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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이 묻는다 "고운사에 다녀 왔느냐?"

[기타] | 발행시간: 2012.02.28일 11:57
[오마이뉴스 정만진 기자]

▲ 고운사 일대는 금강송 숲으로 에워싸여 있다.

ⓒ 정만진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은 2300명 정도의 인구만이 조촐하게 사는 작은 면이지만, 우리나라 최대의 고추 생산지답게 국가가 지정한 보물을 둘이나 거느리고 있다. 관덕동 3층석탑, 그리고 등운산 아래 고운사의 석불이 바로 그들이다.

등운산(騰雲山)은 구름(雲)을 타고[騰] 오르는 산(山)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름만 그렇게 구름을 타고 오른다고 표현되었을 뿐, 실제로도 등운산이 까마득한 높이의 험악한 산인 것은 아니다. 높이가 524m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등운사일까.

▲ 고운사 가는 길의 금강송 숲길

ⓒ 정만진

등운사 아래 고운사(孤雲寺)의 본래 이름 '고(高)운사'에서 그 까닭을 찾아본다. 지상에서 멀어져 높이 뜬 구름일수록 인간세상에서 멀어진다. 그러므로 높은 구름은 까마득한 천상의 세계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고운사라는 이름은 스스로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경지의 사찰이라는 자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고운사 홈페이지도 그런 자부심을 곳곳에 드러내고 있다.

'연꽃이 반쯤 핀 모양의 천하명당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하며', '이 정도 규모 이상의 고찰로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고운사

주차장에 차를 버려두고 걷기 시작한다. 새로 지어진 커다란 일주문 옆의 산자락 나무들 사이에 '천년 송림 체험로 1km'라는 작은 표시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지만, 산비탈로 나 있는 그 길보다는 사람들이 보통으로 다니는 이 길부터 걸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까닭이다. 사실 멀리서 눈으로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여기서 사천왕문까지 이어지는 고운사 들머리길이 정말 천혜의 솔숲길이라는 사실은 자연스레 확인이 된다. 하늘까지 닿은 듯한 장엄한 금강송 사이로 고운 황토 빛깔을 뽐내며 이어지는 이 길은 맨발로 걷고 싶은 마음을 저절로 일으켜준다.

다이아몬드(金剛)는 보석 중에서도 최고로 인정되는 '보석의 왕'이다. 수없이 많은 소나무(松)들 가운데에도 다이아몬드처럼 귀하게 여겨지는 '소나무의 왕'이 있다. 이름만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소나무의 왕'은 바로 금강송(金剛松)이다. 굵고 붉은 몸통과 흐트러지지 않고 곧게 뻗어나가는 가지들, 그리고 푸르고 짙은 솔잎들이 일품인 금강송은 한없이 존귀하신 분만 같아 앞에 서면 저절로 마음이 정갈해진다.

▲ 대웅전

ⓒ 정만진

고운사 가는 길은 바로 그 금강송들이 양옆을 아름답게 지키고 있는 '비인간'의 숲길이다. 번잡한 도시에 사는 답사자에게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붉은 나무와 푸른 솔잎, 그 사이 사이로 빛나는 햇살과 투명한 하늘빛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환상'의 숲속에서 내 마음은 문득 길을 잃는다.

고운사는, 사찰 홈페이지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규모가 어느 정도 되면서 역사가 오랜 우리나라의 사찰 중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절이다. 주변에 식당, 여관 등도 전혀 없다. 정말 '높은 하늘의 구름' 같이 맑고 깨끗한 곳이다. 거의 대웅전 앞까지 차를 끌고 갈 수도 있지만, 청명한 가을하늘의 새털구름보다도 더 깨끗한 이런 곳에 와서 일주문을 차에 탄 채 지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 대웅전 푸른 하늘 위로 흰 구름이 떨어지듯 무늬를 남기고 있다.

ⓒ 정만진

맑은 하늘의 구름같이 깨끗한 고운사

그런데도 황토의 금강송 길을 지나 사천왕문까지 중에는 심지어 대형 관광버스까지 먼지를 일으키며 다녀 머리를 어지럽힌다. 흙먼지를 마시면서 '금강송 가득한 천연의 황톳길을 걷지 않으려면 무엇 때문에 이곳을 찾아온단 말인가'하고 혼자서 한탄을 해본다. 산과 물, 하늘과 나무, 길과 새소리, 부처와 법당, 그리고 스님,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사찰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인가. 인간들로 북적대는 바닥을 떠나 스님들이 이런 산속으로 들어온 까닭도 헤아리지 못한단 말인가. 불교 신자인가 아닌가 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없이, 답사자라면 적어도 이런 금강송 길만은 걸어야 하지 않겠나. 답(踏)이라는 글자에는 발(足)이 들어 있다!

