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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에요' - 존재기록조차 없는 12살 무국적 소년의 절망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5.09.12일 00:40
▲불법체류자였던 중국인 부모는

진호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주민등록번호 없이 12년째다.

보험 적용 못 받는 진료비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갈 수가 없다.

휴대폰도 어른 요금제로 써야 하고

청소년 교통카드도 쓸 수 없다.

엄마는 중국으로 추방됐고

아빠는 수감 중이다.

새엄마가 입양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이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어렵다.

“내 이름으로 된 것을 갖는 것”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진호의 소망이다.

경기도에 사는 12살 진호(가명)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다. 학교에서 가끔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는 문서 같은 것을 받을 때면 앞자리는 생년월일, 뒷자리는 ‘○’이 일곱개 채워진 임시 번호가 적혀 있다. 이상한 주민등록번호를 친구들이 볼까봐 진호는 늘 마음이 불안하다.

학교에서 예방접종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따로 돈을 내야 한다. 올해 초 급성 장염으로 대학병원 응급실 신세를 졌던 진호는 청구된 진료비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간단한 검사와 함께 수액을 맞고 약 처방을 받았을 뿐인데 진료비가 엄청났다. 그 뒤로 진호는 약간이라도 아픈 것 같으면 약부터 먹는다.

진호는 불법체류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무국적 이주아동’이다. 중국인인 부모는 돈을 벌러 한국에 들어왔다가 진호를 낳았는데, 불법체류 사실을 들킬까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진호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신분이 됐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진호의 친모는 몇년 전 불법체류 사실이 적발돼 중국으로 추방됐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홀로 진호를 키우던 중국인 아버지 김모씨(43)는 2013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중국동포 출신 오모씨(48)와 1년여 연애 끝에 살림을 합치고 지난 3월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김씨는 현재 ‘위명(가짜) 여권 사용’ 혐의로 적발돼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수감돼 있다. 김씨 여권의 생년월일이 당국의 착오로 실제와 다르게 기재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홀로 진호를 보살피고 있는 새엄마 오씨는 진호의 ‘입양’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9일 경향신문은 무국적 이주아동인 진호와 진호의 보호자 오씨를 만났다. 이제 한국인이 된 오씨는 “진호에게 한국 국적을 주고 정말 친아들처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오래전 아들을 중국에 두고 한국에 돈을 벌러 온 경험이 있는 오씨는 진호가 마치 자기 아들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적이 없는 것은 물론, 출생신고조차 안된 진호에 대한 입양절차를 밟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진호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서류는 동네 병원에서 받은 ‘출생증명서’가 전부다. 다행히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가 진호의 사연을 접하고 입양 문제를 도와주겠다고 나섰지만, 무국적 이주아동에 대해 입양허가가 내려진 선례가 없다. 소 변호사는 곧 법원에 진호에 대한 입양허가신청을 할 계획이다.

한창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때 홀로 남겨진 진호는 오씨를 친엄마처럼 따랐다. 인터뷰 내내 오씨 옆에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진호는 마음의 상처가 많았다. 오씨가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진호를 데리고 지역상담센터를 찾았을 때, 상담사가 진호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자 진호는 큰 도화지에 개미만 한 크기의 그림을 그렸다. 상담사는 진호에게 ‘사랑과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호도 자신이 무국적자인 것을 알고 있다. 어릴 때 진호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전화통화 내용을 들었고, 집에 쌓인 각종 서류들을 보고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오씨는 진호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직접 했던 말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전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에요.” 진호는 인터뷰 내내 “내 이름으로 된 뭔가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진호는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내 신분이 없으니까 휴대폰도 내 이름으로 못 만들고 어린이 요금제를 쓸 수도 없어서 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비밀이 많은 진호는 친구가 별로 없다. 진호는 “집의 사정이 있으니까 모든 걸 다 공개할 순 없다”면서 “친구가 있긴 해도 집에 데려오거나 그럴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진호는 “친구를 집에 데려와 같이 자기도 하고 근처에 자전거 타고 놀러도 가고 싶다”면서 “친구 집에 생일파티가 있으면 같이 가고 싶다”고 말했다. 진호는 가장 아찔했던 순간으로 짝꿍이 진호의 임시 주민등록번호를 보고 담임 선생님에게 ‘왜 진호는 주민등록번호가 이상하냐’고 물어봤을 때를 꼽았다. 진호는 “친구들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부모도 외국인이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애라고 놀릴까봐 무섭다”고 말했다.

진호는 심심할 땐 인터넷TV를 보면서 ‘실시간 댓글’을 달거나 온라인 게임을 한다. 진호는 “가상이긴 해도 게임을 하면서 가끔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게 재밌다”면서 “정말 답답할 땐 휴대폰 게임을 하면서 옆에 누가 있는 것처럼 막말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외로울 땐 혼잣말을 한다는 것이다. 옆에서 진호의 말을 듣던 오씨는 “그런 줄도 모르고 왜 어린애가 혼잣말을 하느냐고 꾸지람을 했다”면서 눈물을 쏟았다. 진호의 눈시울도 덩달아 불거졌다.

진호는 버스나 지하철 등 사람이 많은 곳에 혼자 가는 것이 무섭다. 진호는 “제 ‘신분적 한계’가 있어서 친구도 많이 못 사귀어봤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있는 게 좀 익숙지 않고 무섭다”고 말했다. 내년 중학교 입학을 앞둔 진호는 요즘 걱정이 많다. 진호는 “아직까진 어린이로 살고 있는데 내년이면 중학교에 가고, 그럼 청소년 (교통)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신분증이 없으니까 일단 청소년 요금을 못 내고, 현금은 더 비싸게 돈을 내야 해 싫다”고 말했다.

진호는 인터뷰 내내 ‘돈 걱정’을 많이 했다. 오씨가 옆에서 “네가 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렸는데도 습관처럼 돈 이야기를 했다. 진호는 “돈이 없으면 힘들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돈이 많으면 좋겠다”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오씨는 진호를 입양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일로 ‘진호 명의로 된 저금통장’을 꼽았다.

인터뷰 내내 진호가 학교에서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자랑하던 오씨는 “진호를 보면 정말 마음이 짠하다. 난 대학에 못 갔지만 진호는 똑똑해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뒷바라지해서 대학에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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