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ws24 오미정 기자] '배우 A, 드라마 B 출연 물망'
'배우 C, 영화 D 결국 출연 불발'
'배우 E, 드라마 F 최종 고사'
'배우 G, 영화 H 제안 받고 검토 중'
연예 기사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캐스팅 관련 기사들입니다. 어떤 배우가 어떤 드라마, 혹은 영화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거나, 출연 검토 중이라는 기사. 정말 자주, 쉽게 볼 수 있는 기사죠.
그런데 독자들이 쉽게, 자주 볼 수 있는 이 기사가 제작진에게는 다른 캐스팅의 발목을 잡는, 곤란하기 짝이 없는 정보들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물망 단계에 있는 배우들이 알려졌다가 최종 출연이 불발되면, 다른 캐스팅에도 줄줄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송 제작진들에게 있어 '캐스팅'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캐스팅 순서와 배우의 급, 예의와 범절이 조화를 이뤄야만 하는 예민한 작업이죠.
주연배우가 먼저 확정이 된 후 조연배우가 캐스팅 되어야 하고, 주연 배우가 2~3명일 경우 '주연배우진'들 사이의 '급'도 맞아야 합니다. 주연배우들의 급에 맞게 조연배우진들이 꾸려집니다. 또 한 배우에게 제안을 한 상황에서는 일단 답을 기다려야합니다. 답이 늦게 온다고 다른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건낼 수는 없습니다. 먼저 제안을 한 배우가 출연을 OK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콘텐츠 제작진의 마음을 잘 아는 배우들은 최대한 빨리 답을 주려고 노력을 합니다. 자신이 못하면 다른 배우라도 빨리 섭외할 수 있도록 제작진을 배려하는 것이죠. 이 복잡하고도 예민한 일련의 과정에서 한 단계라도 삐끗하면 캐스팅 작업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캐스팅에 있어 배우들에게 다른 배우가 고사한 배역에 들어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일단 그 배우 다음으로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배우로서는 다소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행여 영화의 흥행이 잘 안되거나 드라마의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은 경우에는 괜히 '전에 그 배우가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말도 안되는 비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배우가 출연 제안을 받았다가 고사했다는 기사는 제작진에게도, 배우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일 때문에 캐스팅이 무산되거나 무산될 뻔한 일은 많습니다. 드라마 '치즈 인더 트랩'의 여주인공 캐스팅도 이런 예에 속합니다. 당초 여주인공 배역에 수지가 물망에 올랐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결국 수지는 이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떤 여배우가 들어가도 '수지 대신'이라는 말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자리. 물망에 올랐던 또다른 배우 김고은은 결국 드라마 출연을 고사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제작진의 설득에 김고은이 마음을 돌려 최종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치즈 인더 트랩'은 원작 웹툰의 팬덤도 워낙 강한 작품입니다. 김고은은 웹툰 팬들에게 캐스팅이 이루어지지도 않은 수지와 비교를 당해야 했습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죠.
이 드라마 한 관계자는 "애초에 수지와 김고은을 함께 염두에 뒀었다. 김고은이 수지 대신 캐스팅 된 게 아닌데, 수지가 물망에 올랐다가 고사했다는 보도 때문에 김고은이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고 수지의 캐스팅 불발 보도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tvN '응답하라 1988'도 캐스팅 확정전 수많은 '물망' 기사로 제작진이 어려움을 겪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한그루, 이이경 등 배우가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은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습니다. 이이경은 이 드라마 캐스팅 진행 당시 오디션을 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디션을 본 것으로 '응답하라 1988'과 이이경을 연관짓기에는 오디션을 본 배우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20대 신인급 남녀배우, 연기를 하고자 하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 가운데 이 드라마 오디션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연예인들이 오디션을 봤다"면서 "이 때문에 오디션을 본 사실 자체는 기사로서의 가치가 적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드라마 관계자는 "배우들이 역할도 모르고 제작진과 미팅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미팅 한 번만 하면 기사가 난다. 관심은 감사하지만 조금만 지켜봐줬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작품이 아니라 배우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확정되지 않은 캐스팅 기사는 부담스럽습니다. 남자 배우 가운데 현재 가장 핫한 배우인 김우빈은 여러 작품에서 '물망에 오른 배우'로 거론이 됩니다. 드라마 '맨도롱또똣'을 비롯, 김우빈이 물망에 올랐다가 캐스팅이 되지 않은 작품은 여럿입니다. 그런데 그도 그럴것이, 그 나이의 남자배우가 필요한 작품이면 모든 제작자들이 김우빈을 제일 먼저 떠올립니다. 김우빈에게 영화 시나리오와 드라마 대본이 몰리고 있음은 당연합니다. 이 때문에 김우빈에게 어떤 역할을 제안했다는 말은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정우 역시 비슷합니다. 영화계에서 특히 그의 입지가 독보적이죠. 과장을 조금 더해 '모든 영화의 캐스팅 1순위는 하정우'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일단 캐스팅 1순위를 하정우로 놓고 하정우가 고사하면 2순위, 3순위로 내려간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캐스팅은 섬세하고 예민한 작업입니다. PD나 감독 등 콘텐츠 제작자들은 연예인들의 자존감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본인이 원하는 최고의 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입니다.
캐스팅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들 합니다.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제작진들의 노고를 이해한다면, 그리고 그 노고의 결실인 콘텐츠를 우리가 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캐스팅 물망'보다는 '캐스팅 확정' 소식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미정 기자 omj0206@enews24.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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