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준은 열심히 일한다. MBC [그녀는 예뻤다]의 부편집장 지성준은 잡지 폐간을 막기 위해 과로로 쓰러질 만큼 일해야 했고, SBS [따뜻한 말 한마디]의 송민수는 낮에는 청원경찰로 일하고 밤에는 라멘집에서 요리 비법을 전수받았다. tvN [마녀의 연애]의 윤동하는 산타클로스부터 잡지사 어시스턴트, 음식점 아르바이트까지 못하는 일이 없어 ‘알바의 달인’이라 불렸다. 많은 드라마 속 재벌 2세들이 다사다난한 집안사와 타인을 신경 쓸 일이 별로 없던 인생사로 까칠한 성격을 가졌다면, 박서준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직업인으로서 가져야 할 원칙과 신념 때문에 타인에게 까칠했다. 재벌 2세가 자신의 경제적 능력으로 여자를 곤경에서 구해주며 강인한 남성성을 보여줄 때, 박서준은 노동자로서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는 당당함으로 시선을 끈다.
박서준은 “185cm의 큰 키와 긴 팔 다리에 모델 같은 체형임에도 쌍꺼풀 없는 눈 등 외모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tvN [택시])고 말했다. DC인사이드 박서준 갤러리에는 “작품 하면서 돈 벌어봐서 알고 경제적으로 독립했기 때문에 한 푼 한 푼이 얼마나 벌기 힘든지 알아. 그래서 난 바라는 거(생일선물) 하나 없어”라는 글을 썼다. 그만큼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지는 않았고, 돈 버는 것의 힘겨움을 알다 보니 타인의 고단함 또한 이해한다. 박서준이 열심히 일하는 직업인을 연기한다는 것은, 비슷한 처지의 타인을 이해하고 대화한다는 것과 같다. 상대가 괴로워할 때 무슨 일인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난처하게 만드는 대신 식사를 하며 시간을 같이 보내주고([그녀는 예뻤다]), 남편의 외도로 점점 무서운 행동을 하는 누나에게 “누나가 착했던 모습 내가 기억해줄게”([따뜻한 말 한마디])라며 비난 대신 그저 바라봐주는 남자. 그가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쟤네는 바라보고 있을 때 제일 예쁜 아이들이야”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상대가 편안해 하는 거리를 알고, 그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거리를 줄여갈 줄 안다.
그래서 박서준의 드라마 속에서, 그의 앞에 선 여자들은 연애 감정이 있건 없건 못생긴 여자나 주부, 노처녀가 아니라 그냥 여자가 됐다. 14살 연상에 ‘마녀’라 불릴 정도로 일밖에 모르는 여자([마녀의 연애])도, 가정에서 평생 아내와 며느리로 살아온 자신의 누나([따뜻한 말 한마디])도, 사랑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여자([그녀는 예뻤다])도, 심지어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의 천방지축 쌍둥이 동생(MBC [킬미, 힐미])도, 그는 그들에게 무엇이 되라거나 무엇을 하라고 표현하는 대신 이야기를 듣고 말을 할 줄 알았다. 엄청난 부를 가졌지만 내면에 상처가 있는 많은 드라마 주인공들이 자신의 상처를 이해해주기를 바랄 때, 그는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고 소통의 상식적인 선을 지키려 노력한다.
[마녀의 연애]에서 19살 많은 엄정화의 상대역이었을 당시, 그는 “기 센 여자에게 대시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라는 질문에 “겉으로만 보면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그 사람이 궁금하다면 대화를 나눠보면 되는 문제다. 강한 척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여린 구석이 많다. 어쨌든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것 같다”([엘르])라고 답했다. 모두가 외로움과 피로를 갖고 사는 세상에, 박서준은 돈 많고 괴팍한 남자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줄 아는 남자가 필요한 이유를 아는 듯 하다. [그녀는 예뻤다]의 시청률이 첫 회 한 자릿수에서 현재 20% 가까이 오른 데에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박서준의 매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실장님’, ‘본부장님’에 이은 ‘부편집장님’의 등장이라고 할 만큼, 지금 박서준은 드라마 속 멋있는 남자의 판타지를 주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이전과 분명히 다르다. 새로운 주인공의 탄생이다.
글. 이지혜
사진. MBC
아이즈 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