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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버님의 선물 /리경자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8.21일 08:28
● 리경자

우리 집에는 동글한 밥상이 있다. 30여년 사이이 네댓번 이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낡은 가구들을 좀씩 버리군 했다. 아빠트에 이사올 때에는 예쁜 밥상들이 많았음에도 유독 그 밥상만은 버리지 않았다. 그 밥상은 아버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혼하여 작고 초라한 사랑채에서 셋방살이를 하게 되자 아버님은 이제 새집이 차려지면 그때에가 식장을 사주겠노라고 말씀하셨다. 2년후 우리는 새집에 들게 되였다. 아버님이 보내올 식장을 그려보면서 한달 월급을 몽땅 털어 구하기 힘든 돼지머리며 물고기 그리고 야채들을 구입하느라 신나게 뛰여다녔다. 설날이 가까워오자 나는 아버님이 그 부피 큰 식장을 어떻게 가져올가하는 부질없는 근심까지 하면서 혼자 흥분에 젖기도 했다. 하지만 그믐날 우리 집에 도착한 아버님은 식장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고 어머님의 손에는 그럴만한 보따리도 없었다. 행여나 큰아들이 새집에 들었는데 설마 빈손으로 올랴싶어 저녁식사 무렵에 돈이라도 내 놓으실거라고 지레짐작 했다. 그런데 너무 뜻밖으로 어머님은 이전부터 홍등패라지오를 갖고 싶었는데 요즘 헐값으로 처리하니깐 그걸 사다보니 빈손으로 오게 되였다며 집에서 아버님이 밥그릇으로 쓰던 낡은 그릇 하나를 달랑 내놓으셨다.

지금같이 풍요로운 세월이라면 조상들의 대물림이라고 좋게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그때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탓때문에 마냥 고양이 기름종지 넘겨다보듯 아버님이 식장을 사주시겠다던 그 약속을 믿어온 나인지라 속으로 섭섭했지만 용케도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큰며느리 처사를 하느라 연길시내에 살고있는 시댁편 팔촌되는 친척들까지 모셔오니 설명절에도 휴식할수 없었던 나는 부지깽이가 곤두설 지경으로 바삐 보내야 했다.

그런데 이틀후 친척들을 다 떠나보내고 난 뒤에 어머님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례의도 없이 설명절에 부모들을 오라가라 하다니? ”하는것이였다. 자식이 새집에 들었으면 부모로서 와보시는것은 기분좋은 일이고 그참에 함께 설을 쇨겸 오시라는데 무엇이 잘못되였단 말인가? 나는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지금같으면 “어머님 잘 못했어요. 부모님 모시러 가야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편지를 띄웠으니 량해를 하세요.” 이런 말로 긴장을 몰고 오던 순간을 넘길수도 있었으련만 나는 그때까지 그런 슬기로움이 없었다. 끝내는 철딱서니 없이 어머님과 큰소리로 말다툼을 벌이고말았다.

그해 5.1절을 앞두고 아버님은 나한테 편지를 보내오셨다. “너의 어머님은 젊은 시절에 나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다보니(아버님은 젊은 시절 우파모자를 썼음) 신경이 쇠약해지면서 성질도 많이 괴벽해졌느니라. 그래서 나도 20여년을 묵묵히 참아오면서 살고있는데 금방 시집온 며느리가 고질이 된 그 성격을 고쳐줄수 있겠니? 그러니 그렇게 알고 이후부터 시어머니가 실없이 너를 욕해도 심지어 매를 대더라도 네가 많이 참고 웃음으로 받아주었으면 좋겠구나. 힘들겠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다. 또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기는 한데 식장이든 이불장이든 앞으로 조건이 허락되면 차차 보기로 하고 먼저 약소한대로 학교가구공장에다 밥상 하나를 부탁해 놓았는데 5.1절 휴가때 가지고 가겠다. 그러니 특히 말하고 싶은것은 이번에는 네가 어머님을 잘 대해주기 바란다.”

나는 아버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정수리에 숯불을 인것처럼 뜨거워났다. 내가 어머니와 다투던 그날 아버님은 이 며느리에 대해 얼마나 실망을 하셨고 또 그 장면에 식장을 가져다 준다던 며느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일때문에 얼마나 조마조마 하셨겠는가. 그날 아버님은 송곳방석에 앉은듯 했을것이다. 나의 눈꼴사나운 행실에도 큰소리 한번 내지 않으신 선비같은 아버님께 경제상황이 어려움에도 식장대신 밥상이라도 해줘야된다는 무거운 압력을 주었으니. 그해 5.1절 아버님과 어머님은 화룡에서부터 연길까지 그 커다란 밥상을 들고 우리집까지 오셨다…

항상 인자하시고 박식하셨던 아버님은 어느날 갑자기 뇌혈전으로 쓰려지셨다. 며칠동안 물 한모금도 넘기시지 못하던 아버님은 초봄의 이른 아침 어머님도 당신의 친혈육들도 옆에 없는 썰렁한 병실에서 오직 이 못난 며느리를 신변에 두고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하신채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어느덧 15년 세월이 흘렀다. 생전에 아버님은 이 일을 입밖에 내신적은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아버님은 철부지였던 이 며느리에게 식장을 해주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것이 한이 되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내가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지 않았더라도 아버님은 식장은 아니더라도 밥상에 대한 압력과 걱정으로 마음을 졸이지 않으셨을걸. 그래서 천당으로 가시는 순간까지도 못난 며느리를 신변에 두고 편치 않은 마음으로 그렇게 가셨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참회와 서글픔이 온몸에 감겨든다. 사실 나는 그때 아버님의 편지를 받은 후로는 아버님이 친히 가져다주신 밥상 하나라도 만족했다. 아버님의 월급으로 대학 공부하는 시누이 뒤바라지를 해야 했고 또 어머님도 거의 약을 달고 있는 상황이라 부모님들의 도움을 바라는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지금도 나는 거리를 다니다가 가끔씩 깜짝 놀라군 한다. 훤칠한 체격에 거뿐거뿐 걸어가는 로인의 뒤 모습이 피끗 안겨오면 아버님이 아닌가하고 착각할때가 많다. 비록 아버님은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먼 려행을 떠나셨지만 내 마음속에 늘 가까이 계시여 그런가보다. 잘하나 못하나 큰며느리라면서 항상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시고 내 편이 되여주셨던 아버님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워난다.

아버님의 숨결이 묻어있는 우리 집의 동글한 밥상, 그 밥상을 볼 때마다 지난 세월의 어리석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고 마음이 옹졸해질 때마다 아버님의 너그러운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을 다듬게 된다. 만약 아버님께서 그때 식장을 주셨더라면 솔직히 말해서 나는 벌써 새 아빠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아쉬운대로 버렸을것이다. 아버님은 마침 보관하기도 쉽고 쓰기도 편리한 보름달처럼 생긴 밥상을 주셨다. 고부사이 형제사이 모서리 없이 똘똘 뭉쳐 온가족이 동글동글 모여앉아 보름달처럼 밝고 환한 웃음을 만들며 살아가라는 뜻으로 주셨을것이다.

꽃무늬도 줄칸도 없는, 이젠 윤기마저 바랜 그 오렌지색 밥상은 이미 고물처럼 낡았지만 가족의 의미를 다져주는 사랑의 선물이기에 나는 오늘도 소중히 간직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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