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엄동진]

1996년 12월, 한 여고생 가수가 가요 프로그램 무대에 올랐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젖살이 빠지지 않은 통통한 얼굴의 풋풋한 여고생. 등장 만으로도 많은 남고생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싱그러웠다. "잠못 이룬 새벽, 난 꿈을 꾸고 있어"라고 시작하는 가창엔 외모완 다른 '반전 매력'까지 더해졌다. 기성 가수 만큼이나, 무르익어 있었다. 그해 데뷔곡 '애송이의 사랑'으로 82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양파(이은진)의 센세이셔널한 데뷔였다.

성공을 위한 모든 조건이 완벽해 보였다. 노래 실력이 있었고, 가요계 선배들도 양파의 음악성을 주목했다. 말을 조리있게 잘했고, 학교에선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찬란하게 빛날것 같던 양파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해 빛이 바랬다. 1999년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이후 8년여간 그녀의 소식은 거의 들을 수 없었다. 2007년 '사랑, 그게 뭔데'를 차트 1위에 올려놓으며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이후엔 소속사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2012년 다비치·티아라 등 후배들과 함께한 '투게더' 앨범을 끝으로 다시 한 번 긴 침묵을 지켰다.

대중에게 잊혀져갈 즈음, 양파는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전했다. MBC '나는 가수다3'에 출연한다는 뉴스. 아직 소속사에 정착도 못한 가수로서는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유리멘탈'이라고 알려진 터라, 피도 눈물도 없는 서바이벌 경연 참가는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양파는 지금 1996년 여고생 시절처럼,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녀의 다음 선택은 20년 전과 어떻게 다를까. 그녀를 만나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과거 얘기를 해볼게요. '애송이의 사랑'으로 한창 사랑을 받은 직후였죠. 1999년에 미국 유학을 간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제가 그래요.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속으로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거든요. 그 때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어요. 소속사랑 분쟁이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 일을 해나가는 거 자체가 힘들었어요. 대학교 재수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자신도 없었고요. 근데 국내에 버클리 장학생 선발 오디션이 있었던 거예요. 제 어릴 적 꿈이 외교관이라서 외국 생활에 대한 로망도 있었고요. 공짜로 나갈 수 있다고 하니 놓칠 수 없는 기회였죠. 소속사에서는 당연히 펄쩍 뛰었어요. 그래도 미국에서라도 대학교는 가야 한다고 겨우 설득했죠. 미국에서는 정말 행복했어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 같아요."

-미국에 가지 않았다면, 가수로 더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요.

"사람들이 그랬어요. ‘지금 가면 네가 누린 모든 것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요. 근데 전 터지기 일보직전이었어요. '애송이의 사랑'으로 사랑을 받아도 그 주체가 제가 아닌 거 같았고요. 너무 어려서 유명해진다고 행복하지 않았어요. 심지어는 이 직업이 맞지 않다고도 생각했어요. 누가 절 알아보는 것도 싫었을 때에요."

-요즘 기사에도 '양파는 유리멘탈이다'라는 댓글이 달려요.

"제 히스토리를 돌아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근데 그 '유리멘탈'은 제가 어떻게 할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자주 활동을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지만, 제가 그런 사람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거 같아요. 부끄럽지는 않아요."

-과거에 수능을 보다 쓰러진 사건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더 증폭됐죠.

"고3 때 모의고사를 보면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당연히 시험날은 아침마다 난리가 났었고요. 수능 당일 날도 식은땀을 흘리고, 눈물까지 흘리는데 다른 학생들은 저 때문에 시험에 방해된다고 난리가 났어요. 당연히 그럴 수 밖에요. 그 상황이 미안하고 야속하기도 하고 그랬죠."

-왜 그렇게 공부에 집착했나요. 음악적 소질이 있는데.

"전 제가 어렸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이 안나요.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나 분노가 많았다는 걸 제외하면요. 그리고 전 그걸 공부로 푼 거 같아요. 음악을 듣고 공부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가수로 성공한 거예요. 건방지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음악 공부란 걸 해본적도 없었는데요. 그래서 더 방황했던 거 같아요. 예전엔 사람들이 제게 물어봤었어요. 다 가진 거 같은데 왜 공허해하고 도망치고 싶어하냐고요."

-이제는 그런 과거의 양파에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하나요.

"예전에 제게 '양사장, 양사장'하는 오빠가 있었어요. 제가 노래를 하는 건 취미생활이라나요. 근데 전 음악을 잘 못하고 힘이 드니까 다른 걸 찾았던 거예요. 그 땐 다른걸 도전할 수 있는 나이였잖아요. 근데 지금은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아요. 그리고 '나가수'를 하면서 스스로 느낀게 있어요. '내가 이렇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나'라고요. 그러면서 과거를 떠올려보니, 제 삶은 항상 가수를 하는데 집중돼 있더라고요."

-스캔들이 한 번도 없었어요.

"연애는 했죠. 근데 결혼까지는 아직 수양이 더 필요한거 같아요. 하하. 제가 일을 시작하면 두 가지를 한번에 못하는 스타일이라, 힘든거 같아요. 스캔들은 나올 수가 없었죠. 제가 워낙 유명인은 잘 안만나거든요. 연예인 친구도 잘 없고요. 그래서 그런거 같아요."

-새 앨범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작업은 계속하고 있어요. 회사를 빨리 찾아서 같이 해나가야 할 거 같아요. 상반기엔 새 앨범이 나왔으면 해요. 잘 되지 안 더라도, 뭔 갈 하다보면 상황은 조금씩이라도 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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