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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사할린 동포의 한국귀환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6.10.18일 08:57

지난 9월 22일 충남 천안시 국립 망향의 동산에서 열린 '사할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봉환 추도 안치식'. 유족들이 희생자들의 유골을 봉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 지난 9월 22일 오후 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는 일제강점기 사할린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가 숨진 희생자 10위의 유골이 안치됐다. 함께 항공편으로 봉환된 백낙도 씨의 유골은 선산인 경북 문경에 묻혔다. 유족을 대표해 추모사를 한 백 씨의 아들 남길 씨는 "아버지께서 끌려가실 때 한 살 젖먹이였던 제가 어느새 칠순을 넘겼다"면서 "제 평생소원이 생전에 한번 만나 뵙는 거였는데 이렇게 늦게 찾아온 이 불효자를 용서하시고 오늘 밤 이름 한 번만 불러 달라"고 울먹였다. 사할린 강제동원 한인 희생자의 유골이 국내에 봉환된 것은 2013년 5월 이래 네 번째로, 지금까지 43위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할린의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는 서울에서 비행기로 3시간밖에 안 걸리는 거리에 있지만 오는 데 70년 넘게 걸린 것이다.

#2. 러시아 사할린·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 등지에 흩어져 살던 사할린 동포 83명이 지난해 12월 14∼17일 세 차례에 걸쳐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의 적십자사가 공동으로 펼친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사업'의 마지막 수혜자였다. 일본적십자사는 영주귀국 희망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로 지난해 사업 종료를 선언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일본이 손을 떼더라도 희망자가 있다면 영주귀국 비용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영주귀국자들은 꿈에도 그리던 고향 땅을 밟았지만 여전히 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 영주귀국 대상을 1945년 이전에 사할린에서 거주했거나 태어난 한인과 이들의 배우자 및 장애자녀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영주귀국한 경기도 안산의 김경진(82) 씨는 "모국 동포들과 어울려 사니 행복하긴 하지만 사할린에 두고 온 자식과 손주 생각이 간절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모국에 영주귀국하기 위해 사할린 동포 1세들이 지난해 12월 14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19세기 이후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동포들의 피와 눈물과 한숨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으나 그 가운데서도 사할린 동포의 운명은 더욱 기구했다.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시련은 말할 것도 없고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일본과 러시아와 남북한 모두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아 왔다. 불과 70년 간 국적이 조선→일본→무국적→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소련→러시아→남한(한국)으로 최다 7차례나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모진 세월을 견뎌내야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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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최동단 연해주와 이웃하며 일본열도 북쪽에 놓인 사할린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러시아와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격변을 겪었다. 1875년에 체결된 '사할린·지시마(千島) 교환 조약'에 따라 영유권이 일본에서 러시아로 넘어갔다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북위 50도 이남을 차지해 둘로 갈렸다. 일본어로 가라후토(樺太)라고 부르는 이 섬에는 삼림이 울창하고 석탄과 석유 매장량이 풍부해 1939년부터 일제는 군수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조선인 젊은이를 대대적으로 동원했다. 이곳으로 징발된 5만여 명의 근로자 가운데 약 3천200명은 가족한테 기별도 못한 채 1944년 말 일본 규슈(九州) 등지로 다시 끌려가는 이중징용을 당했다.

1945년 8월 해방을 맞자 사할린 동포들은 곧 고향 땅을 밟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이들을 외면했고 조국은 무력했다. 일본은 소련군이 점령한 사할린에서 자국민을 귀환시키면서도 조선인 약 4만3천 명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했다. 이들은 한동안 무국적자로 방치되다가 소련과 북한 국적 중 하나를 고르라는 선택에 내몰렸다. 사할린 동포 대부분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끌려왔으므로 고향으로 돌아갈 기대를 버리지 않고 무국적으로 더 버티다가 취업과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소련 국적을 취득했다. 일부는 남한 귀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여겨 북한 국적을 얻었고, 이 가운데 북한으로 이주한 사람도 있었다.

'사할린 억류귀환 한국인회'의 박노학 (1912∼1988) 회장을 비롯한 사할린 동포들의 끈질긴 노력과 일부 한국인과 일본인의 인도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뚫리지 않던 사할린 동포들의 모국 귀환길은 1985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며 열리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합의에 따라 양국 적십자사는 1989년 7월 14일 협정을 맺고 이들의 모국 영주귀국을 추진했다.

지금까지 한국에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 4천346명 가운데 일부는 숨지고 일부는 사할린으로 되돌아가 3천100여 명이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현재 사할린에 사는 동포는 1세 500여 명을 비롯해 2만5천200여 명에 이른다. 광복 71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들은 강제징용에 따른 피해 배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은 물론 당시의 노임·보험금·우편저금 등도 돌려받지 못했고, 자식과의 생이별과 타국살이의 설움 가운데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사할린 새고려신문사의 사진기자 이예식과 재외동포 전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지연은 오는 26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의 갤러리 '고도'에서 '사할린 동포들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연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오는 26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의 갤러리 '고도'에서 '사할린 동포들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사진전이 열린다. 사할린의 유일한 한글신문 새고려신문사에서 일하는 동포 2세 사진기자 이예식(67)과 러시아·중국·일본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들의 삶을 기록해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지연(45)이 사할린 동포의 현지 생활상과 영주귀국 후의 모습 등을 담은 사진 7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 내걸릴 사진들은 일본과 러시아의 책임을 따져 묻기 전에 이들에게 과연 조국이란 어떤 의미였을지 곱씹어보라고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다. 과연 이들에게도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물으라"는 존 F. 케네디의 연설을 내세우며 충성과 헌신을 요구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들의 신산한 세월과 기막힌 역사 앞에 조국과 겨레가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바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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