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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장순애의 비밀의 정원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5.09.22일 11:44
《옛날 부자집에서 녀성을 위해 한곳에 산과 들을 가둬넣은게 바로 정원이죠.》 그녀는 정원의 시원을 이렇게 해석하고있었다.

정원은 정자와 루대, 집의 전후와 좌우가 건물이거나 담에 에둘린 장소를 말하는데 중국 대륙에서 천년을 이어 전승되고있는 독특한 건물양식이다. 선민들이 살고있던 정원은 야속(野俗)의 예술을 한점의 생생한 그림으로 나타내고있다.

《송나라때 전족이 생기면서 정원이 만들어졌다고 해요. 녀성은 전족을 하니까 외출이 불편하겠죠. 그러니까 이 녀성을 위해 부자집에서 뜰에 가짜 산이랑 못이랑 만든거예요. 돌계단은 안방까지 통해있었죠.》

중국의 전통적인 천인합일(天人合一)이나 음양오행, 풍수설의 론리를 떠나 녀인의 전족에서 정원의 시원을 찾은 독특한 주장이였다.

상해 동화대학(東華大學) 장순애교수의 이 특강은 금시 정원의 비사(秘史)로 현장의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나중에 청중들은 그 무슨 팬처럼 강단에 몰려와 장순애에게 문의를 하고 서명을 받는 등 한바탕 법석을 놓았다.

사실상 그녀가 한국으로 출장을 갈 때마다 이와 류사한 진풍경이 자주 펼쳐진다. 복장학과를 설치한 대학교는 그들끼리 특강시간표를 작성하고 그녀를 기다린단다. 복식문화사(服飾文化史)에 대한 그녀의 독특한 견해는 그 자체가 남다른 한부의 《교과서》로 되고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어릴 때 동경하던 《비밀의 정원》에는 복식이 아닌 약초의 향기가 은은히 풍기고있었다.

《그때 엄마가 많이 앓았거든요. 그래서 병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고싶었어요.》

장순애는 6살의 풋풋한 나이에 벌써 책가방을 멨다. 흑룡강성 탕원현의 시골마을에서 인기를 받는 《신동(神童)》이였다. 에피소드라고 할가, 학교에서는 입교를 위해 혼자 찾아온 그녀에게 처음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퇴짜를 놓았다. 나중에 어문교과서를 얼음에 박밀듯 줄줄 내리읽는 그녀에게 손을 들어주었던것이다. 그러고보면 홀어머니의 외동딸 사랑은 각별했던 모양이다. 한창 장난에 빠질 나이의 딸을 불러 짬짬이 글을 배워줬던것이다.

부지중 철부지의 어린 소녀가 글을 랑랑하게 읽는 화상(畵像)을 눈앞에 떠올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골에서는 별로 흔하지 않은 정경이였다. 정말이지 장순애가 엄마를 위해 의사로 되려고 했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리해할 수 있을것 같았다.

그러나 소녀는 결국 의사의 꿈을 접게 된다. 이 《비밀의 정원》은 그녀와 인연이 없었던가보다.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는 어린 소녀를 두고 끝끝내 아버지를 따라 저 세상으로 떠났던것이다.

소녀의 눈물은 일기장의 한줄 또 한줄의 글에 얼룩졌다. 글눈이 일찍 뜬 소녀는 남보다 감수성과 사려가 깊었고 또 들꽃처럼 무더기로 피는 생각은 글의 향기로 남고있었다. 사실상 소녀는 마음속에 문학의 정원을 내밀하게 가꾸고있었다.

그때 그녀는 꽃을 찾는 나비처럼 밤낮으로 책을 탐식하고있었다. 시골에서 만날수 있는 책은 조선글이 있다면 언제인가는 어김없이 그녀의 고사리손에 들렸다.

소녀는 글은 물론이요 학습 능력과 성적이 월등했다. 층계를 오르듯 한 계단씩 밟는 학급의 진도는 더는 성차지 않았다. 드디여 장순애는 고중 때 온 학교를 들썽하게 한 《력사》를 만든다. 고중 1학년에서 고중 3학년으로 월반하고 잇달아 대학에 무난히 입학하는것.

《소설가로 되고싶었어요. 그래서 지망을 조선어학부 하나만 신청했어요.》 장순애는 소녀의 당찬 행동을 그렇게 담담하게 말하고있었다.

16살의 소녀는 그렇게 연변대학의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학교 전체를 아울러 81학번에서 제일 어린 학생이였다. 일부 학우는 그녀보다 여섯살이나 더 많았다. 대학입시제도가 금방 실행된 때라고 하지만 희한한 경우였다.



