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의 전당? :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전경. 국회의원 보좌진은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국회에서 위상을 높이며 권한 남용 시비도 잇달아 일으키고 있다. 심만수 기자 panfocus@munhwa.com
대기업에 다니는 A 씨는 요즘 괴롭다. “콘도 숙박권 좀 구해 달라”는 여의도발 민원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성수기에 숙박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지만 곧 다가올 국정감사를 생각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융권 대관업무 담당자 B 씨도 골치가 아프다. 기혼인 국회 보좌관이 집 사는 데 대출금리를 좀 깎아 달라고 하고, 미혼인 비서관은 괜찮은 여직원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몇 주째 압박하고 있다.
8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의회권력이 한층 더 강화되면서 덩달아 기세등등해진 국회의원 보좌진이 여의도 ‘슈퍼갑’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야당 중진 의원 보좌관 임모 씨가 2010년 5월 지방선거 당시 구청장 후보 경선과정에서 구청장 부인으로부터 억대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것을 계기로 보좌진의 비리 유형은 통 크게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의도에선 40대가 훌쩍 넘는 대관 담당자들이 의원실에 찾아와 20∼30대 보좌진에게 굽실굽실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모 의원실 보좌관은 “내 나이 또래 기업 담당자가 의원 여비서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들고 의원회관에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있다”며 “나도 보좌관이지만 먹고살기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실 보좌관은 “의원 비서가 결혼하는 데 보좌관이 상임위원회의 소관 기관들에 팩스로 청첩장을 뿌렸다가 문제가 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선 최근 결혼한 한 보좌관이 수억 원 상당의 축의금을 챙겼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갑을’ 관계가 명확하다 보니 기업 관계자들은 보좌진이 마음먹고 횡포를 부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애교’ 수준의 민원을 넘어 노골적으로 접대를 요구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유·무형의 보복조치를 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또 다른 대기업 직원 C 씨는 지난해 국정감사 직전 겪었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당황스럽다. 평소 친분이 있던 모 의원실 보좌관이 대뜸 전화해 “피감기관 인사들이 향응을 받은 사실을 확인하려 하는데 같이 가자며”며 해당 술집으로 올 것을 요구한 것이다. 막상 도착해보니 이 보좌관은 다른 의원실 보좌관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고 계산서는 고스란히 C 씨 몫으로 남았다.
골프 접대도 빼놓을 수 없다. 회기가 끝났거나 의원이 자리를 비우면 평일 대낮에 골프 치자는 연락이 시도 때도 없이 온다고 한다. ‘갑중의 갑’인 공무원도 보좌진 앞에선 ‘을’로 내려앉는다. 정부기관 간부급 관계자는 “질의서에서 우리 기관 내용을 빼줄 테니 한턱 쏘라고 한다”며 “유흥주점에 가면 자기 지인들까지 불러놓고 여성 접대부를 끼고 거하게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의원 이름을 내걸고 사업상 편의를 봐주거나 관공서에 영향력을 행사해준다는 방식으로 거액의 돈을 받고 ‘브로커’ 역할을 하다 기소돼 재판에서 유죄를 받는 사례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수억 원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확정 판결 받은 박배수 씨 경우가 대표적이다. 3선 의원 보좌관이던 김모 씨의 경우 사업자 선정에 힘을 써주겠다며 해당 업체 주식 4000주를 받아 챙겼다가 지난 2011년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박수진·이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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