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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연극예술의 제1대 연출 겸 배우 최문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05.19일 10:13
-50여년전 연극초창기 배우 겸 연출(导演)을 추적하여

최문(崔汶 1921— ? )은 중국 조선족연극예술의 제1세대 조선족 연극배우이고 대중속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연극연출이다. 하지만 40년대 중기부터 60년대 중후기의 조선족전업예술단체나 연극에 종사했던 연예인과 예술애호가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금방 떠올릴것이다.


최문은 1921년 ?월에 조선에서 출생하였다. 최문은 어려서부터 춤노래를 즐겼고 류랑극단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보고 또 모방도 잘했다.그는 유년시절부터 마음속에 《예술》의 꿈씨앗을 싹틔웠다.


그러나 당시 일본이 조선을 병탄하고 통치하던 시기라 최문은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들어와 청춘시절에 배우지 못한 지식을 배우기에 열심했다.그러던 최문은 조선의용군에 참가했다. 조선의용군에 선전대가 설립되면서 1946년 2월 그는 조선의용군 제3지대(할빈) 선전대에서 배우로 활약했다.

그는 1948년까지 이 선전대에 있다가 11월 할빈시민족사무국의 문공단과 합병하면서 문공단에서 배우 겸 연출 사업을 시작하였다. 1949년 2월에 이 극단이 주덕해(연변조선족자치주 초대 주장)의 제안으로 연변문공단과 합병되면서 최문은 약 3개월간 연극연출을 담당하였고 6월초 조선으로 나갔다가 다시 1950년 12월 중국에 돌아와 연변문공단에서 약 2년간 연출로 활약하였다.


1952년 8월부터 목단강시 과외극단의 연출로 갔던 그는 1953년 6월 다시 연변으로 돌아와 연길현(현 룡정시) 문공대에서 연출로 사업, 1955년 9 월에 연변조선족자치주 문화처(현 주 문화국)의 지시정신에 따라 당시 연변문공단 연극대와 련합하여 고전명극 《춘향전》 련합공연팀에 가담하였다.


고전명극 《춘향전》에서 최문은 부연출을 맡았다. 김재한연출은 표현력이 강한 그에게 극중의 중요한 배역인 《방자》역을 맡겼다. 하여 최문은 부연출 겸 배우로 조선민족의 《효》를 호소한 명작 《춘향전》에서 마음껏 자신의 재질을 보여 배우들과 사업일군들의 절찬을 받았다.


1955년 10월부터 연길 연신극장에서 7막으로 된 고전명극 《춘향전》이 첫 막을 열었다. 1회, 2회, 3회… 관중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련속 이어지는 공연으로 하여 공연단은 희열로 들끓었다. 당시 《춘향전》에 참가한 배우들 뿐만 아니라 로일대 예술가들은 최문의 역에 대해 아주 높이 평가했다. 유머감이 넘치는 그의 대사와 익살들은 그렇게도 자연스러웠고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고전명작 《춘향전》의 성공은 연변연극단의 단독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당시 주 문화처의 종합적인 고찰과 시험을 거쳐 연극단 설립의 필요성이 정부에 제안되였다. 자치주정부는 성 문화처, 중앙문화부의 비준을 걸쳐 1956년 1월 31일,연변연극단을 정식 설립하였다.


최문은 이때로부터 연출직에 전문 종사하였다. 그해 《춘향전》 은 중앙문화부(현 중국문화부)의 초청으로 해방후 처음으로 열린 《전국예술절》에 참가하게 되였다. 이는 소수민족에 대한 당의 배려였고 조선말로 된 연극도 불러준것은 소수민족에 대한 존중이였다. 최문을 비롯한 배우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기쁨을 한가슴 안고 수도 북경으로 떠나게 되였다.


공연단은 1956년 3 월 19일부터 4월 8일까지 중앙문화부 《전국연극콩클》에 참가하였다.고전명극 《춘향전》은 중앙문화부의 통일 배치에 따라 북경 천교극장(天桥剧场)에서 회보공연을 하였다. 공연은 관중과 예술전문가, 다른 예술단체의 열렬한 절찬을 받았다.


