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공사판 동료의 사망 숨긴 40대 남성 적발]
5년전 공사판서 만난 두 사람, 생활보호대상자인 동료가 폐암으로 일 못하게 되자
30만원 월세방서 함께 살아… 동료가 숨지자 이불 덮어 숨겨
시신 썩는 것 최대한 늦추려 난방 안 틀고 전기장판 써
건설현장에서 막일 등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던 조모(48·무직)씨는 5년 전 인천의 한 공사장에서 김모(당시 59세)씨를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어려운 형편에 달리 의지할 곳이 없는 처지여서 금세 가까워졌다.
일거리가 있으면 만나 함께 다니기도 하며 지내던 지난해 6월 김씨가 폐암 진단을 받았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김씨는 인천 계양구의 한 단독주택에 보증금 1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방을 얻어 조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된 김씨가 구청으로부터 받는 기초생활 보조금이 두 사람 수입의 전부였다.
조씨는 거의 일을 나가지 않았다. 그 대신 폐암에 식도암까지 겹쳐 거동이 불편해진 김씨를 대신해 은행에 가서 계좌로 들어온 기초생활 보조금을 찾아왔다.
지난해 10월 21일 외출을 했다가 집에 돌아온 조씨는 집 안 거실에 쓰러져 숨져있는 김씨를 발견했다.
당연히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는 신고 대신 시신을 방 안으로 옮겨 이불로 말아놓고는 그냥 함께 살았다. 사망신고가 되지 않은 김씨의 은행 계좌에는 기초생활 보조금이 계속 들어왔다. 지난해 11~12월 조씨는 예전처럼 김씨의 통장을 들고 은행에 가서 기초생활 보조금 87만원을 찾아 썼다. 한 달에 43만5000원꼴이었다. 이전부터 김씨의 기초생활 보조금을 대신 받아다 주느라 그의 통장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12월 어느 날에는 보일러가 터져 위층에 사는 집주인이 찾아온 일도 있었다.
그는 조씨의 안내로 부엌 쪽에서 보일러를 고치고 돌아갔지만 방 안에 김씨의 시신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집에서 계속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집주인이 지난 16일 경찰에 "집 안을 좀 살펴봐 달라"고 신고하면서 마침내 덜미를 잡혔다.
이날 오후 3시 30분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막아선 조씨를 밀치고 들어가 방 안에서 이불에 싸여 있는 김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수분이 모두 빠진 채 바짝 마른 미라 상태였고,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조씨는 "나도 살길이 막막해 신고할 것도 없이 따라 죽으려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조씨가 김씨의 기초생활 보조금을 계속 타 쓰기 위해 그가 숨진 뒤로도 시신을 방 안에 놓아둔 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김씨가 숨진 뒤 그의 계좌로 입금된 기초생활 보조금을 조씨가 받아 쓴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조씨는 요즘처럼 추운 한겨울에도 방에 난방을 하지 않고 전기장판 등만 쓰며 지내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그는 "보일러가 고장 나서 그랬다"고 진술하고 있지만 경찰은 조씨가 김씨의 시신이 썩는 것을 최대한 늦춰보려고 일부러 난방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천 계양경찰서는 21일 이처럼 시신을 숨겨놓고 신고하지 않은 사체은닉 혐의와 은행에서 다른 사람의 보조금을 대신 찾아 쓴 혐의(사문서 위조)로 조씨를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씨에게 적용할 법규정은 대략 윤곽이 잡히지만 워낙 드물고 특이한 사건이라 검찰에 수사 지휘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인천=최재용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