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대학 예술학원 성악연기학부 학생들이 최음파가 창작한 노래를 부르고있다.
일전에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판 발행된 리광인 저 《최음파평전》 출간식 및 학술세미나와 최음파음악회가 중국조선족문화예술연구중심, 《예술세계》편집부, 연변작가협회 남방창작위원회의 주최로 9월 19일 오후 연변대학 음악학원 음악홀에서 개최되였다.
출간식에서 연변대학 예술학원 원장 리훈이 개막사를 하고 연변작가협회 전임부주석 우광훈, 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 교수 김호웅, 연변대학인문학원 력사학부 학부장 강수옥 등이 축사를 했다. 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 김관웅교수가 쓴 《최음파평전》의 서평 “리광인, 한평생 백의겨레의 기념비를 다듬어 세우는 부지런한 석수”를 연변대학 우상렬교수가 대독하였다.
웃줄 좌로부터: 리훈, 우광훈, 김호웅, 강수옥, 우상렬, 리광인, 김성준, 김송죽.
이어 진행된 학술세미나에서는 리광인의 “홍군음악가 최음파의 상해 시절과 그 활동 연구”,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학부 교수 김성준의 “국제주의전사이며 홍군음악가인 최음파”, 《예술세계》잡지 주필 김송죽과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학부 학부장 박경화의 “‘량대주력회합가’의 진실” 등 3편의 론문이 발표되였다.
2부로 진행된 최음파 음악작품 음악회에서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연기학부 2013년급과 2014년급의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최음파가 당년에 창작한 “량대주력회합가”, “로농극사사가”, “홍군용사의 노래”, “홍군항일가”, “전선으로 나가자” 등 5수의 노래를 열창하였다.
중국인민해방군의 첫 작곡가이며 바이올린연주가인 최음파는 1904년 조선 평안북도 의주군 비현면 영평동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1운동이후 상해신화예술대학에 진학하고 그후 조선공산당 상해지부 당원으로 활동하다가 중국공산당원으로 되여 1927년 광주봉기에 참가하며 1931년 당의 파견으로 상해를 떠나 중앙혁명근거지인 서금에 가서 문화교원, 홍군학교구락부, “8.1극단”, “로농극사” 등 단체 주요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전선으로 나가자”, “유격대행진곡” 등 수많은 혁명 가곡과 연극을 창작한다.
1935년 3월 한차례의 반포위전투에서 대오와 헤여진 그는 홍군비행사 진덕근과 함께 상해에서 비밀항일활동을 하다가 그해 7월 10일 일경에 체포된다. 1936년 2월 10일 신의주지방법원에 의해 치안유지법 위반사건으로 징역 3년에 언도된후 행적이 묘연한것으로 알려졌다.
책의 저자 리광인(필명 리함)은 길림성 화룡현에서 출생했으며 1982년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를 졸업하고 선후로 연변일보사, 연변력사연구소, 절강 월수외국어대학 등에서 근무하다가 현재는 자유기고인으로 활동하고있다.
중국조선족 력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에 남다른 사랑을 가지고있는 작자는 《인물조선족항일투쟁사》(전 4권), 《겨레항일지사들》(전 4권), 《조선족력사문학연구문집》(전 2권), 《광복전 겨레작가론》, 《홍군장령 양림》 등 20여부의 저서를 출간하였으며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연변작가협회 실화문학상 등을 수상한바 있다.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