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청명이 다가오니 이전에 우리 마을에서 벌어진 한가지 기막힌 일이 뇌리에 오련히 떠오른다. 그 일인즉 한 사나이가 자기집 산소를 찾아간다는걸 딴집 산소에 가 술을 붓고 절을 한것이다.
1962년도 일이다. 당시 우리 마을의 산소들은 모두 동산에 있었 청명이나 추석이 되면 많은 집들에서 동산에 올라 조상의 묘지를 찾아가군 했다. 지금은 시체를 화장하여 골회를 강물에 띄우기에 산소가 많지 않지만 그때는 거의 집집마다 산소가 있어 온 동네가 출동하다시피 했다.
원래 우리 마을에 살다가 어디론가 이사간 진××란 분이 다년간 나타나지 않더니 이해에는 청명을 하루 앞두고 술, 과자, 과일 등속을 사가지고 마을에 들어섰다. 그는 친구네 집에서 하루밤을 묵었는데 원래부터 술을 무척 즐겨 “얼냥”이란 별호를 가진 그는 저녁에 친구와 술을 승벽내기로 마셨다. 이튿날 아침에도 그는 또 술을 찾았는데 집에 술이 없어 그가 가져온 술까지 굽을 냈다. 이렇게 술을 싹쓸이 하다보니 산소에 가져갈 술이 없어 주인집 아줌마가 소매점에 가 근들이술 한병을 사왔다.
진××는 만취하였지만 산소에는 가야 했다. 비칠거리며 동산에 오른 그는 자기 ‘아버지산소’를 찾아갔다. 다년간 보살핌을 받지 못한 무덤은 잡초가 무성했다. 그는 벌초를 대충하고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놓은후 술을 붓고 꿇어앉아 절을 굽석굽석 세번 하였다. 그리고는 퍼지고 앉아 “난 불효자식이야.”라고 넉두리를 하며 눈물을 질금질금 짰다. 그러면서 혼자 또 술을 들이켰다. 그바람에 그는 곤죽이 되 제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딴사람들이 산소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코를 고는 진XX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 산소는 주인 없는 산소였다. 사람들이 그를 흔들어 깨워 이건 딴집 산소라고 했지만 그는 자기 아버지의 산소가 맞다고 생고집을 썼다. 사람들은 할수 없이 그를 억지로 데리고 그집 산소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여러사람들이 손을 모아 벌초도 하고 가토도 했으며 남은 음식들을 모아 제도 지냈다. 이러다보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산소에는 ‘상주’들이 특별히 많아보였다.
이 일은 봄철의 우뢰마냥 온 동네에 파다하게 퍼져 나도 알게되였다. 그리고 매년 청명이나 추석이 되면 이 웃음거리가 또 동네 사람들의 입밥에 오르군 해 나에게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정복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