호남성 뚱족복장문화전에 참가하여 남긴 기념사진

일기장에 적혔던 소녀의 문학꿈은 마침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있었다. 장순애는 늘 학교 도서관의 책의 수풀에 묻혀 그녀만의 행복한 시간을 즐겼다. 종종 수필을 써서 학부의 문예지에 게재하고 자기의 감수를 학우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졸업할 때 장순애는 그녀의 소원대로 신문사에 가기로 예정이 되였다.

그런데 문학의 정원은 기어이 그녀에게 문을 꽁꽁 닫고있었다.

《입사를 이틀 앞두고 졸지에 벼락이 떨어졌지 뭐예요. 신문사의 하나밖에 없는 정원(定員)을 다른 사람이 갖고간거예요.》

신문사 입사를 준비하고있던 장순애는 더는 선택의 시간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부득불 고향 탕원의 중학교에 교원으로 배치되였다. 후날 이런 저런 기회를 타서 전근을 시도했지만, 학교에서는 겨우 붙잡은 이 《봉황》을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장순애는 흑룡강 오지의 시골학교에서 본의 아니게 장장 10년 세월을 보냈다.

도대체 그녀가 들어가서 화초를 가꿀 《비밀의 정원》은 어디에 있을가…

1995년 여름, 장순애는 모교인 연변대학의 연구생시험에 도전한다. 이때도 그녀가 신청한 《고전문학》 학과에는 예정 정원이 1명이였으며 이미 후보자를 내정한 상태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시험장에 《불청객》처럼 문득 얼굴을 내민 그녀가 수석을 차지했던것이다.

어쩌면 문학의 정원은 다시 그녀에게 빗장을 빠끔히 열고있는듯했다.

이변은 졸업을 약 1년 앞두고 또 한 번 나타났다. 중국과 한국, 조선 3국이 연변대학에서 복식(服飾)문화와 관련한 세미나를 열었다. 장순애의 지도교수 채미화가 단체장을 맡은 대학녀성문화단체에서 세미나를 주관했다. 세미나의 도우미를 맡았던 장순애는 그 인연으로 한국 한양대학의 복식문화공부를 제의받는다.

《채미화교수님은 중국에서 녀성박사 1위가 아니예요? 제가 박사가 되더라도 2위밖에 안되거든요.》

지도교수에게 둘린 둘도 없는 광환은 제자에게 하나의 목표를 제시하고있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연변대학은 물론 중국의 여타의 대학에도 복식학은 생소한 학과였다. 다들 의류를 패션이 아닌 맞춤복 정도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래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장순애의 한국행에 반대를 했다. 더구나 장순애는 정판룡부총장이 KBS 동포상을 받아 개설한 장학금을 첫 사람으로 받는 등 성적을 승인 받아 석사를 졸업한후 바로 박사과정을 밟을수 있었다. 한국에 가서 새로운 전공을 선택하여 석사부터 다시 시작한다는게 무모한 도전으로 비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의류학과를 전공하는 조선족이 없다는 사실은 커다란 유혹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복식문화는 녀성으로서 유전적인 친근감이 있었다.



민족복장쇼에서 동인들과 함께

장순애는 석사공부를 반년 앞당겨 끝내고 한국행을 단행한다. 그녀가 마냥 바라던 《비밀의 정원》은 마침내 바다 건너에서 나타나고있었다. 하지만 그 정원의 문은 생각처럼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일단은 강의를 알아듣지 못하겠는거예요. 강의에 외래어를 많이 쓰고있었는데요. 듣고 나면 가사는 날려가고 곡만 귀에 남는것 같았어요. 그리고 미싱(縫紉機)을 만져보지도 못한 저로서는 공업용 미싱으로 옷을 만든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였죠.》

장순애는 공부가 따라가지 못한다는게 스스로 허용이 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거의 과목마다 1등을 했고 공부를 잘하는것으로 소문을 놓던 그녀가 아니던가. 련속 56일 동안 변비가 왔고 하얀 피부가 숯으로 그린듯 새까매졌다.

《낮에는 강의를 듣고 밤에는 스스로 디자인한 옷을 만들어야 했어요. 일주일에 한벌씩 각종 스타일의 옷을 만들어야 했는데요. 공부하는 동안은 정말로 해를 몇번 못 본것 같아요.》

와중에도 장순애는 학부의 과목까지 방청했다. 복식문화사를 투철하게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후날 동화대학 서류보관실 담당자는 그녀의 인사서류를 보고나서 해외파 박사가운데서 이처럼 성적이 좋은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라며 혀를 차더란다.

각설하고 복식학 지도교수는 장순애를 거의 세미나마다 모두 참석시켰다. 소설가를 지망했던 그녀에게 문장력이 있었고 또 문학학과를 전공했던 그녀는 사물을 분석하고 주제를 포착하는 시각이 남달랐다. 그녀는 그림을 전문으로 배운후 복식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배경을 갖고있었다. 뒤이야기이지만 그게 바로 복식학 지도교수가 장순애에게 낙점을 찍고 제자로 받아들인 원인이 아닐지 한다.

