로 우리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남쪽 땅 한복판에서 이처럼 자유롭고 신명나는 통일 축제가 벌어질 수 있을까? 여타의 남북공동행사처럼 의전이나 딱딱한 연설도 없고 격식도 없이 남북의 미래인 청년학생들이 함께 추는 춤이야말로 앞으로 어쩌면 또다시 기대하기 힘든 감격적인 장면이 아니었을까? '이런 장면을 보려고 그렇게 마음이 졸였나 보다. 그리고 이런 것을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 뒤 행사를 마치고 겨레하나가 다시 평양에 갔을 때, 북측의 민화협은 우리를 금성학원으로 초청하여 겨레하나만을 위한 특별공연을 마련해 주었다. 남북관계가 회복되면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가 된 리설주씨를 꼭 한 번은 만나러 가야겠다.

▲ 연환모임 행사장인 인천전문대 체육관 앞에서 '청년학생협력단'이 춤을 추는 모습

ⓒ 겨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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