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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 천북 광선촌을 다녀오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4.17일 07:23
기획-조선족농촌에 가보다

광선촌의 왕리샤(중간)서기와 최종명(오른쪽 첫번째)씨 등을 만나다


4월초순 기자와 이도소학교 문창호교장 일행은 교하 광선촌을 찾아 떠났다. 문창호교장의 고향이 교하 천북인데 마침 동네 뉘집에 생일잔치가 있다는 기별을 받은터여서 겸사겸사 이렇게 어설픈 초봄의 황사날씨를 무릅쓰고 떠나게 된것이다. 길림에서 교하 천북진까지 전문 택시운영을 하는 차를 타게 되면 50여킬로메터의 로정에 일인당 20원,천북진에서 다시 차를 갈아타야는데 광선촌까지는 15리길에 택시값이 15원이다.


길림에서 8시에 출발해 광선촌에 도착한 시간은 10시가 좀 넘었다. 바로 광선촌의 왕리샤촌장 겸 촌서기 집으로 직행을 했다. 미리 전화로 련락을 해놓은터여서 집에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는 왕서기, 재작년에 인터뷰차 처음 만났고 2년만에 다시 보는데 여전한 모습이다. 50대 나이로 기억나는데(실제로 50대로 보인다) 금년에 65세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22살때 광선촌 조선족가정으로 시집을 와서 조선족가문의 며느리가 된 왕리샤서기, 비단 조선족가문의 훌륭한 며느리로 손색이 없었을뿐더러1998년 길림성 제9기 인민대표의 영광까지 지녔었다. 그런 그가 65세의 나이에 지금은 광선촌의 촌주임 촌서기로 련임을 해 마을일에 전력을 다하고있다.


우리는 왕리샤서기로부터 마을의 현황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았다.


광선촌은 현재 호적상 79세대에 389명, 실제 거주호수는 22가구에 70명 좌우다. 토지면적은 84쌍이며 농사를 짓는 조선족호수는 단 한집인데 차례진 면적은 2쌍 정도.

그외의 토지는 주변 한족들에게 양도해 농사를 짓고있는데 임대료는 2011년에 400원에서 600원 사이다.워낙 산간지대여서 과거에는 타지역보다 산량이 적어 한쌍에 1만 3000근 정도 났으나 지금은 한쌍에 1만 7000근 소출을 올리고있다.


토지양도로 인한 분규는 가끔 발생하고있지만 즉시적으로 촌지도부에서 나서 원만한 해결을 보고있으며 대다수가 개인적으로 토지를 양도했기에 촌지도부에서 토지양도상황 명세를 작성해 100%상황을 장악하고있다지만 관리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다.수리비,관리비,공동인력출공 등 일에 부딪칠 때마다 일일이 통지를 하는데만 며칠에 전화료금이 100원씩 달아날 정도로 웬간히 신경이 쓰인다는 왕서기의 고충이다.


마을의 어르신으로부터 마을 력사얘기를 들어보기로 해서 최종명씨를 모셔왔다. 76세의 나이에도 씨엉씨엉한 걸음걸이의 최종명씨,시내에 있는 자식들이 겨울나이하시라고 시내로 모셔도 광선촌 산골만을 고집하고있다며 나이들어갈수록 산좋고 물좋고 공기 맑은 이고장만큼 편한 곳은 없다며 최고라며 말씀하신다. 그래서 여기 사시는 여러분들은 모두 한결같이 혈색이 건강하시나보구나, 젊으시구나 라고 나는 속으로 궁냥을 해보았다.

