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는 간호사 뿌리치고 과도로 영양 공급 튜브 잘라, 아내는 질식해 10분만에…
법원 "엄중처벌 마땅하나 극진한 간병 참작" 집유 5년
전북 임실에서 자녀들을 모두 도시로 보내고 농사를 지으며 아내와 단둘이 살아오던 심모(82) 노인은 2008년 1월 청천벽력 같은 진단 결과를 들었다. 아내가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심씨는 아내를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집에서 50여㎞ 떨어진 전주의 병원으로 숱하게 입·퇴원을 반복했다. 70대의 아내를 부축해 농어촌버스와 기차, 택시를 차례로 갈아타고 병원 길을 오갔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치료비를 줄이기 위해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기도 했다.
심씨의 이 같은 노력에도 아내는 날이 갈수록 병세가 깊어지고 고통이 커졌다. 아내는 폐렴이 악화되면서 작년 4월 27일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입원 1주일 만에 호흡이 어려워진 아내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심폐소생술까지 받았다. 의식이 거의 없어진 아내에게 코를 통해 위로 영양이 공급됐다. 입을 통해 기관지에 연결된 튜브로 인공호흡이 이뤄졌다.
심씨는 아내를 집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병원 측은 위독한 환자를 퇴원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만류했다. 아내가 중환자실에 옮겨진 다음 날인 5월 5일 오후 심씨는 바지 주머니에 접이식 과도를 들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그는 두 간호사의 제지를 물리치고 영양 공급 튜브를 자른 뒤 인공호흡 튜브를 잡아 뽑았다. 아내는 질식해 10여분 만에 숨졌다.
심씨는 병원에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김현석)는 지난 17일 징역 3년을 구형받은 심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법원이 만든 양형기준(징역 6~10년)의 하한(下限)보다 낮은 형벌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생명을 박탈한 돌이킬 수 없는 범죄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지만 범행 경위와 동기, 가족 환경 등 제반 사정을 종합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가 투병해온 아내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회복 가능성이 희박했고 가족들이 임종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점, 고령으로 아내를 떠나보내고 정신적으로 힘겹게 생활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전주=김창곤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