《춘향전》극목은 중앙문화부와 전문가들의 평의를 거쳐 단체 1등상을 수여받았다. 이는 조선족연극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중앙급 단체수상작으로 되였다. 수도 북경의 1급간행물들에서도 분분히 《춘향전》 공연을 찬양하였다. 조선족연극 《춘향전》은 극목이라는 형식으로 전국에 향해 조선족자치주와 조선족사회를 알렸다. 이 점은 보다 큰 력사적의의를 가지게 된것이다. 이는 연변문화예술일군들의 연변에 대한 하나의 공헌이였다. 그속에는 부연출 겸 《방자》 역으로 활약한 최문의 공헌도 숨어있었다.


연극단설립 초창기의 한 사람으로서의 최문은 연출에 더 몰입했다. 일상생활에서 그는 차근차근고 섬세한 편이였지만 연극련습장에서는 엄격했다. 그는 연출의 구상에 어긋나는 배우들한테는 《그것 아니야!》 라는 과단성있는 지적을 아끼지 않았고 《바로 그거야!》 라는 결단력 있는 긍정으로 연구가 깊은 배우들은 찬양하고 고무했다.배우들은 최문연출을 두고 일상생활과 련습장에서 완전 다른 사람이라고들 평하였다.


연변문공단시기로부터 연변연극단시기 최문과 함께 사업하였던 정인덕선생은 《최문은 연극연출을 담당하던 10여년 사이에 아무것도 모르던 햇내기배우들에게는 정말 훌륭한 선생이였고 참다운 연출이였다》고 평하고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알기에는 그를 찾아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던 배우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최문은 배우들에게 자신의 연구에 따라 충분히 발휘할수 있는 공간을 주었으며 그릇된 곳이 있으면 왜 틀렸는지를 리해할 때까지 차근차근 가르쳤지요. 하여간 그의 가르침을 받으면 나 자신도 모르게 대담해지군 하였으니깐요. 후일 동료들과 얘기를 나눠봐도 다들 같은 관점들이였습니다.》


최문연출은 조선족연극사업에 종사하면서부터 10여년간 줄곧 연출사업을 담당해 왔으며 그가 연출을 본 《춘향전》(김재한 연출, 김광출 부연출과 함께), 중국 번역극 《서망장안》(원주삼, 리영근과 함께), 쏘련 번역연극 《의사 보로위예브》 등 작품과 적잖은 단막극은 조선족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외 그가 연길현문공단에 있을 때 직접 창작하고 연출을 본 《부녀대표》는 무대를 통하여 관객들의 환영을 받았으며 또한 널리 공연되였다.


최문연출은 1957년 반우파투쟁의 나날에 억울한 루명을 쓰고 안도현 신기가의 농촌에 하향하여 로동개조를 하였다. 그는 자신이 열애하는 연극사업을 더는 할수 없게 되였고 또 여러 가지 박해가 가해지자 1958년 12월, 훈춘의 한 연극선배의 집에 머물다가 두만강을 건너가겠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흔연히 떠났다. 최문은 떠나면서 《사랑하는 안해와 계선을 나누게 하고 딸마저 볼수 없게 하니 하루를 더 있어봤자 가슴만 터질것 같다》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필자가 훈춘에서 그 선배를 만났을 때 그는 《참, 대단한 연극인재였는데… 너무 빨리 사라졌수다…》 라고 하며 눈굽을 찍었다.

1957년, 연변연극단의 번역극《서망장안》공연후 연직원들과 함께한 최문(앞줄 중심)


후일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최문은 중국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조선의 한 예술단체에서 연출사업을 하였다고 한다. 확실한 근거는 더 찾아보지 못했지만 그의 천부적기질로 보아 그가 연극과의 인연을 끊지 않았을것이라고 추측해보게 된다.


최문의 발자취를 추적하여 6년째를 맞이한 필자의 마음속에는 부질없는 여러가지 《운동》때문에 최문이라는 이 조선족연극계의 훌륭한 연출의 관련자료마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이 서운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매차례의 력사적 《운동》으로 하여 지워버릴수 없는 인물을 지워버렸다는 점이 너무도 아쉬워 그 추적의 끈을 놓지 않았다만 력사는 어디까지나 공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포기하고싶지는 않은것이 내가 한 력사인물을 추적한 리유라 하겠다.

/ 김학송 (1급 작가)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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