동네에서 최대장, 최회장 등 호칭이 붙은 최종명씨는 로공산당원으로 현재 이 동네의 력사에 대해 제일 많이 알고있는 사람으로 꼽힌다. 1936년 경상북도 문경태생으로 4살때 가족 다섯식구가 중국 쌍하진으로 넘어왔다. 몇년 지나 한국으로 환향하는 열풍이 일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보따리를 짊어지고 길림역으로 나왔으나 길이 끊기는바람에 천북에 시집간 큰누나를 바라보고 가족들은 천북으로 들어오게 되였던것이다.그때 최종명씨 나이 7살이였으니 근 70년이란 세월을 이 고장과 함께 한것이다. 천북으로 이사할 당시는 광선촌은 순 조선족부락으로 호수가 200여세대가 넘었지만 또 그 이후 천북에 한국 고향으로 환향하는 늦바람이 일면서 사람들이 많이 떴다. 한국으로 환향한 사람은 하고 한국 고향으로 못 돌아간 사람들도 강밀봉 등지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60여세대만 남았다.


광선촌은 조선족들이 모여 살면서 최초에는 신팡자라고 불리웠고 또 이후에는 싸하자라고 불리웠으며 인민공사 설립이후 광선촌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신팡즈시기에 원시림에 둘러싸인 동네는 흙을 져다지은 어설픈 초가집이 줄줄이 붙어 늘어선 꼴이였는데 동네전체를 흙담벽으로 마치 성새처럼 둘러놓았었다고 한다. 그땐 마차길도 없었던 동네였다.


주변이 산이고 큰강, 작은 강으로 불리우는 맑은 강이 마을을 흘러지나는 광선촌, 이곳에 첫호로 보따리를 지고온 사람은 권중명가족이라고 하는데 권중명은 기골이 장대한 8척사나이로 워낙 기운이 세 현지인들이 업수이보고 함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보따리를 풀어 논을 개간하면서 조선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종명씨가 10살때 학교가 생겨나 소학교 1학년에 입학을 했는데 그때 1학년에 열몇살짜리 1학년생도 있는가 하면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애들도 꽤 되였다.


천북 광선소학교의 창시자는 일본 도꾜에 류학을 다녀왔다는 림선생부부였다. 소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강밀봉중학교, 교하조중으로 진학들을 했다.


광선촌은 대학생마을로 불리울 정도로 대학생이 많을 때는 1년에 6명, 7명씩 나왔으며 할빈공대, 청화대 등 명문학교 대학생이 나와 온 동네가 떠들썩했음은 물론 조선신문에 기사가 실리기까지 했다.


광선촌마을의 전통중 하나가 집집마다 책장을 갖춰놓고 책읽기가 취미였다고 한다. 이번에 나와 동행을 한 문창호교장의 형인 고 문창남씨, 조선족문단의 유명한 인재로 력사에 길이 남을 문창남작가를 키워준 고장도 바로 광선촌이다. 문창호일가가 길림시에서 광선촌으로 하방되면서 문창호의 부친은 학교서 교편을 잡았고 가족들에겐 광선촌이 고향으로 자리잡게 되였던것이다.


중국의 여느 조선족동네가 그러하듯이 학교 운동장에서, 마을에서 떠들썩하던 애들은 종적을 감추고, 생기 넘치던 마을도 고요만 해졌다. 학교는 언녕 페교되였고 빈집들도 늘어만 간다.


최씨가 제1임 로인회장을 맡을 당시는 로인협회가 42명이였는데 지금은 12명, 학령전 애도 단 한명만 있을뿐 갓난아기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어볼수도 없다.


작년에 천북진의 상급부문에서 한족툰인 광명촌과의 합병을 제의했는데 왕리샤서기와 마을사람들 모두가 반대의견을 견결히 태도표명함으로써 광선촌으로 살아남기에 또 한고비 넘겼다.

인적없던 산골에서 조선족동네로 흥성과 번영을 거쳐온 광선촌, 선조들이 이룬 논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촌지도부와 동네를 지키고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광선촌은 아직 살아있다.

차영준씨의 생일상앞에 둘러앉은 동네분들

동구밖까지 배웅에 나선 동네분들 정이 듬뿍

동네 문구장너머로 페허가 된 소학교건물이 보인다

편집/기자: [ 차영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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