장순애가 박사과정을 마칠 무렵 중국에서 청화대학을 비롯하여 여러 대학에서 일제히 요청이 들어왔다. 필경 복식학 박사의 탄생은 중국 대학가의 흔치 않는 뉴스였으며 더구나 한국에서 의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첫 중국인으로서 여러 경로를 통해 파다히 알려지고있었던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정원은 각기 화려한 풍경으로 그에게 유혹을 던지고있었다. 세계 굴지의 대학 청화대학, 복장전문대학인 북경복장대학 그리고 교수직함과 거액의 안치비용을 제공하며 남편의 직장과 자식의 학교문제를 전부 해결하겠다는 대련의 대학…

종국적으로 장순애가 선택한 《정원》은 상해 동화대학이였다. 그녀는 인재영입으로 동화대학에 마침내 깃을 내리게 된다.

동화(東華)대학은 중국방직대학이 전신이며 그 전문성으로 중국 복장부문의 대학에서 첫손에 꼽힌다. 중국 개혁과 개방의 전연에 위치한 학교는 학술적분위기는 물론이요 중국 여러 소수민족의 복식을 연구하는데서 북방에 비해 지리와 인문적 우세를 갖고있었다.

장순애가 그동안 마음에 품고 키워온 꿈을 한껏 펼수 있는 세계였다.

실제로 장순애는 동화대학에 나름대로 화려한 탑을 쌓아올렸다. 그동안 그녀가 담당, 추진한 국가, 기관, 회사의 프로젝트만 해도 20여건 된다. 지난 해 또 국가교육부의 프로젝트에 선정되여 묘족복식에 대한 연구가 현재 진행형이다. 중국 56개 민족의 복식문화는 그녀의 연구방향이다. 그녀는 동화대학교에서 첫 사람으로 상해 《포강(浦江) 인재계획》 프로젝트에 선정되여 얼마전까지 신강을 다녀오면서 5년 동안 실크로드 연선 소수민족복식의 세상에 잠겨있었단다.



해남에서 리족의 복장을 탐구하는 장순애교수

그녀의 톡톡 튀는 발상은 인터뷰 도중에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나타났다. 과연 국가급 프로젝트가 그녀를 선정하는 리유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갈마드는 대목이였다.

《광주가 전국의 의류집산지인데요. 그럴만한 원인이 따로 있는거지요.》

명나라 후기부터 광주에는 수놓이를 하는 남자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수놓이는 녀자들에게는 소일거리나 가사 활동이지만 남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남자들의 수놓이는 사업으로 발전하게 되며 나중에 광주를 의류집산지로 만들게 되였다는것이다.

장순애는 문화와 패션을 접목하고 그녀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재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또 그녀가 나서 자란 정든 그 《정원》에 복선을 묻고있었다.

기실 그녀의 석박사 론문은 모두 중국 조선족복식이 주제였다. 석사론문은 연변 조선족녀성의 복식이였고 박사론문은 흑룡강성 조선족복식이였다. 월경(越境)민족으로 중국이라는 이 다른 환경에서 문화의 변동으로 부터 오는 복식의 변화를 파헤치고있는 연구들이다.

장순애가 현재 박차를 가하고있는 작업도 중국 조선족복식문화사이다.

《어차피 의류학과의 첫 조선족박사로서 의무와 사명으로 생각해요.》

문학사를 전공했던 그녀에게 복식학은 또 다른 하나의 문학사였다. 그래서 테마를 잡고 론문을 쓰는것은 그녀에게 쉬운 일상처럼 되고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복식학과 관련한 론문 50여편을 국내외의 각종 전문 간행물에 실었으며 50여차의 국내외 학술특강을 진행하였다.



패션쇼를 마치고 남긴 기념사진

《의류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면서 해야 하는 복합적인 학문이예요. 시장조사에서부터 소비자 심리연구, 구매행위 분석뿐만아니라 디자인을 하고 원단을 선택하고 생산을 하고 판매까지 이루어져서 소비자들에게 입혀지기까지 미묘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칩니다.》

장순애는 의류학은 리론만 연구하는 학문을 할수 없다고 하면서 리론과 실천을 결합하여 살아있는 패션이 되여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동안 장순애는 브랜드업체의 의뢰를 받아 많은 시장 조사와 연구를 진행했으며 얼마전에는 한국 유명의류업체의 의뢰를 받아 직접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장순애는 《비밀의 정원》에 그녀만의 《화초》를 심고 길러 향기를 풍기고싶다고 말한다.

《문화를 말한다면 복식은 가장 중요한것의 하나죠. 의식주(衣食住)라고 하지 않아요? 인간의 삶에 이처럼 중요한 복식에 저의 꿈이 있다는게 행복해요.》

/중국국제방송국 김호림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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