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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133] 보내드리기 위한 준비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3.04.03일 18:51
“엄마가 아무래도 오래 지탱할 것 같지 않아요. 누워계시면 일어나시기 싫어하니…”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동생의 근심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부랴부랴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동생의 전화를 받고 ‘끝내는 올 것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속 기둥이 뭉텅 끊어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그날 밤 한잠도 자지 못했다.‘엄마가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지? 어떻게 할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영원히 우리 곁을 지켜줄 것만 같았던 엄마가…’



엄마와 함께 기념사진 남긴 자식들(필자 오른쪽 첫번째)

엄마는 동생과 함께 한국에서 살았다. 엄마가 계셔서 다니게 되는 한국 행차도 이제는 십년도 더 됐다. 매년 한번씩 엄마를 모시고 중국에 와서 엄마와 함께 생활한지도 꽤나 먼 일로 되였다. 친정 나들이 하듯 들뜬 기분으로, 발걸음도 가벼웠던 한국 행차였다. 언제부터였던지 집에서 한국으로 떠날 때마다 혹시 이번이 마지막이 되는 거는 아닐가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머리를 치군 했다. 걱정과는 달리 만날 때마다 엄마는 정신이 또렷했고 내가 되려 엄마를 의지해야 하는 처지가 되며 엄마의 위로를 받고 힘을 얻군 했다. 말로는 엄마를 뵈러 갔다 하지만 실제 엄마 곁에서 호의호식하다 돌아오군 했다. 그야말로 친정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향락을 할머니가 다 된 나이임에도 엄마가 만들어주는 행운을 만긱했다.

시원하고 짭짤한 된장찌개, 실오리 풀리는 듯한 소고기 장졸임 그리고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도는 맛갈스러운 고추장…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도 없고 맛볼 수도 없는 최고의 맛갈스러운 밥상에 마주 앉을 수 있게 엄마가 만들어주셨는데…

무정한 세월 앞에서 사람은 약자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주방에 들어서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집에 가면 내가 주방 전담이였는데 출근을 한답시고 가정 살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지라 내가 한 음식이 맛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밥상에 마주 앉을 때마다 고맙게도 항상 맛있다고 말해주신다. 그리고 별로 드시지도 않고 잠자리에 눕는다. 앓음 소리를 내서 걱정스러워 다가가 어디 아프시냐고 물으면 “아니다, 아파서 내는 소리가 아니야. 이렇게 소리를 내면 시원해서 그런다. 걱정 말고 빨리 자라” 고 말하는 우리 엄마였다.

4년전 암 판정을 받은 언니를 돌보느라 아침저녁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작은 방에 들어가 사면을 향해 두손 모아 싹싹 빌고 빌던 우리 엄마였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너무 무료해서 뭐라도 좀 배워 볼가는 의사를 내비치기만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지지해주던 엄마, 자식이 하려는 그 어떤 일에도 리유불문하고 찬성표를 던져주던 우리 엄마, 그런 엄마 덕에 퇴직한 후에 운전을 배우게 되고 사치스러운 골프까지도 시작할 수 있었다.

“돈 없으면 말해라, 나한테 돈 많아!” 자식들이 주는 돈으로 생활하는 엄마에게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으랴만 항상 입버릇처럼 외우시는 엄마의 ‘어록’이다. 한푼이라도 툭툭 털어 자식들에게 주지 못해 애쓰는 엄마, 그 어려운 나날에도 자식 앞에서는 힘든 티 한번 내지 않았고 아픔 몸이지만 아픈 티 한번 내지 않으며 언제나 밝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쓰며 살아온 우리 엄마…

동생의 전화를 받고 한국에 도착한 이튿날, 동생은 나의 걱정을 덜어준다며 엄마를 차에 모시고 격리중에 있는 나의 집문 앞까지 왔다. 내가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면서 “엄마-”하며 소리내 불렀지만 듣지 못했는지 엄마는 차에 앉은 채 요지부동이다. 동생이 엄마를 부축해 차에서 내려 손가락으로 내쪽으로 가리키며 둘째딸이 부른다고 해서야 올려보면서 말했다.

“너, 애순이야? 니가 왜 거기에 있는 거니?”고 하시며 눈을 슴벅인다. 내가 한국에 간다는 말을 수십번도 들었을 거고 두주일간 격리를 해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말도 들었으련만 금시초문으로 생각하시고 별로 놀라지도 않고 담담하게 한마디 던지고는 돌아서 차에 앉으셨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번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엄마를 보면서 너무도 슬펐다. 엄마답지 않게 변해가는 엄마가 가슴을 아프게 허비였다.

집을 떠나 대학에 다니기 시작해서부터 엄마는 나를 만날 때마다 눈물을 훔쳤고 집을 떠날 때마다 소리내여 엉엉 우시던 엄마였다. 한국에 자주 드나들며 만나고 떠날 때마다 눈물을 훔치던 엄마가 이렇게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나를 보고도 무덤덤하시다니.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콱 치솟았다.

