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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 간 “기러기”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02.15일 15:49
-전국로력모범 고 리호천옹을 추모하여



2월 12일 오전, 뜻밖에 호천옹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놀라운 소식이였다. 무슨 청천벽력인가! 설날아침까지 서로 전화로 설인사를 나누지 않았던가! 비보를 접하고 내가 황상박선생, 리광평선생과 함께 조문을 가니 11일부터 심장병으로 연변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효과를 보지 못하고 12일 아침 6시 27분에 돌아가셨다는것이였다.

년세가 많은 분들은 지난 세기 60년대에 상영되였던 영화 《기러기(鸿雁)》를 본 기억이 있을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우편배달부《리운비(李云飞)》의 원형이 바로 지난 세기 50~80년대 전국로동모범으로 이름을 날렸던 연길현(룡정시) 덕신우전지국의 리호천이다.



리호천을 원형으로 촬영한 영화 《기러기(鸿雁)》의 포스터.

호천옹과 나는 몇십년 가까이 지내면서 두터운 우정을 맺었다. 후에 장춘영화촬영소에서 이 영화를 dvd로 제작하여 호천옹에게 보내왔는데 옹이 나에게 시디롬(光盘) 하나를 선물하여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나와 그는 한 고향이다. 내가 소학교를 다닐 때 그는 벌써 전국로력모범이였다. 하여 우리 학교에서는 그를 초청하여 보고를 들었다. 보고를 들은지 이제는 50년도 많이 넘어 그때의 보고내용은 기억에 어슴프레 하다. 단 북경에서 모주석과 중앙의 령도동지들의 접견을 받고 천안문 관례대에 앉았다는 내용만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수도 북경”, “모주석”, “중앙령도” 등 이름들은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들이기에 우리는 호천선생을 몹시 흠모하였다.

나와 호천옹은 나이차이가 20살이나 되지만 어쩐지 각별한 인연이 있는것 같다. 그가 우편배달원으로 있을 때 그의 집과 우리집은 모두 덕신공사 숭민대대에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가 우편배달가방을 메고 다니는것을 보아왔으며 썩 후에 내가 공사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에는 그의 딸이 내가 맡은 학급에서 공부하다보니 가정방문 등을 통해 그와 아주 절친한 사이로 지냈다. 그가 1980년도에 룡정시 우전국 부국장으로 전근한후 인연이 이어지자고 그랬는지 나도 이듬해 룡정으로 전근하게 되였다. 우리는 룡정에 와서도 자주 래왕하였다. 나는 그의 사적을 정리하여 신문, 방송에 투고하여 여러번 발표하였는데 이러다보니 그의 정황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있는 편이다.

1932년 3월 5일, 연길현 지신구 성동촌에서 출생한 리호천옹은 1945년 8월 15일 연길현 덕신구 영동촌 중우동에서 해방을 맞았다. 생활난으로 1948년 16세 나던 해에 지신소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52년에 소학교를 졸업한후 연길현 덕신우전지국에서 우편배달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그는 7개 생산대대, 51개 생산소대의 우편배달을 책임졌는데 100근 넘는 짐을 메고 11갈래의 물을 건너고 4개의 령을 오르내리면서 매일 거의 왕복 100리 되는 길을 다녔다고 한다.



60년전 배달로정 답사에 앞서 당시정황을 소개하는 리호천옹(가운데)(2015.11.4).

1964년 내가 중학교(연길현10중)를 다닐 때였다. 어느하루 자전거를 타고 배달다니던 호천옹이 갑자기 적갈색의 말을 타고 우리 학교에 왔다. 말잔등에는 우편물이 가득했다. 학생들은 우편배달부가 말을 탄것을 처음 보는지라 신기하여 그를 둘러싸고 구경하였다. 원래는 비오면 자전거를 탈수 없는 덕신길을 념려하여 길림성 우전관리국에서 그에게 말을 장려했던것이다. 하지만 백여근 되는 짐때문에 말도 얼마가지 못하고 지쳐 쓰러졌다.

그때가 바로 1966년도 가을이였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여 학생들이 전국적인 대교류(大串联)를 하던 때라 우리도 북경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장춘에 들러 시가지구경을 나갔는데 우연하게도 쓰딸린대가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오는 호천옹과 마주쳤다. 우리가 너무도 반가워 그를 둘러싸고 어찌된 일인가고 물었더니 성우전국에서 지친 말대신 오토바이를 바꾸어 주어 지금 오토바이련습을 한다는것이였다.

성 우전관리국에서 전국로력모범인 그에게 말과 오토바이를 장려하였지만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덕신길은 마른 날이면 길이 울퉁불퉁하고 비오면 참질땅이라 질척거려 오토바이를 타는 날이 매우 적었고 또 탄다 해도 매우 불편하였던것이다.



덕신중학교 교정에서 당년을 회억하는 리호천옹과 주청룡선생(2015.11.4).

호천옹은 “나의 일체는 당과 인민을 위하여!”를 좌우명으로 삼고 평범한 일터에서 평범하지 않은 업적을 쌓았다. 하여 당과 인민은 그에게 수많은 영예를 안겨주었다. 1956년 4월 30일에 전국 로력모범표창대회에 참가였으며 5월 1일에는 전국로력모범메달을 달고 천안문 관례대에 앉아 5.1절 경축대회를 관람한 다음 모주석과 중앙위원들의 접견을 받았다.그때로부터 그는 모주석과 중앙령도동지들의 접견을 7차례나 받았다.

그가 모주석과 중앙령도동지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기념메달들은 지금 국가우전박물관에 소장되여있다. 그의 집 벽에는 지금도 우전제복에 14매의 기념메달을 달고 찍은 사진과 모주석과 중앙의 령도동지들의 접견을 받을 때 함께 찍은 기념사진들이 커다랗게 확대되여 걸려있다.

전국로력모범이였지만 그도 문화대혁명가운데서 주덕해보황파, 류소기 가짜로력모범, 조선특무 등으로 몰리여 비판을 받으면서 각종 회의에 참가할 권리마저 박탈당하였다.

1967년 8월 2일, 나와 몇몇 동학들이 학교로 갈때 마침 리호천옹이 우편물을 싣고 우리옆을 지나고있었다. 이때 우리 앞에 몽둥이를 쥔 한 반란파가 길을 가로막으면서 오토바이를 내놓으라고 외쳤는데 그가 오토바이를 세우지 않자 몽둥이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다행히 사람은 맞지 않았으나 오토바이 전등유리가 박산났다. 그는 “내가 못 타면 못 탔지, 절대로 너희들에게는 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오토바이를 분해하여 금곡마을의 개인집에 감추고 두발로 걸어다녔다. 그는 이 일때문에 반란파들에게 모진 매를 얻어맞았지만 오토바이는 끝내 내놓지 않았다…

리호천옹은 항상 “나의 일체는 당과 인민을 위하여!”를 좌우명으로 삼고 사업하여 오셨다. 비록 너무나 갑작스럽게 우리의 곁을 떠나셨지만 옹의 이름은 당신이 거둔 그 업적과 더불어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져 있을것이다.

기러기가 되여 하늘나라에 가신 리호천옹의 명복을 삼가 빌고 또 빈다!

2016년 2월 15일

글/사진 주청룡특약기자, 김태국기자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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