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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허수아비와 매듭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3.09.05일 14:38
요즘 읽은 작품들가운데서 날씨만큼 따끈한 인상을 받은것은 구호준의 수필 《겨울, 그리고 허수아비》(《연변일보》해란강 제1535기)와 박춘월의 시 《일년의 마지막 날》(《연변일보》 해란강 제1533기)이다. 이 두 작품은 주제와 형식에 있어서 매우 깊은 철리와 신선한 표현력을 드러내고있어 나름대로 무언가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1. 허수아비를 거부하다

한겨울에 허수아비를 본적이 있는가.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허허벌판에서 두팔을 하릴것 없이 펼치고 오지 않는 새떼를 향해 두눈을 크게 뜬채 감을줄 모르는 허수아비말이다.

허수아비라고 하면 풍년이 든 가을날 풍경에 적격이겠지만 겨울의 허수아비는 겨울만큼 그 모양이 초라하고 의미조차 건조해져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임에 분명하다. 물론 쓰고나면 버리는 인간의 얄미운 습성으로 허수아비를 측은지심으로 생각해볼수도 있겠지만 허수아비의 의미는 그렇다고 갑자기 숭엄한것으로 승격되지 않는다.

이달에 읽은 구호준의 수필 《겨울, 그리고 허수아비》에서는 그렇게 헛헛한 겨울의 허수아비를 스스로의 허점이나 잘못을 깨닫지 못한채 남을 비방하고 자기의 허물을 덮어감춰 스스로를 과대포장하려는 일부 조선족들의 한국에서의 행태에 빗대고있다.

무조건 좌충우돌해야 자존심을 지킬수 있는듯이 착각하는 삼십대의 윤걸이와 다른 사람들의 솜씨라면 모든것이 눈에 거슬리는 오십대의 이모는 머리속에 든것 없이 먼저 남을 헐뜯는 얄미운 모습임에 틀림없다. 《하루에 세번씩이나 해물파전을 태워서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이모와 《썩은 야채도 아낀다고 주어넣는것은 물론 손님이 많으면 전분이나 참기름을 빼먹는것도 다반수》인 《윤걸이라는 애》는 도무지 제대로 된 교양을 받아보지 못한 무지막지한 존재들이여서 작자의 표현대로라면 《같은 중국에서 왔다는것이 얼굴이 뜨거워》지게 만든다.

사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이모》나 《윤걸이》를 닮은 사람들이 꽤 눈에 띈다. 아직 이곳이 다른 곳보다 상식이나 질서에 대한 인식이 그나마 괜찮다고는 하지만 자기만 옳고 남들은 무조건 아니라는 식의 생각들이 심심찮게 뛰쳐나오기때문이다. 다시 되새겨보면 분명히 틀린것을 기어코 맞다고 우기고 남들의 말과 행동은 어디까지나 눈에 거슬린다는 그 《대단한 족속》들의 행태는 결국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가장 가소로운것들이다. 이는 기본적인 가정교양을 잘하지 못하고 사회인간으로서의 초보적인 수양을 갖추지 못한 또는 별것도 아닌것때문에 자만심에 빠져 타인을 무시하고 스스로를 거물급으로 착각하는 소인배들의 짓거리이다.

그런데 이러한 족속들의 존재는 워낙 청정했던 공간에 제멋대로 연기를 뿜어대는 몰상식한 행위처럼 인간사이와 사회적인 인식의 터를 오염시킨다. 자기 집에서는 애가 아까와서, 마누라가 무서워서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밖에 나와서는 바로 곁에서 기침을 콜록콜록하는 녀성이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나 볶은 료리가 까맣게 탔다고 하자 손님을 《개간나새끼》라고 욕하는 《윤걸이》는 별반 다를바 없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입만 살아있는 그들은 겨울날 텅 비여버린 밭에 홀로 서서 바람에 옷소매를 펄럭이는 허수아비》라고 하면서 《무식하다는것은 결국 머리가 비였다는 의미고 머리가 비여버린 인간은 누군가의 잠간의 필요로 만들어졌다가 겨울이 오면 그대로 버려져야 하는 허수아비와 같은 존재》라고 한 작가의 일갈은 《허수아비는 잠간 참새의 눈속임은 가능하지만 단 한마리의 참새도 잡지 못한다》는 판단과 함께 매우 적절한 비유이자 판정이다.

더우기 허수아비란 워낙 《필요하면 필요한대로 존재하고 버림을 받으면 버림받은대로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존재인데 상기의 사람들은 그런 허수아비보다도 못하다고 하는 작가의 《결론》은 분명히 일반적인 수필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아주 날카롭고 정제된 철리적인 계시가 깃들어있다.

이처럼 구호준의 《겨울, 그리고 허수아비》는 평범한 제목이지만 그속에 같은 조선족으로서의 어쩔수 없는 생활의 고뇌와 아픔과 또 자기반성까지 내재하고있어 재한조선족은 물론 이곳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용하면서도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있어 주목되였다.

2. 탄탄한 매듭을 위해

일년은 365일의 시간과 그에 따른 공간이 만나 어우러져서 만들어진다. 박춘월의 표현은 그 《시간이 /바람의 실오리를 잡아쥐고 /둥그런 매듭을 짓는다》는것이다. 이 작품에서 시간은 로골적으로 표현하다싶이 돼서 그런대로 분명하지만 공간이 불분명한게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사이에서 자유롭게 오간다고 할수 있는 바람이 매듭을 완성하는 매개체로 나타남은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아무튼 산과 들로 나타나는 공간과 그 공간의 미각적 특성인 구수한 향, 그리고 그 공간에서 빚어내는 만물상은 이 시에서 일년이라는 시간만큼이나 스케일이 큰 공간의 내용물을 제시한다 하겠다.

짧은 시속에서 365일의 시간대와 산과 들이라고 하는 추상적이면서도 거대한 공간을 만나게 하고 이들을 버무려서 《매듭》이라고 하는 일년의 결과적인 의미를 추출하는데는 매우 신선한 시적인 발상이 바탕으로 작용했다.

시에서의 시간과 공간은 반드시 나란히 등장해야 하는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가 아무 연고 없이 생략되여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공간의 측면이 불분명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시간과 공간의 의미와 기능을 어느 정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일년이라는 단계적이면서도 총체적인 흐름속에 잘 뒤섞어서 삶의 의미를 진행형으로 보여주고저 한것은 긍정할바이다.

일년이란 시간은 인생이란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면 어느 한 짧은 단계에 속하지만 또 사계절을 통해 인생의 전반 과정을 압축해보여주는 때이기도 하다는 점에서는 인생의 총체적인 흐름을 암시하기도 한다. 봄에서 출발하여 겨울에 일년의 모든 과정을 총화해보는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바람직한것이다.

지나온 일년이 의미있고 보람있을 때 《매듭에서 다시/거세찬 바람이 뿜겨져나오고/너와 나 바람에 말려들어/오만가지 색실로 뽑혀져나오기/ 직전》을 맞보게 될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일년의 마지막 날》은 통상적인 표현 그대로를 적용한다면 《알찬 결과요, 의미있는 시작》이 될것이다.

/김경훈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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