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들, 한해 20억불씩 외국 시민권 확보에 투자
- 몰타-호주 등 경쟁도 치열..불평등-재산은닉 등 악용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전세계 고액 자산가들이 주식과 부동산, 예술작품 등에 이어 이번에는 다른 나라 여권과 비자(Visa), 시민권 등을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정책이나 자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에 자신의 부(富)를 지키기 위해 언제든 해외로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신문에서 경제 전문가들의 추정치를 인용, 전세계 부자들이 이처럼 외국 시민권을 확보하기 위해 한 해 평균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씩을 투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경제정책이 쉽게 변하고 경제상황도 급변하는 경향이 강한 중국과 러시아, 중동 등 신흥국 부자들 사이에서 유럽과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시민권을 얻으려는 수요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 사이에서 종전보다 더 일찍 시민권이나 여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VIP용 비자제도를 내놓으며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런 수요를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미 작년부터 호주와 캐나다, 영국, 일부 유럽연합(EU) 국가들은 `골든 비자`라는 이름으로 자국내 투자기준을 높이는 대신 더 빨리 시민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EU 소속으로 이탈리아 남부 지중해에 있는 작은 섬나라인 몰타로, 이들은 65만유로(약 8억9000만원)에 42만5000명의 외국인들에게 자국내 거주하지 않고도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대신 부동산에 35만유로, 국채에 15만유로 이상을 투자하도록 강제했다. 200명 이상이 이를 신청해 2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호주도 최근 프리미엄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위 `플래티넘 비자` 제도를 내놓았다. 기존 `골든 비자`보다 상위 개념으로, 500만호주달러(약 45억6500만원) 이상을 4년간 투자하면 시민권을 부여한다. 현재 436명이 이 혜택을 받았고 이들은 20억호주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영국의 시민권 자문기관인 헨리앤파트너스의 크리스티안 H. 캘린 회장은 “경제가 불안한 국가에 있는 부자들은 보다 안정된 국가를 또 하나의 옵션으로 가지고 싶어 한다”며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재산은 어떤 경제상황에서도 안전할 수 있도록 충분히 다변화해 투자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거주지를 다변화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같은 선진국들의 제도가 이민과 관련된 불평등을 야기하는 한편 부정부패나 불법 행위로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에게 재산 은닉처를 제공하는 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이민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데이빗 멧캘프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는 “이런 제도들이 러시아와 중국 등지에 있는 신흥 갑부들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고 있다”며 “이렇다보니 그외 다른 일반인들은 이런 혜택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에도 EU집행위원회 사법담당 부집행위원회인 비비안 레딩도 “시민권은 매매의 대상이 돼선 안된다”며 이같은 제도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정훈 (future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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