고운사는, 들어가는 금강송 길만큼이나 볼 만한 절집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서 맨 먼저 보게 되는 건물인 가운루(駕雲樓, 유형문화재 151호)부터가 그렇다. 최치원이 지었다는 이 오래된 건물은 '구름(雲)을 타는(駕) 누(樓)각'이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물론 신라 때 지어진 목조 그 자체는 아니지만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거센 물길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다, 웅장한 크기와 고색창연한 건물의 빛깔까지 뽐내고 있어 고운사 답사객은 누구든지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하는 가운루와 우화루

가운루 왼쪽에 있는 우화루(羽化樓) 역시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건물이다.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그 동안 고운사에 다녀왔느냐?"라고 묻는다는 구름(雲)처럼 높은(高) 절― 고운사에 들러 구름(雲)을 타고(駕) 노니는 가운루에서 지냈으니, 이제는 우화루에서 신선이 되어(化) 새(羽)처럼 훨훨 하늘을 날 일이로다. 최치원이 왜 이 절집에 우화루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이해가 된다는 말이다.

▲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하는 가운루. 물론 이 건물 자체가 최치원이 지은 것은 아니고, 허물어진 뒤 후세에 다시 건축되었다.

ⓒ 정만진

우화루 뒤편의 연수전(延壽殿, 문화재자료 444호)도 고운사에서 놓치고 지나칠 수 없는 문화재다. 이름에 '늘일延'과 '목숨壽'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연수전은 장수를 비는 원당(願堂)이었다. 실제로 연수전은 1744년(영조 20) 왕이 내린 글을 모시기 위해 처음 지어졌고, 1907년 다시 지어져 고종 임금의 안녕을 축원하는 곳으로 쓰였던 집이다. 그래서 안내판에는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떠받들던 시대에 사찰 안에 이렇듯 왕실과 관련되는 건물이 지어졌다는 사실이 이채롭다'고 적혀 있다.

▲ 국가 지정 보물인 고운사 약사전의 불상

ⓒ 정만진

고운사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또 가장 아름다운 불상은 약사전에 모셔져 있다. 불당 앞 안내판을 보면, 보물 246호인 이 석조석가여래 좌상은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고 한다. 약사전 안으로 들어가 부처님과 마주 선다. 굳게 다물려진 부처의 입술은 사진 촬영을 허가하신 것인지 아닌지 잘 분별이 되지 않는다.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는 약사전 불상

문화재자료 28호인 3.3m 높이의 고려 시대 3층석탑은 대웅전 맞은편 언덕 위, 나한전(羅漢殿) 앞에 있다. arhan을 한자로 적은 阿羅漢(아라한)의 줄임말 羅漢(나한)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한 성자(聖者)들'을 뜻하지만, 고운사 나한전에는 열여섯 분의 나한만이 아니라 석가모니불도 모셔져 있다. 지금의 대웅전이 1992년에 지어지기 이전까지 그 자리에서 대웅전의 역할을 했던 건물이기 때문인데, 옮겨진 이후로 이름도 나한전으로 바뀌었다. 이 나한전은 지불(紙佛), 즉 '종이로 만든 불상'이 모셔져 있는 특이한 절집이다.

3층석탑 앞에 서서 약사전 쪽을 바라보니 어느덧 늦은 오후의 잔광(殘光)이 노을의 빛깔을 퍼뜨리며 대웅전 뒤편 산자락을 물들이고 있다. 대웅전 뒤를 울창하게 장식하고 있는, 하늘로 쭉쭉 뻗어 오른 금강송들도 저물어가는 햇살을 받아 더욱 맑은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다. 그 정경을 보고 있노라니, 고을 이름조차도 단촌(丹村)인 고운사의 저물 무렵을 즐기고 있는 나의 마음도 문득 따뜻하게 데워진다. 나도 구름을 타고 신선처럼 저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으려나.

하지만 지금은 하산(下山)길을 걸어야 한다. 저 아래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는 금강송 솔숲길은 올라올 때보다도 더욱 고요하고 아름다우리라.

▲ 고운사 극락전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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