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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한복판에서

[기타] | 발행시간: 2017.05.18일 15:27
[한겨레21] [포토2]오랜 내전으로 무너져가는 이라크 모술, 일상이 된 전쟁 속에서 사는 아이들

이라크 모술에서 이슬람국가(ISIS)가 지배하던 마을에서 막 도망친 어린이. 황급히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에서 한정된 물건만 가지고 나온 사람들 가운데 유독 인형을 든 어린이가 많았다.


지난 1월 이미 해방된 이라크 티그리스강 동쪽 모술에 위치한 알아티르 소아 전문 종합병원은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이가 누구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슬람국가(ISIS)가 싸움에 지고 물러나면서 버리고 간 시설을 적군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병원 전체를 불태워버렸다. 이후 병원에 딸린 응급실만이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됐다.

응급조치와 병실 구실을 동시에 수행하던 30여 평 공간은 쉴 새 없이 아이들을 안고 들어서는 부모와 끊임없이 울어대는 아이로 혼잡 그 자체였다. 고통을 견디는 아이들과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부모들의 무기력함을 지켜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교전이 이어지던 몇 달 전엔 치료받기 위해 밖으로 나서는 행위 자체가 목숨 건 모험이었다.

4월 말 이라크 특수 정예부대 ERD(Emergency Response Division)와 함께 모술 서쪽 최전선을 며칠 둘러봤다. 적군의 자살폭탄 차량과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를 저격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집 사이를 재빠르게 오가야 했다. 끊임없이 들리는 크고 작은 폭발음으로 인해 우리와 ISIS 사이에 빈 공간만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늘에선 이라크군의 전진을 돕기 위해 이따금 폭격기가 공습했다. 그때마다 저만치 ISIS 점령지에선 수백m의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마침내 ISIS는 퇴각했다.

전투가 끝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불과 20∼30분 전까지 총과 바주카포로 공격을 쏟아붓던 바로 그 거리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수백 명이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쏟아져나왔다. 그들이 ISIS와 이라크군의 교전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이라크군의 폭격을 고스란히 받아낸 피란민의 상당수는 10살 미만 어린아이였다.

요란한 폭발음에 놀라거나 자기 손을 이끌던 부모나 어른들이 우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우는 아이들은 차라리 괜찮았다. 가슴을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는 아픔이 느껴지는 순간은, 이 모든 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듯 체념한 아이들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다. 탈출 중에 ISIS 저격수의 공격을 받아 머리에 피를 흘리는 아이, 폭격으로 이탈한 턱관절을 붕대로 겨우 지지하는 아이, ISIS가 납치한 부모를 찾아달라고 작은 손으로 ERD 요원의 손가락을 붙든 채 울먹이는 아이…. 이들이 겪은 일은 훗날 어떤 형태로 그들의 마음에 남을까.

황급한 대피 상황에서 애써 작은 인형 하나를 들고 나온 아이를 본다. 그 작은 인형이 오랜 내전으로 시달리는 이라크와 시리아 땅에 평화를 가져다주길 기원한다. 맏이뻘인 10살 남짓한 아이들은 커다란 짐을 지고 나오며 뒤에 처진 가족들을 챙기느라 연신 소리를 질렀다. 이들은 아마 지하 대피실 안에서 며칠 밤을 새우며 공습이 자신의 집을 향하지 않도록 기도했을 것이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이 모든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설사 우리가 ISIS를 시리아와 이라크 땅에서 격퇴하더라도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의 고통 앞에서 모두 죄인이지만 우린 그 사실을 짐짓 외면하며 산다.

이라크 특수 정예부대 ERD(긴급반응부대)가 모술 서쪽 최전선에서 ISIS를 밀어내는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2017년 4월

모술 서쪽 시내에서 ISIS로부터 도망친 시민들이 감정에 북받쳐 그들을 해방시킨 이라크 특수 정예부대 요원들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17년 4월

모술 동쪽 알아티르 소아 전문 종합병원에서 천식 질환을 앓는 아이. ISIS가 점령할 때 전선에서 다친 요원들을 치료하던 이 병원은, 2017년 1월 그들이 패퇴할 때 병원에 불을 질러 대부분의 시설이 파괴됐다. 2017년 3월

모술 서쪽 마을에서 갓난아이를 안고 빠져나오는 시민. 2017년 4월

이라크 특수부대가 갓 해방시킨 모술의 한 구역에서 난민들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전에 대기하고 있다. 2017년 4월

교전 중인 마을에는 10살 미만 어린이가 많이 살고 있다. 2017년 4월


모술(이라크)=사진·글 전해리 다큐멘터리 사진가

*전해리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했고, 2009년 워싱턴 코코런 미대를 졸업했다. 아이티, 파키스탄, 시리아 등 제3세계의 다양한 이슈들을 취재해왔다.

출처: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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