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점이라고는 농구광이란 것뿐인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과연 이들이 1970년대 중·미의 핑퐁외교처럼 ‘농구외교’로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김정은이 미국프로농구(NBA) 유명 선수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과 만나 지난 28일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함께 농구를 관람한 뒤 미국과의 체육 교류를 희망했다고 조선중앙TV 등이 보도했다.
이들이 관람한 경기는 북한 선수 12명과 미국 묘기농구단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선수 4명이 혼합팀을 이뤄 펼친 친선전이다. AP통신 등은 양팀이 110대 110으로 동점을 이뤘고, 점수 차가 좁혀질수록 경기장 분위기도 달아올랐다고 전했다. 경기에는 평양시민과 외교관들, 대학생 및 국제기구 대표 등도 초청됐다. 휴식시간에는 한복이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북한 응원단이 공연을 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열렬한 NBA 팬으로 특히 시카고 불스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로드먼 오른편에 앉아 영어로 소곤대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대화는 통역을 썼으며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로드먼은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 검은색 모자를 눌러쓰고 귀고리에 코와 입술 피어싱까지 했다. 테이블에는 로드먼을 위해 코카콜라가 놓였다.
뉴욕 바이스TV 알렉스 디트릭 대변인에 따르면 로드먼은 경기가 끝난 뒤 수천명의 관중 앞에서 “당신(김 제1위원장)은 평생의 친구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바이스TV 측에 따르면 김 제1위원장은 로드먼에게 “이번 방문이 미국과 북한 사이를 해빙시키기 바란다”고도 말했다.
김 제1위원장은 로드먼 일행을 만찬에도 초대했다. 조선중앙TV에 따르면 “원수님은 이런 체육 교류가 활성화돼 두 나라 인민들이 서로 이해를 도모하는 데 기여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표명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있던 바이스TV의 라이언 더피 기자가 미국에 초대하겠다고 제의하자 김정은이 파안대소했다.
김정은 오른쪽 옆에는 푸른색 정장 차림의 부인 이설주가 앉았다. 로드먼은 김정은 부부를 미국인으로서 처음 만난 데 대해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뜻을 전했다.
불과 2주 전 3차 핵실험을 강행한 김 제1위원장의 이번 행보는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엔과 미국에서 대북 제재 조치를 논의 중인 상황에서 국제사회에 유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 패트릭 벤트럴 대변인은 로드먼의 방북에 대해 개인적인 일이라며 의미를 일축했다. 지난달 25일 북한에 도착한 로드먼은 판문점 등을 방문한 뒤 5일 북한을 떠날 예정이다.
국민일보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