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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그리 김종훈 vs 엘리트 안철수… 벤처신화 그 너머를 꿈꾼다

[기타] | 발행시간: 2013.02.22일 03:00

■ 닮은 삶, 다른 삶

그들은 대한민국의 신화다. 강한 힘을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처럼 시기하고 질투하며 울고 웃던 그리스 신들처럼 그들도 막대한 부(富)를 쌓으며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때로는 우리처럼 실패하고, 낙담했던 굴곡진 삶도 살았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장관 후보자와 안철수 전 18대 대선 예비후보는 어려운 미국 이민자 가정과 부유한 의사 가정이란 성장 배경의 차이는 있지만 환경에 관계없이 스스로의 의지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 왔다.

○ 김종훈의 빈곤

낳아 준 어머니는 기억도 희미하다고 했다. 부모는 그가 네 살 때 이혼했고 그 뒤 아버지는 재혼했다. 형제끼리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상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민 생활의 스트레스는 온 가족이 함께 겪었다. 세 살 위인 형은 늘 동생을 괴롭혔고 어린 김종훈은 이를 악물었다. “형보다는 더 잘되고 말 거야.”

하지만 쉽지 않았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영어도 빨리 늘지 않았다. 영어가 너무 어눌해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 행정관이 지능지수(IQ) 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을 정도다.

김종훈은 그래서 일찌감치 진로를 정했다. “의사는 기억력이 좋아야 하니까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변호사도 내가 말을 잘 못하니까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럼 물리학자나 공학자가 되자.” 그는 약점투성이였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순 없을 거야. 앞으로는 계속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살자”라고 생각했다.

○ 안철수의 풍요

인자한 어머니는 세 남매를 모두 존대했다. 아이들이지만 존중하겠다는 철학에서였다. 아버지는 일부러 병원이 거의 없는 낙후된 동네에 병원을 세운 의사다. 돈을 버는 것보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 근처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중요했다.

부모는 어린 안철수가 라디오와 시계를 몽땅 분해해 망가뜨렸을 때에도, 메추리알을 부화시키겠다고 몰래 품고 자다 이불을 엉망으로 만들 때에도 “에디슨처럼 되려나 보다”라며 허허 웃었다.

부족한 게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안철수의 어린 시절 별명은 ‘흰둥이’였다. 제자리에 세워 놓은 축구공 하나 제대로 차지 못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떨어졌다. 학교 성적도 중간보다 좀 나은 정도였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부잣집 도련님에겐 친구가 없었다.

그 대신 꽃과 책을 친구 삼았다. 모두 혼자 하는 일이었다. 대학 때 만난 새 친구도 혼자 할 수 있는 컴퓨터였다. 애지중지하는 그 소중한 친구를 못 쓰게 만든 게 컴퓨터바이러스였다. 안철수는 외국 컴퓨터 잡지를 뒤져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인생이 달라졌다.

○ 포기와 성공

김종훈은 1979년 장학금을 받고 존스홉킨스대 공대에 입학했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미국에서 화제가 되던 시절이라 그도 교수, 친구들과 함께 디지투스라는 컴퓨터회사를 창업했다. 컴퓨터산업이 급성장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인생의 첫 성공이었다. 하지만 1982년 해군에 입대했다. 친구들은 말렸지만 그는 “미국이 내게 베풀어 준 게 너무 많아 내 인생의 황금기가 지나기 전에 은혜를 갚겠다”라고 했다.

안철수는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1990년에는 단국대 의대 의학과장이 됐고 1991년에는 의학박사 학위도 땄다. 이미 ‘백신을 만드는 컴퓨터 의사’로 유명했지만 늘 “본업은 의학이고 제대하면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1995년 안철수연구소를 차렸다. 그대로 의사가 된다면 경제적 걱정 없이 살 수 있겠지만 포기했다. 그는 “남 보기에 번듯한 의사, 대학 교수 등이 아니라 돈을 못 벌더라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게 백신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포기는 더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김종훈은 군대 생활을 하면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제대 후 군 관련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군사용으로 시작된 통신기술을 민간용으로 전환하는 회사를 차렸다. 후에 루슨트테크놀로지에 10억 달러에 판 유리시스템스다.

안철수는 의사를 포기한 뒤 백신 프로그램 개발에 전념하기 위해 안철수연구소를 세웠다. 맥아피는 1000만 달러에 회사 인수를 제안했다. 하지만 안철수는 한국에도 보안 기업 하나는 있어야 한다며 거절했다.

○ 또 다른 인생

두 사람은 최근 다시 한 번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김종훈은 오늘의 그를 만들어 준 미국을 떠나 박근혜 정부의 장관직을 택했다. 안철수는 지난 대선에서 출마를 선언하면서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라며 ‘정치인 안철수’로 살겠다고 밝혔다.

그들은 모두 “나는 별로 똑똑하지 않다”라며 “남보다 조금 더 노력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군인, 의사, 교수, 기업가, 정치인…. 그들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선택의 기준은 같았다. “최선을 다해 이 순간을 살고, 사회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겠다.”

동아일보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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