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모르고 있을겁니다."
한화 박찬호는 은근히 장난꾸러기다.
보통 경기장에서는 팀의 맏형이기 때문에 겉보기에 근엄한 듯하다.
하지만 선수들과 구단 프런트를 대할 때는 간간이 익살도 잘 부리고, 처졌던 분위기를 띄우는 메이커 노릇을 한다.
딴에는 한국야구로 복귀했으니 자신을 어렵게 대할지 모를 후배들과의 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이라는 게 구단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박찬호의 이런 장난기는 은퇴한 대선배 이종범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찬호가 지난 5월 자신의 응원가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종범을 감쪽같이 속였던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
가수 서진필과의 합작품이었다. 당시 박찬호는 이종범의 소개로 알게 된 서진필의 도움으로 응원가를 만들고 있었다.
서진필의 히트곡 '사나이 순정'을 개사해서 '박찬호 순정'을 만들어냈다. 서진필의 노래 음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저작권료 문제가 거론됐다.
서진필은 저작권료 따위는 받지 않을테니 경기장에서 마음껏 응원가를 틀어도 된다고 허락했다.
이 때 박찬호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형님, 종범이 형에게서 연락이 오거든 저작권료 때문에 '사나이 순정' 사용 허락이 안된다고 말해주세요."
이종범의 절친 친구인 서진필에게 이렇게 부탁한 박찬호는 이종범에게 태연하게 전화를 해 상의를 하는 척했다.
"종범이 형, 진필이 형이 저작권료를 꼭 받겠다고 하는 바람에 '사나이 순정'을 응원가로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아요. 어쩌죠?"
의리파 이종범이 박찬호의 이런 하소연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려? 내가 진필이한테 연락해볼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종범은 득달같이 서진필에게 전화를 했다. 박찬호에게서 들은 '꾸며진' 사연을 전하며 저작권료 받지 말고 음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면 안되겠느냐고 '청탁'을 했다.
서진필은 박찬호와 치밀하게(?) 짰기 때문에 이종범의 청탁을 거절했다. 이종범은 "야, 친구인 내 얼굴을 봐서라도 부탁한다. 네가 거절하면 내가 찬호 앞에서 체면이 뭐가 되겠냐"고 애원하다시피 했다.
서진필은 여전히 완고했다. 그러자 이종범은 버럭 소리도 치며 화를 낼 것 같은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해도해도 너무한다. 친구끼리 그런 부탁도 못들어주냐"는 원망이 뒤섞여 자칫 싸울 태세였다.
이러다가는 친구간의 우정도 상할 듯싶었다. 그제서야 서진필은 마지못해 부탁을 들어주는 척하며 이종범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종범은 순진하게도 박찬호에게 전화를 걸어 "진필이에게 부탁해서 내가 다 해결했으니 응원가는 걱정하지 말고 추진하라"고 큰소리를 쳤다. 당연히 박찬호는 속으로 배꼽을 잡고 웃으며 겉으로는 "종범 형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박찬호와 서진필이 합작한 연극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것이다.
서진필은 "이종범이 후배 박찬호의 사소한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서 마치 자신의 일인양 발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의리 하나는 최고인 친구라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종범이 제대로 속아넘어간 덕분에 친구 서진필은 의리를 확인했고, 후배 박찬호는 선배의 애정을 새삼 느꼈다.
한데 박찬호의 유쾌한 장난에는 아직 후유증이 남아있다. 서진필은 "아마 이종범이 지금까지도 자기가 힘을 써준 덕분에 박찬호 응원가가 저작권료 없이 순조롭게 사용되는 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