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패션왕'이 예능프로그램 못지 않은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1회부터 '막장'의 냄새를 솔솔 풍기던 '패션왕'이 이제 개그프로그램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코믹한 장면들로 시청자들을 웃기고 있다. 주인공들은 심각하게 화를 내고 눈물을 흘리지만 시청자들은 그저 웃을 수 밖에 없다.
지난 17일 방송된 '패션왕' 10회에서는 4각 러브라인의 심화된 감정을 계속하여 보여주었다. 강영걸(유아인 분)에게 기습적으로 키스를 하며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이가영(신세경 분)과 이를 적당히 이용하면서 은근히 마음을 주고 또 상처를 주는 강영걸, 가영을 좋아하는 감정을 사방에 드러내고 다니면서도 최안나(권유리 분)를 놓지 못하는 정재혁(이제훈 분) 그리고 영걸과 재혁 사이를 오가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보이고 있는 최안나까지, 4명의 캐릭터가 각각의 개성의 정점을 찍었다.
↑ 사진: 방송캡처
상황도 심각하다.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에게 인정받아 소규모나마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영걸을 잡기 위한 재혁과 가영의 원수인 조마담의 물밑 대결에서 조마담을 싫어하는 가영은 영걸에게 재혁과 손을 잡으라 말하고 영걸은 자신의 원수인 재혁과는 손을 잡지 않겠다 말한다. 영걸이 주장하는 '영원한 원수는 없다'는 비즈니스 세계가 애정전선과 교묘하게 뒤섞여 거의 파국에 가까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캐릭터와 상황만 보면 복잡미묘하고 매우 심각하여 감정소모가 심한 멜로드라마여야 하지만 실상은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없는 색다른 코믹요소가 넘쳐난다. 개봉중인 영화 '언터쳐블'의 결말을 일부 유출하면서까지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좋아하는 여자가 보쌈을 먹고 싶다 말해도 횟집으로 데려가서 웃고 있는 정재혁의 모습은 '혼자' 심각할 뿐, 보는 사람의 실소를 자아낸다. 가영이 골라주는 옷을 입고 좋다고 미소 짓는 허술한 매력이 있기에 허세를 부려도 귀엽게 봐줄 수 있으나, 웃기긴 웃기다.
영걸은 이와는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낸다. "사장님한테 이러면 안돼!"라며 기습 키스하던 가영을 제지하던 영걸은 시도 때도 없이 가영의 손을 잡더니 노래방에서는 가영을 껴안기까지 한다. 그러고는 가영의 손을 놓고 "네가 내 마누라야?"라는 폭언을 던진 뒤 안나와 함께 사라진다. 영걸이 자기 마음을 몰라서 못난 행동을 한다고? 글쎄, 10회 내내 못난 짓만 하고 있는 영걸에게서 그 감정을 읽어내기란 참으로 힘들다. 이러한 영걸의 감정선을 보고 있자면 절로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코미디'의 대미를 장식한 장면은 10회의 마지막 3분이다. 조금 전까지 영걸에게 배신감을 느껴 눈물을 흘리고 있던 가영은 재혁이 시킨다고 냉큼 영걸에게 전화를 걸고, 재혁은 소주와 라면을 힐끔거리고는 벌컥 들이키다 결국 이를 엎어버리며, 조금 전까지 "네가 뭔 상관이야"라고 하던 영걸이 나타나 "우리 여직원한테 개수작 부리지마"란다. 웬만한 '막장'드라마에서도 보기 드문 삼각로맨스 당사자들의 대면이 자꾸 이런 형태로 비쳐지니 웃지 않을 수 없다. 설마 소주와 라면, 휴대폰 간접광고인가 싶을 정도이다.
나름 점층적으로 깊어지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 각 인물들의 감정선을 예능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들이 속출하자 시청자들은 웃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다. 스토리의 부재와 억지스러운 전개, 과다한 상황 설정 등으로 치명적인 멜로는 자취를 감추었다. '패션왕'이 노리는 극적 카타르시스가 이런 '막장'이 주는 즐거움이었을까. '패션왕'의 의도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