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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의학교육 선구자-로기순 박사를 아는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2.04.13일 14:37

로기순 생전 사진

(흑룡강신문=지린성)윤운걸 특파원=지금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중국조선족 의학교육의 선구자인 로기순 박사를 아는가고 물어보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70-80세되는 세대는 로기순 박사라하게 되면 거의 다 알고 있다.

  이런 실정에서 윤종주(연변대학의학원 생물화학교수) 교수는 우리민족의 우수한 의학교육 선구자인 로기순 박사를 자라나는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몇 십여년간의 자료고증을 거쳐 마침내 그가 주필(부주필 김청송, 편집위원에 윤종주, 김동순, 김청송, 한미자, 강순구, 채정덕)을 맡고 "중국조선족의학교육선구자-로기순(중문)"이라는 저서를 펴내 중국조선족의학교육역사자료에서의 공백을 메웠다.

  1932년 1월에 일본규수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를 받은 로기순 씨의 생애기록은 제2차세계대전과 중국의 문화대혁명 등 동란시대를 겪으면서 참고할 가치가 있는 자료들이 거의 없었고 지어는 그의 박사학위논문과 박사학위증서도 모두 분실되었던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 대비해 윤종주 교수는 우리세대에 로기순 박사의 행적을 추적해 사료로 적어놓지 않으면 영원히 역사속에 사라질 것이라는 사명감으로 몇 십년간 심열을 기울여 오늘 완전하게 그의 역사가 책으로 엮어졌던 것이다.

  아래에 윤종주 교수가 추적한 로기순 박사의 프로필을 살펴보자.

  로기순 씨는 1893년도에 지린성 도문시에서 출생, 1917년5월에 일본규수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 선후로 조선 경성(오늘의 서울)총독부병원 소아과 의사, 경성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소아과 강사, 부교수.

  1929년 8월, 로기순 씨는 일본규수제국대학의학부 연구생과 의학화학 연구생으로 입학, 일본의 저명한 생물화학자 교수의 지도하에 박사과정을 수료 1932년 1월19일에 의학박사학위를 취득.

  1932년1월 하순부터 로기순 씨는 선후로 조선 목포, 부산, 황해도 등지에서 의료에 종사. 1937년7월 중국 목단강시에 와서 목단강시국제병원에서 의사로 근무, 1942년도에 지린성 도문으로 이주해 1946년 9월까지 도문시공립병원 원장으로 근무. 도문에서 근무하는 기간 즉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선후로 위간도성의학회 부회장, 동만의학회고문 등직을 맡음.

  1946년10월에 로기순 씨는 지린성 용정의과대학 교장, 1947년3월에 동북군정대학 지린분교의학원 부원장 1948년1월 중국의과대학 제1분교 교수, 1948년10월 연변의과전문학교 교장, 그해12월 연변대학준비위원회 위원, 1949년4월 연변대학 설립시 연변대학의학부학 부장.

  로기순 씨는 연변대학의 창시인의 한 사람이자 연변의학원 주요 창시인이기도 하다. 1950년 8월 동북인민정부교육부는 로기순 씨에게 교수학위를 수여했고 1956년에는 대학교 2급교수로 명명했다.

  1957년 6월7일 22시40분, 로기순 박사는 뇌출혈로 6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이상은 윤종주 교수가 고증, 정리한 로기순 박사의 프로필이다.

  로기순 박사는 중국조선족의학교육의 창시인이자 또한 신의(神医)로 불리우기에 손색이 없었다.

  김동순(작고)편집위원의 집필에는 이런 한단락이 있다.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1950년의 여름의 어느하루 로기순 박사가 연길시 서시장의 한 거리를 지나다가 채소를 들고 가는 한 임신부를 만났다.로기순 박사는 그 임신부를 불러놓고 태아의 위치가 제대로 되지 못했으니 위험하므로 빨리 병원으로 가라고 하고나서 수첩에서 종이 한장 떼내어 몇글자를 적어 이 쪽지를 가지고 연변병원으로 가라고 했단다. 그 임신부는 그 쪽지를 가지고 인츰 병원 산부인과에 갖더니 산부인과에서는 즉시에 입원시키고 제왕절개수술을 했다. 당시 산부인과 의사는 그 산모에게 운수가 좋아서 로박사를 만났으니 다행이었다고 했단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하루 로박사 집의 문이 급촉하게 노크되었다. 문을 열고 보니 몇사람이 들어왔는데 한 아주머니가 울고있는 아이를 안고 아이를 구해달라고 다급하게 호소했다. 로박사가 자세히 검사해보니 애가 낚시를 입에 물고 장난하다가 넘기는 바람에 낚시가 식도에 걸렸던 것이다. 낚시줄은 계속 드리워 있었다.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병원에 가니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고 했으나 주위에서 로박사에게 보이라고 간곡하게 권고하는 바람에 이렇게 찾아왔다고 했다. 담배한대 피울 시간 사이에 로박사가 갑자기 집사람보고 주산을 가져오라 했다.로박사는 주산을 상모서리에 쳐서 동강이 낸 후 주산알을 한알한알 낚시줄에 꿰였다. 그리고 나서 낚시줄을 높이들고 주산알을 하나하나 아이의 입에 들어가게 하고는 식도로 넘어가게 했다. 그리고는 낚시줄을 천천히 당겼더니 낚시가 빠져나왔던 것이다.

  이렇게 로기순 박사는 저명한 의학교육자이자 신의로 불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로박사의 딸 로주자 씨도 아버지의 의지를 받아 의학원에서 공부했다.연변의학원 해부학 최상윤교수가 회고한데 의하면 1957년도에 로박사가 사망한 뒤 로주자 씨는 아버지가 반혁명우파집단으로 몰리는 바람에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늘 받게 되었고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했단다.1960년도에 연변의학원을 졸업한 딸 로주자 씨는 어머니를 따라 1963년도에 일본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윤종주 교수가 집필한 이 책은 제1장 로기순교수의 생전 개론, 제2장 의학고봉에 오르는 과정, 제3장 저명한 생물화학자-로기순, 제4장 저명한 조선족의학교육자-로기순, 제5장 저명한 조선족의학자-로기순, 제6장 로기순 교수의 서거 및 잊을 수 없는 로박사, 제7장 부록으로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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