그토록 깔끔하고 멋쟁이고 센스 만점인 엄마가 어떻게 저렇게 될 수가 있지?

도저히 용납이 안되고 인정할 수가 없는 현실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여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자신이 미웠고 곁에서 지켜드릴 시간 조차 별로 없을 거란 절망감과 허망함에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나가 난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펄쩍 주저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헉헉-, 흑흑-

로인협회에선 ‘미스코리아’로, 무도장에선 춤 잘 추는 백발할머니로, 로인학원에선 중국어 잘하는 할머니로, 집에서는 우리 자식들의 자애로운 어머니로 멋지게 사시던 엄마가 어느 새 몰라보게 늙어가고 쇠약해질가? 내가 따라 갈수가 없을 정도로 내 앞에서 씽씽 걸어다니던 엄마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을 것이고 하루에도 몇번이나 쪼르르 마트에 뛰여가셔서 우리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사다가 우리 앞에 놓곤 그렇게 달게 웃으시던 그 해바라기같은 웃음도 더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실망감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빵을 좋아한다고 빵이 구워져 나오는 시간을 맞춰 빵집에 달려가서 사다주군 하시던 엄마는 내가 엄마 집에 갈 때마다 빵을 사는 일을 되풀이 하군 했다. 언제부터인지 빵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서 빵을 거부하게 된 나였지만 엄마가 사다 준 빵만은 엄마의 그 지극 정성과 사랑 때문에 잘도 넘어갔다.

“엄마, 우리한테 좀 덜 신경써주시고 이제는 엄마를 챙기면서 살아요. 언젠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 맘이 찢겨서 어떻게 살라고 그래요?”

내가 철이 들면서부터 항상 했던 말이다. 그런데 그 말조차도 더는 하지 못하게 되였다.

로인학원은 물론 밖에 나가지 못한지도 2년이 넘는다. 우리 자식들이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큰산으로 살아오시던 엄마가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가 되여가고 있다. 한번씩 같이 나들이 할 때면 우리가 입고 가야 할 옷까지도 골라서 챙겨주던 센스 만점의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입을 옷까지도 우리가 챙겨주길 기다리고 계신다. 너무 무덤덤하게 변해가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엄마는 저렇게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거라고, 어쩜 떠나신 다음 남은 우리가 좀 덜 쓸퍼하고 애달퍼하라고.’

그런 것 같다. 세상에 태여나서 하나하나 배우고 간직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버리고 떠나는것이 인생이리라. 가진 것, 아는 것 하나도 갖고 가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인생이니깐. 저렇게 하나하나 버리고 잃고 잊어가면서 어린 아이로 변해간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성장시켜준 은혜를 인제야 갚기 시작하는 것 같았건만 엄마는 저렇게 급시 서둘러 떠나시려고 하신다.

그래서 생각했다. 떠날 준비를 하시는 엄마를 우리도 떠나보 낼 준비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고. 그래, 우리도 보내드릴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엄마와 같이 할 수 있는 매시간, 매 순간들을 쪼개여 아끼면서 엄마 곁에 있어야지, 여지껏 못했던 사랑 표현도 많이 하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려야 하지, 나는 엄마한테 해드릴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적어보았다.

이제 격리 끝나면 엄마 곁에 꼭 붙어서 엄마만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 엄마가 우리들을 키우 듯 우리가 엄마를 돌봐드려야지. 엄마가 좋아하시는 감자떡, 무우밥부터 해드리고 엄마가 좋아하시는 고무마밥도, 수제비도, 전병도, 순대도 해드려야겠다. 한술로 끝내는 음식일지라도 삼시세끼 더운밥에 끼니마다 색다른 반찬을 만들어서 대접해야겠다. 엄마가 어지럽힌 팬티도 손빨래 해드리고 저녁마다 엄마 틀이도 딲아놓고 담가놓아야겠다.

아침이면 내가 엄마를 깨여드리고 매일 저녁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전신욕을 해드리고 잠들기전에 전신 마사지도 해드려야 겠다, 손을 꼭 잡고 해빛 쪼임도 견지하고 아침저녁으로 작은 방에서 아픈 언니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의 곁에서 같이 기도도 해드려야 겠다, 엄마 곁을 항시 지켜드리면서 외로움도, 두려움도 다소 해소시켜 드려야 겠다. 엄마에겐 정말로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엄마한테만 올인하리라.

그리고 엄마가 싫어하는 일은 절대 강요하지 않을 거다. 그것이 엄마의 몸에 리로운 약일지라도 넘기기 힘들어하시면 억지로 넘기란 말을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 정말로 우리들 품에서 편하게 지내다 가실 수 있게 잘해 들여야지…

현실을 인정하고 계획을 실천해가며 하루하루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이곳 생활이 어쩜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값진 날이 될 것이다.

/김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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