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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번쩍 속이 뻥 뚫리는 겨울메뉴

[기타] | 발행시간: 2013.01.16일 18:35

[한겨레] [매거진 esc] 요리

새콤하게 언 김치국물에

밥 말은 김치말이밥

겨울철 이북 별미

“몸 안에 첫눈을 내리게 하기 위해서요, 뜨거워진 가슴을 식혀야죠. 영혼의 소방차라고 할까요.” 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씨가 겨울철 팥빙수를 먹는 이유다. 요즘 그의 하루 식습관은 냉면과 팥빙수로 이어지는 순환계다. 차가운 팥빙수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잠자리에 든다. 영하로 내려간 추운 겨울을 칼바람처럼 찬 음식으로 이겨낸다. 이랭치랭(以冷治冷)이다. 찬 음식으로 추위를 쫓아내는 것도 이 겨울을 이겨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가 찾는 냉면은 대표적인 겨울 음식이다. <동국세시기>(1849년)에 11월 음식으로 소개되어 있다. 평안도가 고향인 이들은 겨울에 따스한 아랫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먹는 냉면 맛이 최고라고 한다.

냉면만 북쪽이 고향인 찬 음식은 아니다. ‘이북손만두’를 운영하는 박혜숙(73)씨의 기억에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김치말이밥이 있다. 평양에서 살았던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집 앞에는 대동강이 흐르고 집 뒤쪽에는 김일성광장인가가 있었지요. 옛날에 뭐 먹을 거 있었나요. 한겨울 밤은 길고 오락거리도 없었죠.” 시커먼 겨울밤이 창 안으로 쑥 들어온 11시께에 여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아버지가 “뭐 먹을 거 없나” 말하곤 했다.

박씨의 어머니 이정옥(작고)씨가 사뿐히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쌩쌩 북쪽 바람은 위력이 초특급이다. 장독대에는 녹지 않은 눈이 수북하다. 어머니는 손으로 찬 눈을 헤치고 독 뚜껑을 열었다. 김치 위에는 뾰쪽뾰쪽 얼음이 언 대동강 물줄기처럼 얹혀 있었다. 큰 바가지에 얼음조각까지 푹 퍼서 김치 한 포기를 담는다. 아랫목에 넣었지만 추운 겨울 위력에 이미 식은 밥을 쓱쓱 썬 김치에 넣어 비볐다. 맛을 내기 위해 참기름도 솔솔 뿌린다. 온 가족이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커다란 그릇에 담긴 김치말이밥을 떠서 먹으면서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웠다.

박씨는 덜덜 떨면서 먹었던 그때 그 맛이 지금도 선하다. “짜지 않고 슴슴했어요. 먹으면서 이런저런 재미난 이야기를 나눴죠.” 북쪽 김치는 추운 날씨 탓에 그다지 짜게 만들지 않는다. 더운 날씨 때문에 쉽게 상할까 싶어 젓갈 등을 많이 넣어 담그는 남쪽 지방 김치와는 달랐다. “우리 집은 김장할 때 사골국물을 넣어요. 젓갈을 안 넣죠. 김치말이밥에는 우리 집 김치가 딱 맞아요.” 배추를 절이는 것은 남쪽 지방과 같다. 파, 무채 등 김치의 속재료를 사골국물에 버무렸다.

‘이북손만두’는 4대째 서울 중구 무교동 한옥을 지키고 있다. 박씨는 1990년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 그 시절 그 맛 그대로 밥상을 차려 ‘이북손만두’를 열었다. 이곳 차림표에 있는 김치말이밥은 독 안에 살짝 언 얼음 대신 네모난 각얼음이 들어가고 넉넉한 국물을 내기 위해 생수도 들어가지만 사골국물이 들어간 김치와 참기름, 깨소금으로 버무린 그 맛은 그대로다. 아들 장윤섭(44)씨는 “일주일에 50포기씩 김치를 담급니다. 사골국물은 3일 밤낮을 끓여요”라고 말했다. ‘이북손만두’의 김치말이밥을 한입 무는 순간 뒷골에서 땡 소리가 난다. 식도를 타고 찬 기운이 들어와 온몸을 접수한다. 시원한 속 탓에 몸 밖 추위를 신경쓸 틈이 없다.

