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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엄마, 날 버리지 않아서 고마워"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4.03.14일 12:03
[길림지역 문학코너]

캐리어를 끌고 제남으로 출장가는 아들을 문앞까지 바래고 돌아와 란장판 된 아들의 방을 치우고 있는데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엄마, 엄마, 빨리 빨리 신분증!”

숨이 넘어갈 듯이 한마디 하고는 전화가 끊겼다. 참 나원, 이 자식이 또 신분증을 빠뜨리고 갔나보다. 예전엔 서류가방을 두고가서 공항에 택배기사까지 보낸 적도 있었다.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신분증을 찾아들고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갔다. 아들은 벌써 역앞에서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택시에서 내려 한마디 꾸중할 새도 없이 아들은 신분증을 받아챙겨 잽싸게 역으로 뛰여들어갔다. 나는 아들에게 한마디 단단히 해야겠다고 뒤쫓아갔다.

저 앞 개찰구 입구에 줄 서있는 아들의 뒤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뛰여가 대판 꾸중할 기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났다.

난 아들을 다른 엄마들처럼 애지중지 사랑으로 키우지 못했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엄마, 언제 와? 몇밤 자면 와?”하면서 엉엉 울어대는 다섯살난 아들을 할머니한테 떼여놓고 한국으로 돈벌러 떠나갔었다.

한국에서 아들 걱정에 잠 못이루는 날이 많았고 꿈속에서도 엄마를 찾는 아들의 부름소리에 깨여나 배개를 적시며 눈물을 흘렸다. 참, 돈이 뭔지 사는게 뭔지 아리숭하기만 했다.

그때는 한국에 가려면 10여만원의 거금을 들여야 했지만 돈을 벌려면 불법체류를 해야 하기에 몸도 마음도 너무나 힘들었다.

한국 법무부에서 불법체류자들이 자진신고 귀국하면 1년 후 다시 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정책을 개진하였다. 이 좋은 기회를 타서 나는 4년 만에 중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어느새 키가 훌쩍 커버린 의젓한 아들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그날 저녁 아들은 오래만에 엄마를 만나서 그런지 많이 서먹서먹하면서 물어보는 말에만 대답했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다시 한국으로 가는 수속을 하러 다녔다.

어느날 아들이 저녁밥도 안 먹고 한쪽구석에 울먹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며칠후 아들의 숙제책을 검사하다가 우연히 책가방에서 일기책을 보게 되였다.

엄마는 또 한국에 가려고 수속을 하고 있다. 난 엄마가 좋다. 엄마가 제발 가지 말고 나랑 같이 영원히 살았으면 더 좋겠다. 우리 반 용이네 엄마는 한국에 간후 아버지와 리혼하여 지금 용이는 아버지와 둘이 산다. 용이가 말했다.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고. 나도 우리 엄마가 한국에 가면 날 버리고 돌아오지 않을가봐 두렵다.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나는 며칠을 고민하고 생각하던 끝에 드디어 한국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해 겨울 나는 기뻐서 퐁퐁 뛰는 아들애를 데리고 남편이 일하는 산동성 연태시로 왔다. 와보니 남편이 하는 일은 생각보다 신통치가 않았다. 아들을 연태시의 한 소학교에 전학시키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한식당을 하게 되였고 식당은 노력한대로 차츰 제 궤도에 들어섰다. 남편은 다른 일을 시작해보겠다며 한국으로 떠나갔고 녀자 힘으로 혼자 애 공부 뒤바라지하며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다. 새벽에 나가면 밤늦게까지 일하다보니 아들을 돌볼 새가 없었고 그 바람에 아들의 공부성적은 점점 떨어져갔다. 교내 운동회는 물론 학부모회의도 한번 참석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은 갑자기 돌변한 것처럼 삐뚤게 나가기 시작하더니 매일 밤늦게까지 PC방에서 살았고 숙제도 하지 않아 담임선생님의 호출이 쉴 새 없이 날아왔다.

하루는 식당에 손님이 꽉 들어찼는데 아들이 큰 밥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밥을 먹으며 도저히 자리를 비워줄 념을 하지 않았다.

“손님은 왕이다. 자리를 치워주렴.”

홀 직원이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그러자 아들은 벌컥 화를 내면서 상을 뒤엎어버리는 것이였다.

“이 집에서는 내가 왕이야. ”

나는 너무도 한심해 멍하니 가게 밖으로 씽씽 걸어나가는 아들의 뒤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아들을 방치해둔 대가는 엄청났다. 아들은 당연히 대학교에 붙지 못했다. 너무 후회되고 미안했다. 하루는 죄지은 마음에 아들에게 류학을 떠나면 안좋겠냐고 은근슬쩍 물었더니 아들은 갑자기 철든 것마냥 심하게 머리를 가로 젓는 것이었다.

“아니요, 엄마가 그렇게 밤낮 없이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내가 어떻게 함부로 탕진해요? 나는 엄마가 어떻게 살아온 걸 다 알고 있는데...”

사춘기때부터 나와 별로 대화가 없었던 아들이 불시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언제 이렇게 다 커서 엄마 마음을 알아주는 기특한 아들이 되였단 말인가! 그렇지만 요즘 세상에 좋은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대학 물을 먹지 못한 아들이 앞으로 살아갈 일로 나는 무척 속이 상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이 자기 스스로 MC학원을 찾아 등록했고 2년후에는 자격증을 땄으며 결혼잔치 등을 포함하여 주변의 여러 행사들을 맡아서 진행하면서 나름대로 활약을 하더니 3년전부터 심수의 모 광고기획사 연태분사에 취직해 지금은 부장으로 승진했다.

아들은 작년 회사 년말총화대회에 참석해 받은 생화 한다발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으면서 가게로 들어섰다.

“아들, 웬 꽃다발이지? 혹씨 녀친 주려고?”

“아뇨, 엄마 주려고, 며칠전 엄마 생일에 출장가서 못챙겨서요, 오늘 회사에서 년말총화했어요. 내가 열심히 일을 잘해서 상금도 많이 탔어요.”

그러면서 조금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꽃다발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꽃다발 속엔 돈봉투와 함께 메모지도 들어있었다.

”엄마, 지금껏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 사랑해.”

그 순간 나는 온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너무도 기쁘고 행복해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

“아들, 남자는 담배는 안피우더라도 사회생활을 하려면 술은 좀 배워야 할 것 같은데 오늘처럼 좋은 날엔 엄마랑 술 한잔 하는게 어때?”

“좋죠. 그럼 우리 한잔 마셔요.”

우리 모자는 처음으로 마주앉아 술을 나누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엄마 구실을 제대로 못해서 참 너한테 미안해. 바쁘다는 핑계로 챙겨주지도 못했고...”

“어렸을 때 엄마가 나를 버리고 한국에 다시 갔더라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거예요. 이제 내가 성공해서 엄마를 호강시켜줄게요.”

오직 엄마만 옆에 있으면 된다던 아들이 잘 자라줘서 정말 다행이였고 감사했다

아들은 훤칠한 체격에 인물도 괜찮다. 요즘 눈치를 보니 한족아가씨와 사귀는 것 같다. 욕심 같아서는 될수록 조선족 아가씨면 좋겠지만 세상에 마음대로 다 되는 일이 없다. 민족 차별 없이 한족사위, 한족며느리 보는 시대이다. 그리고 나도 지금까지 스스로 잘 살아온 아들 인생에 끼여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출장갔다온 아들의 캐리어 속에서 와이샤쯔를 꺼내 깨끗이 씻어서 다리미질하며 흥얼흥얼 노래까지 부르는 나는 정말로 행복한 엄마다.

/정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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