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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에 부르는 '여자의 마음'… 비결은 헬스클럽 2시간

[기타] | 발행시간: 2013.05.29일 00:26

안형일 서울대 명예교수

쉼없는 현역 '한국의 볼피' 음악하려 46년 홀로 월남

베르디 탄생 200주년 내일 세종문화회관 공연

피아노 앞에서 발성 연습 중인 안형일 교수. 그는 매일 한두 시간씩 이렇게 연습을 한다. [김상선 기자]

“예. 제가 안형일 맞는데요….”

 처음엔 전화를 잘못 건 줄 알았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의 주인이 88세라고 믿기 어려워서다. 안형일 서울대 명예교수의 목소리는 40~50대 남성의 음성과 진배없었다. 밝고 또렷하고 윤기가 흘렀다. 27일 서울 서초동 자택을 찾았을 때도 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수백 장의 레코드판·CD와 스피커, 방 하나를 떡 하니 차지한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한국 음악계에선 안 교수를 이탈리아 테너 자코모 라우리 볼피(1892~1979)에 빗댄다. 역사상 가장 긴세월(27~67세) 현역으로 활동한 볼피처럼 안 교수 역시 여전히 무대에 서기 때문이다. 지금도 연 2~3회 무대에 설 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을 가르친다. 발성법을 배우기 위해 안 교수를 찾는 교수들도 있다. 30일 그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주세페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주 아리아)을 부른다. 1813년 태어나 (올해가 탄생 200주년) 88세에 사망한 베르디의 곡을 88세의 안 교수가 부르는 거다. 56년 전 안 교수의 데뷔 오페라 역시 베르디의 리골레토였다. 그가 무대에 선 횟수는 1000회가 넘는다.

 - 놀랍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지금도 매일 2~3시간씩 헬스클럽에서 꾸준히 운동한다. 운동을 쉬면 더 힘들다. 발성 연습도 매일 1~2시간씩 한다. 성악이라는 게 몸이 악기니까. 성대도 얼굴과 마찬가지여서 늙으면 늘어지고 탄력이 없어진다. 최고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72)도 나이가 들면서 고음 내기가 힘들어 바리톤으로 내려갔다. 세계적인 대가들도 나이들면 어쩔 수 없다. 성악가는 몸이 악기니까….”

 - 30일 무대가 부담되진 않는지.

 “그렇지. 나를 볼피 같은 대가에 빗대 과찬하니까 잘해야 되는데. '여자의 마음'은 어려운 곡이다. 음이 높아서 내 나이에 그걸 부른다는 것 자체가 무린데…. 사실 걱정이다. 이번에 같이 무대에 서는 박미혜, 나승서 같은 제자들은 정말 잘하는 성악가들이다. 다들 나보다 잘한다. 전성기가 지난 내가 여기 껴서 한다는 거 자체가 영광이다.”

 제자들과 무대에 서는 게 영광이라는 안 교수지만 “할 건 다 해봤다”고 자평할 만큼 성공한 음악가다. 서울대 교수, 국립오페라단 단장, 한국성악과협회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젊은 시절은 달랐다. 안 교수의 삶은 '비포장 도로'였다. 평북 정주 출신인 그는 음악을 하기 위해 46년 홀로 월남했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과는 그때 이후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 성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중3 때 음악선생님이 일본에서 공부한 테너였다. 노래를 시켜보더니 '넌 성악해야 된다'고 했다. 그 선생님께 레슨을 받았다. 피아니스트 사모님께는 피아노도 배웠다. 우리집은 부자였다. 피아노도 사줬으니까. 그때가 1940년대 초반인데 내 나이에 그렇게 배운 사람은 거의 없다.”

 - 그런데 왜 혼자서 월남했나.

 “현제명 선생이 만든 경성음악학교(서울대 음대의 전신)에 진학하려고. 그때 평양엔 음악학교가 없었다. 왜 풍악쟁이가 되려 하냐며 집에서 반대가 심했다.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맨손으로 내려왔다. 어머니가 평양역까지 따라오셔서 지금 돈으로 3만원 정도 주셨다. 그게 전부였다. 그후 엄청나게 고생했다. 미군 장교 하우스보이부터 서울역 앞 지게꾼 상대로 밥 장사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전쟁 때는 손원일 제독이 '예술가들을 살려야 된다'며 만든 해군정훈음악대에서 미군 미주리함, 스웨덴 군병원 같은 곳을 돌며 거의 매일 공연했다. 그때 손 제독이 그런 결심을 안 했더라면 우리 예술가들은 다들 죽었을 거다.”

 안 교수는 53년 대학 졸업 뒤 7년간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활동했다. 60년 한양대 음대 창립 멤버로 대학교수가 된 뒤 66년 서울대로 자리를 옮겼다. 교직 40년. 그가 키워낸 제자들은 매년 음력 설이면 그에게 세배하러 모인다. 안 빠지고 오는 제지만 50명이 넘는다. 얼마 전부터는 아예 호텔에 함께 모여 합동 세배를 받는 자리를 만들었다. 안 교수가 무대에 서는 그랜드오페라단의 베르디 탄생 200주년 공연 '올댓 베르디 올댓 오페라'는 30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안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부인 박영희(79)씨 얘기를 꺼냈다.

 “집사람이 서른 살 때부터 동대문 광장에서 포목상을 해서 나와 자식 3남매 뒷바라지를 했어요. 그만둔 지 한 보름 정도 됐으니까, 거의 50년 동안 고생했죠. 집사람이 희생해준 덕에 오늘도 무대에 서는 내가 있는 거죠.”

 잠깐 인사한 부인 박씨도 활짝 웃었다. 60대 초반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외모로….

글=한영익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한영익.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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