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사이에 ‘역(逆)멘토링’이 확산되고 있다. 최신 트렌드와 IT 기기에 익숙한 말단 직원이 고참 선배나 고위 경영진의 멘토가 돼 업무와 회사생활에서 ‘젊은 감각’을 유지하도록 여러 도움을 준다. 고참 선배가 멘토 역할을 하던 관행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는 공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4월부터 역멘토링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명칭은 ‘공감토크’. 임원들이 매달 한 번 이상 2005년 이후 입사한 젊은 직원 3명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젊은이들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경재 캠코 이사는 지난달 15일 서울 삼성동 카페에서 후배 직원 3명과 식사를 했다. 입사 4년차 사원 정미선(28·여)씨로부터 “요즘 직원들은 미술관 같은 데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일은 사무실에 출근해 하는 거라고 생각하던 이 이사는 “그런 식의 업무 분위기도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직장인들에게 야근은 필수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캠코 임원들은 요즘 젊은 직원들과 뮤지컬 연극 등을 함께 보거나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기존 멘토링이 젊은 직원의 회사 적응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면 역멘토링은 정반대다. 캠코 관계자는 “경영진에게 젊은층의 발랄한 끼와 창의적인 생각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며 “조직 내 세대 융합도 되고 변화에 둔감한 기성세대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확산되는 등 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역멘토링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SNS 사용법 등 새로운 IT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도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H그룹 한 상무는 평소 최신 IT 기기를 잘 다루지 못해 ‘IT 늙은이’란 소리를 들었다. 페이스북을 개설할 줄도 몰라 쩔쩔매다 신입사원의 도움으로 겨우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사용법과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표현도 배웠다. 그는 “젊은 직원들과 ‘페친’이 됐는데 그들의 글을 보면서 요즘 신세대 문화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역멘토링은 잭 웰치 전 GE 회장이 1999년 젊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감각을 구비하자는 취지로 처음 실시했다. 그는 고위 간부들이 부하 직원들에게서 인터넷 등 신기술을 1대 1로 배우게 했다.
역멘토링 제도는 변화에 민감한 외국계 IT 기업을 중심으로 발 빠르게 도입됐다. IBM의 젊은 직원들은 고참 직원들에게 트위터 페이스북 사용법을 가르친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쓰는 IT 기기도 직접 써보도록 한다. SNS 교육을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소셜컴퓨팅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역멘토링 제도는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바꾸고 젊은 직원들의 주인의식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말단 직원이 멘토 역할을 하는 역멘토링 제도가 기업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며 “직원들 간에 세대차이가 줄고 직급 간 벽을 허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김성수 교수는 “역멘토링이란 공식적인 시스템을 만들면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자유롭게 조언할 수 있게 된다”며 “상사가 아랫사람에게 뭔가 배우려는 자세는 리더십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