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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사건을 보는 야권 ‘황당과 당황 사이’

[기타] | 발행시간: 2013.08.31일 16:35

내란음모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8월 30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을 나서 오병윤 원내대표의 방으로 향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국정원과 여권의 국면전환용 노림수 뻔히 보이지만 자칫 진보당과 엮일까 곤혹…

·이번 사건과 국정원 개혁은 별개 사안이지만 개혁 동력 약화 불가피 “당황스러움 넘어 화가 치민다” 격앙된 반응도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그동안 숨죽여 있던 군복 입은 무리들이 국회 앞에 몰려와 하루 종일 ‘종북 척결’을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무슨 만화 같은 상황인지…. 허탈하기도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8월 30일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정의당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박원석 의원은 이번 사건을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표현했다. 박 의원은 “지금 국정원이 공개한 진보당 관계자들 녹취록 내용을 완전한 날조라고는 볼 수 없다. 그 내용으로만 보면 이들(통합진보당 관계자)은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실질적 위협도 안 되는 이들의 허무맹랑한 말들에) 내란죄를 들이밀어 처벌하겠다는 국정원도 제정신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번 사태로 국정원 개혁의 동력이 사그라지는 것이 가장 화가 난다며 “솔직히 개인적으로 통진당이 스스로 국민들 앞에 진실을 밝히고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 않는 한 함께 나서주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국정원 개혁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예비음모 혐의는 별개의 사안으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 사안으로 국정원 개혁의 동력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녹취록 내용·내란죄 적용 둘 다 어이없어

국정원이 내란음모 혐의를 내걸고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정조준하고 있는 가운데 야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국면전환용이라는 국정원과 여권의 노림수가 뻔히 들여다 보이지만 자칫 잘못 대응할 경우 통합진보당과 도매금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8월 30일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은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130여명의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강연과 토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는 “현실은 힘과 힘의 싸움이다. 지배세력에 의해 60여년 동안 형성됐던 현 정세를 무너뜨려야 돼요” “오는 전쟁 맞받아치자. 시작된 전쟁은 끝장을 내자. 어떻게? 빈손으로?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 “전시상황이라든지 중요한 시기에는 우리가 통신과 철도와 가스, 유류 같은 것을 차단시켜야 되는 문제가 있는 거죠. (중략) 안에 들어가서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고, 중요시설 안에서 이것들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같은 발언들이 나왔다.

구체적인 전후 맥락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겉보기에 위험해 보이는 발언들인 것은 분명하다.

녹취록을 공개한 언론 보도에 대해 통합진보당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홍성규 대변인은 “내란음모에 준하는 발언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녹취록은 일부 참가자들의 발언 취지가 날조 수준으로 심각하게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홍 대변인은 국정원이 ‘NLL(서해 북방한계선) 포기’라고 짜깁기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발언 취지를 왜곡시킨 사례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통합진보당은 국정원의 전광석화 같은 압수수색을 “공안탄압이자 국정원 규탄 촛불을 끄려는 음모”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통합진보당의 ‘공안 탄압’ 주장에 선뜻 동의를 보내지 않는 분위기다. 박원석 의원의 말이 시사하듯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는 정의당 내부의 시선은 차갑다.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현 상황에서 국면전환용으로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의 녹취록을 공개한 것은 당연히 문제지만, 이에 대한 빌미를 제공한 통합진보당 또한 ‘공안 탄압’의 피해자라고만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당내에서는 섣부르게 ‘공안 탄압’이다, 아니다라고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당이 좀 신중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의당 내에서는 통합진보당의 친북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학습효과가 있는 만큼 이 사건에 대해서 ‘공안 탄압’이라는 비판으로만 간다면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정의당 관계자는 “과거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조건반사적으로 ‘공안 탄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진보가 과거와 단절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안 탄압’으로 비판을 할 경우 자칫 통합진보당과 같은 세력으로 묶일 수 있다는 우려다.

정의당 내에서는 통합진보당이 이번 사안을 ‘촛불을 끄려는 음모’라고 반박하는 것 또한 부담스러워하는 기류가 읽힌다. 촛불이 연계될 경우 통합진보당의 문제가 진보개혁세력 전체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중요한 것은 법리적으로 이번 사건이 내란예비음모에 해당되느냐 아니냐가 아니고 국민들의 정서법에 이번 사안이 어떻게 다다갈 것이냐는 점”이라며 “진보진영 전체가 도매금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민주당 모두 분명한 선긋기

민주당의 고민도 비슷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의 과잉 조작인 건 틀림없지만, 통합진보당 쪽도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작년부터 통합진보당 사태가 중도진보진영 전체를 죽이고 있는 것 같아서 굉장히 두렵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민주당 책임론’을 자제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야권연대가 진보당의 국회 진출에 버팀목이 됐다고 보고 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8월 29일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의원연찬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진보당 세력을) 키워준 것”이라며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는 통합진보당과 단일화하지 않는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민주당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구태의연한 정치공세라고 비판하고 나섰지만, 논평의 내용은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보다는 통합진보당과 선을 긋는 모양새가 강하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8월 30일 논평에서 “야권연대를 결정할 당시에 통합진보당의 대표는 심상정 유시민 이정희 3인 대표 체제였다. 지금의 통진당과 당시의 통진당이 같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민주당은 낡은 진보와 시대에 뒤떨어진 자기아집형 이념세력은 멀리 해도 합리적 진보는 함께 해왔고, 함께 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통진당과 선을 그어 태풍은 피해보겠다는 고민이 묻어나는 논평이었다.

야권에서 당당함이 사라졌다. 오히려 “통합진보당과 같이 엮였다가는 정치권에서 매장되는 건데…”라는 식의 두려움만이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약했던 야권이 더 쪼그라들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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