냉우동도 추위를 달래는 음식이다. 소바전문집으로 유명한 ‘스바루’에는 세 가지 찬 우동이 있다. 자루우동, 새우튀김우동, 마우동. 일본의 소바집에는 우동을 함께 파는 곳이 많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냉면처럼 찬 국물에 면이 담겨 나오는 게 아니라 소바처럼 찬 면이 따로 나온다. 면을 소스에 찍어 먹는다. 메밀면보다 퉁퉁한 우동면은 보드라운 눈뭉치 같다. 쓰유(간장소스)에 푹 담가 먹으니 탱탱한 찬 맛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주인 강영철(55)씨는 “일본 간사이(관서)지방 사람들은 우동을, 간토(관동)지방 사람들은 메밀을 좋아해요. 사누키우동이 유명해지면서 도쿄에도 우동이 많이 퍼지긴 했죠.” 사누키우동은 일본 가가와현 사누키지방이 고향이다. 면발이 탱탱하고 굵은 것이 특징이다. 면 반죽을 발로 밟는다. 양념이 더 잘 스며들어 맛이 좋다고 한다. “한 번에 약 20분 밟아서 만듭니다.” 뜨끈한 우동과는 다른 냉우동만의 새침한 찬 맛이 매력적이다.

쫄깃쫄깃 탱탱한

냉우동

눈 씹듯 시원한

팥빙수도 후련한 맛

밥과 면으로 한끼 속을 넉넉히 채웠다면 디저트 차례다. 팥빙수는 친근한 찬 후식이다. 2012년 7월 홍대 먹자골목에 문을 열어 단박에 팥빙수 마니아들의 사랑을 차지한 ‘경성팥집 옥루몽’을 찾았다. 누런 놋그릇에 뽀얀 얼음가루와 달콤한 팥이 수북하게 올라가 있다. 문 밖에 쌓인 눈뭉치를 그대로 몸에 모시는 기분이 든다.

종업원 허지원(23)씨는 “여름보다는 찾는 이가 줄었지만 여전히 오시는 분이 많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국산 팥을 정성스럽게 삶고 연유와 다른 재료를 넣어 만든 저희 집만의 소스가 맛의 비결이에요”라고 전한다. 녹차빙수, 와인빙수, 과일빙수 등 다양한 모양새의 빙수가 유행했지만 팥과 빙수만 들어간 고전적인 형태의 빙수가 여전히 강세다.

빙수의 시작은 꽤 오래전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먹었던 빙수제조법이 등장한다. 요즘 같은 우리네 팥빙수는 일제강점기에 등장했다고 한다. 단팥을 얹어 먹었던 일본 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란다. 당시 빙수장수는 얼음에 설탕이나 팥, 노란 물, 빨간 물을 얹어 팔았다.

팥빙수의 단맛을 내는 연유는 서울우유가 1963년 처음 만들었다. 팥빙수는 팥이 맛을 좌우한다. 굵기가 일정하고 색이 선명한 것이 좋다. 팥은 토종 팥, 토종 팥을 개량한 국산 팥, 중국산 팥이 있다. 토종 팥이 맛이 좋다. 삶아도 탱탱한 겉껍질이 살아있다. 하지만 국내에 주로 유통되는 팥은 개량종이 많다. 삶는 기술과 팥과 얼음, 연유 등의 배합 비율도 맛에 영향을 미친다. 사기에 마치 고봉밥처럼 나오는 ‘합’(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팥빙수와 신세계백화점 경기점 7층 ‘레드빈’의 팥빙수도 맛볼 만하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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